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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해 버린 육체와 고급 자전거의 역설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6496 작성일 2022-10-20 04:12 조회수 2742

 

오래된 동네의 시장 골목 입구 쯤에는 보통 허름한 자전거포가 있다. 입구에 세발 자전거부터 아동용 자전거들 그리고 짐 자전거들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애용하던 유사 MTB 혹은 철티비들도 있었다. 대충 맞춤한걸 찍어 놓고는 흥정을 했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15만원 주쇼.'

 

'12만원에 하시죠?'

 

'에이~ 13만원에 가져가쇼.'

 

'딜!'

 

이런식으로 자전거를 사고는 했다.

 

제주도에서 자전거의 신기원을 경험한 후 나도 자전거 전문점을 갔다. 거기에는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분위기에 알맞는 와인을 추천하는 소믈리에가 있듯이 자전거 전문가인 '메카닉'이 있었다. 나는 메카닉에게 제주도에서의 경험과 나의 자전거 용도에 대해서 설명했다.

 

메카닉은 나의 신장을 대충 보더니 먼저 프레임 사이즈를 정해줬다. 와, 고급 자전거는 사람 키에 따라서 프레임사이즈까지도 정해지는구나, 깨달았다. 한참 후에 나에게 24단 시마노 구동계를 가진 검은색 입문용 MTB가 주어졌다. 비록 이쪽 계통의 자전거 중에서는 싼 거였지만 나로서는 자전거에 처음 지출하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새로 맞춘 자전거는 제주도에서 경험했던 자전거 보다 더 한층 좋았다. 나는 자전거란 모름지기 항상 소리가 나는 물건인 줄 알고 있었다. 항상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끼익끼익 해야 자전거지! 그런데 나의 새 자전거는 소리가 안나! 오로지 바람 소리와 타이어가 포장도로와 만나 마찰하는 소리만이 들려 왔다. 지이이이잉~ 하는 타이어와 도로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나에게 황홀경을 줬다.

 

나는 싸구려 철티비로도 빠른 라이딩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면 속도를 올려 따돌리곤 했다. 헬멧을 쓰고 몸에 착 달라붙는 저지를 입고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쓰고 비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나는 곧잘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내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내면 앞서가던 라이더가 놀라서 선두를 양보하고는 했다. 그런 나에게 본격적인 mtb는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나는 자전거 도로에서 무적이였다. 단, 로드바이크는 빼고!

 

이제 더 한층 즐거운 자전거 출퇴근을 즐길 일만 남았는데, 맙소사! 세상 일이란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나는 더 이상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수 없게 됐다. 한동안 자전거 출퇴근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이 본격적인 mtb는 틀림없이 곧 도둑 맞을거다. 이것을 밖에 묶어 두고 회사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시 옛날에 타던 싸구려 철티비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나의 타락한 몸이 더 이상 싸구려 자전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걸핏하면 체인이 벗겨져 버리는 싸구려 구동계는 나에게 좌절감만 주었을 뿐이다.

 

결국 자전거 출퇴근은 포기하고 주말에만 레저 삼아서 새로산 MTB 라이딩을 즐겼다. 이거 뭐냐! 오히려 자전거를 더 못 타게 되어 버렸다.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 차라리 제주도에서 그 시마노 구동계를 쓴 자전거를 안 만났더라면 나는 지금도 행복하게 자전거 출퇴근을 했을 텐데… 부처님 말씀이 맞다. 좋은 것은 항상 나쁜 걸 동반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회사에 개인 사무실과 24시간 지하 주차장 이용권한이 생겼다. 드디어 자전거를 회사의 내 방이나 주차장 차 안에 보관할 수 있게 됐다. 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옛날처럼 마실을 다니다가 자전거를 묶어놓고 카페나 식당을 간다든가, 쇼핑을 한다든가 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전거를 모셔야만 하는 이런 상황이 싫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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