<읽는 이에게 구토와 닭살을 일으킬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처음엔 잘난척 하는거 같아서 재수 없었지. 근데 같이 일해 보니까 알게됐어. 잘난척 하는게 아니라 진짜 잘난 거더라!'
결혼 전 처음 아내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아내가 나에 대해 친구들에게 한 말이다. 나의 어떤 점에 반했냐고 친구들이 물었을 때의 답이었다.
한국에서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기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캐나다로 도망치듯 이사와서 트럭 운전을 하며 살고 있다. 결국 나는 절대로 잘난 놈이 아닌 걸로 판명됐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 내게 소곤대는 아내의 목소리, 내 말을 주의깊게 경청하며 나를 그윽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나에 대한 정말 큰 사랑을 느낀다.
왜 일까?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왜 그렇게 좋아?'
'사랑하니까.'
'같은말 아냐? 그러니까 왜 사랑해?'
'변하지 않으니까, 결혼 전이나 후나 한결같아서.'
뭔가 계속 쳇바퀴 돌면서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답이다. 물어볼 때마다 사실은 그녀가 나를 좋아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만들것 같아서 더 깊이 물어보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유력한 가설이 하나 있다.
하드코어 무신론자인 나와는 달리 아내는 종교가 있다. 그런데 그 종교는 많은 신도를 거느린게 아닌 그녀만의 독특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착 종교 20% 쯤과 불교 40% 그리고 인도의 힌두이즘이 40% 쯤 섞인 요상한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윤회의 고리에 갇혀 있고 현세의 업 KARMA 에 따라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이 윤회의 고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연애할 때 그녀가 '오늘밤 우리집에 아무도 없어. 놀러 와.' 를 시전했을 때 그녀 방의 책꽂이에 요가 수련법이니 무슨 요기니 구루니 명상법이니 하는 책들을 봤으니 그녀만의 이러한 세계관은 꽤 뿌리가 깊은 것이다. 한동안 그녀의 소원중 하나는 이미 작고한 인도의 어떤 정신수련 지도자가 남동부 인도에 세운 공동체 마을에서 수련하며 생활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녀의 소원을 어느 정도 실현해 줬다)
세속 불교에서 선업을 쌓는 간단한 방법중 하나로써 방생이라는게 있다.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는 이와 유사한 업을 쌓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큰 호수를 낀 어떤 마을은 마을사람 전체가 호수의 메기떼에게 먹을것을 주며 업을 쌓고 있다. 쥐를 숭배하는 인도 북서부의 어떤 도시에는 비카네르 까르니마타라는 쥐사원이 있는데 거기엔 25년간 쥐에게 먹을것을 주고 쥐들이 먹다 남긴 것을 먹으며 업을 쌓는 구루가 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는 새벽마다 나룻배를 타고 나오는 부인이 있다. 그리고 곧 시끄러운 갈매기들이 그 나룻배를 뒤덮고 그녀는 그 새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다. 이게 그녀만의 좋은 업을 만드는 방법이며 20년째 하루도 안거르고 하는 의식이다.
혹시 아내는, 그녀가 아니었으면 평생 독신으로 늙어 죽을것이 틀림 없는 나같은 남자를 골라서, 평생 진심토록 사랑하는걸로 현생의 카르마를 쌓고자 한게 아닐까? 그녀는 매일매일 나를 보시의 대상으로서 보는게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단지 메기 한 마리, 쥐새끼 한 마리 혹은 갈매기 한 마리에 불과한게 아닐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유력한 가설이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이미 인생의 내리막에 들어섰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다. 사실 지금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그리 안타까운 인생은 아닌듯 하다. 그녀와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고 행복하다. 아쉬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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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주제는 '나는 팔불출이다' 가 아님.
아내님이 원했던 종교글 시리즈의 일환임.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15992&category=&searchWord=&page=11
진짜임. (땀 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