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에서 과학혁명과 인식혁명을 거친 지난 수세기 동안 그리고 특히 21세기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상황에서 현대과학을 거부하는 하느님은 신뢰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하느님의 존재를 맹신하는 자아도취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사실상, 인류가 속해 있는 불확실성의 우주세계에는 어느 곳에도 인내하고 자비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진노하고 징벌을 내리고, 믿는다고 좋아하고 축복을 내리는 그런 변덕스러운 인격신론의 하느님도 없다. 그런 옹졸하고 부족적인 하느님은 고대 인간이 만든 창작품에 불과하다. 인류는 전쟁과 테러와 질병과 팬데믹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런 하느님에 대한 보상심리의 불량 믿음 보다는 역사적 예수가 가르치고 살아낸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날 일부 보수성향의 부족적인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내세적이고 이분법적이고 이기적인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을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은 모든 교육과정에서 우주진화 이야기를 배우고,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미리 계획된 지적설계에 의해 마치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 몇 일만에 완성품으로 창조되었다는 억지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과 신뢰를 잃었으며, 다만 내세적 종교체제의 내부에서나 통용되는 부족적인 언어가 되었다. 우주세계는 끊임없이 팽창하는 불확실성 속에 있으며, 아무도 내일을 모른다. 다만 수백억 년 후에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와 은하계와 우주는 폭발하고, 새로운 별들과 우주가 탄생할 것이라는 정도 밖에 모른다.
현대 종교인들은 인간이 속해 있는 138억 년 전 우주세계의 출현과 진화 역사에서 최초의 생명체와 인간이 출현하고, 인류 사회에서 신(神)이 탄생한 과정을 이성적으로 솔직하게 이해해야 성숙하고 참된 인간으로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인류 역사를 신중하게 살펴보면, 인간의 생각과 말과 글이 먼저 있었고, 신들은 나중에 인간의 사고와 깨달음에서 문학적인 표현방식으로 창작되었다. 사실상 오늘도 인간은 신의 창조자이다. 그러나 신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통제하고 조정한다고 맹신하는 그런 종교체제는 과거에는 어떻게 그런대로 통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21세기 현대사회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지난 수년 간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어느 특정 지역도 제외됨이 없이 역대로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되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팬데믹은 종교적으로 생명과 인간과 하느님의 현실적인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성적으로 솔직하게 심층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도전의 시기가 되었다. 인류사회가 앞으로 또다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방식 뿐이다. 사실상 이러한 혁명적인 도전은 1세기에 최초로 역사적 예수의 정신에서 시작되었으며, 16세기에 종교체제가 신봉하던 지구중심 우주론을 180도로 뒤집어 엎은 코페르니쿠스와 지동설을 선언한 갈릴레오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믿음체계가 맹신하는 삼층 세계관의 불량신학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더욱이 1859년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오늘 주류 사회의 정설이 되고 있으며,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밝힌 생물의 진화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만큼이나 종교와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창조론, 즉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신의 준비된 설계에 의해 완성품으로 창조되었다는 신중심주의의 삼층 세계관적 학설을 뒤집어 엎고, 인간중심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인류의 자연 및 정신 문명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뉴턴이 1687년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표됨으로써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는 과학시대에 “과학”이란 말의 넓은 의미는 학문의 일종이기 보다 자의식을 지닌 인간의 삶 전체를 뜻한다. 과학은 인간이 거짓으로 만든 것도 아니며, 선택도 아니며, 다만 자의식의 인간이 본능적으로 발견하고 인식하고 적용하는 삶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과 달리 살아서 숨쉬고 있는 한 끊임없이 삼라만상에서 과학적인 탐구에 열정적이며, 새로운 발견을 삶의 모든 영역들 곧 종교와 정치와 문화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살아간다. 오늘날 상식적이고 건강한 종교와 정치와 문화는 과학에 기초할 때에 가능하다. 과학이 138억 년의 우주진화를 발견한 것은 우리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과업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은 단지 자신의 이기적이고 부족적인 유치한 행태를 드러낼 뿐이다.
21세기 과학시대에 여전히 하나님, 하느님. 성령, 야훼 등의 말들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 말들을 인격적, 물질적 그리고 초자연적 존재로 믿는 표층적인 믿음을 떠나 보내고, 그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심층적인 삶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으면 자연의 법칙이 깨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고대의 믿음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종교는 신적인 하나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이며, 세상만물은 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체제에 속한 사람들은 과학적인 진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과학을 현실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과거의 세대들이 믿어왔던 인습적인 신앙에 대해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 우주진화 세계에서 창조(creation)라는 말은 전지전능한 신의 전용어 혹은 종교적 언어가 아니며,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처럼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도 아니며, 오직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복잡성과 자율성과 창조성으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적인 진화과정을 뜻한다. 오늘날 주휴 사회의 교육계와 과학계에서 우주세계의 진화에 대한 찬반 논쟁은 이미 끝이 났으며,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거나, 종교가 과학을 믿음체계의 맞춤형으로 변형시키려는 유치한 행태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자들은 아직도 무용지물이 된 창조주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지 못한 체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138억 년 전 우주세계 전체와 모든 개체들은 우연히 자연적으로 출현했으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불확실성 속에서 팽창하는 진화과정을 계속하고 있다. 우주진화 이야기에서 인간의 자의식이 출현한 사실은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며, 우주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우주의 장엄한 시작과 진화과정을 발견하고, 과학적인 발견에서 생명과 인간과 세계의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실제로 위대한 과업이다. 또한 우주 전체가 수많은 개체들로 구성되었으며 상호의존관계를 이루어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괴상하게도 종교체제들은 과학의 발견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면서, 자신들만 선하고, 자신들만 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 구원받고, 자신들만 다른 세계(천국)로 이주해서 영원히 산다는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이고 차별적인 망상에 빠져 있다.
인류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상황을 겪음으로써, 생명과 인간과 세계의 의미가 새로워지고 깊어 졌다. 종교와 정치에서 부족적이고 이기적이고 내세적인 패러다임은 설득력과 신뢰를 잃었으며, 네가 죽으면 내가 죽고 네가 살면 내가 산다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운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하느님은 예배하고 믿어야 하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며, 하느님의 의미는 모두가 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며 상호의존관계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며 궁극적인 비전이다. 다른 종교와 민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지 전혀 관심 밖의 일이며, 오직 나의 종교와 국가 만이 구원받고 잘 살 수 있다는 불량 믿음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독교인과 기독교국가를 피해서 다른 종교인들에게만 확산되지 않았다. 기독교인만 보호하고 축복하는 옹졸한 하느님은 이미 지난 수세기 동안 무용지물이 되어 죽었다. 아직도 그런 하느님을 맹신하는 교회들이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지만 그들은 생존의 몸부림을 치며 진부하고 케케묵은 전통과 말장난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뿐이다. 21세기에 종교체제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려면 신학과 신앙의 기초를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 위에 정립하고, 구체적으로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과거에 종교인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현세적인 삶을 부인하고, 죽은 후의 내세를 꿈꾸었지만, 이제 현대 종교인들은 고대 경전을 문자적으로 읽는 부족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서 해방되어 우주적인 세계관 즉 현재 눈앞에 보이는 실제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관념적이고 내세적인 인격신론의 유신론적 하느님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철저히 무용지물이 되어 또다시 죽었다. 종교인들은 이 사실을 회피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차별주의와 이기적인 부족주의와 내세주의를 아낌없이 포기하고, 생명과 인간과 세계의 우주적인 통합적인 의미에 대해서 솔직해야 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