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책을 읽다가 제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두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그 것은 “다름과 틀림”이라는 두 단어였습니다. 오래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단어였습니다. 세상에 꼭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일난성 쌍둥이라고 할찌라도 같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생각의 기준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남들을 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잣대의 기준치에 맞지 않으면 거기에 맞추라고 강요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는 데서 도를 넘어서 그 잣대를 가지고 남을 후려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저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어려운 일들의 원인을 따져 보면 대부분 “너는 나와 같지 않은 데, 나와 같아져야 해!” 라는 데서 시작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종분쟁이 나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세계사 속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쟁은 나와 다른 종교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똑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서로 싸우는 영국과 아이랜드의 종교타툼은 나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폭탄을 몸에 휘어감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군중 속에 뛰어들어 자폭을 하면서 많은 다른 생명들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회가 분열하고 사회단체가 반목하면서 싸우는 것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왼손잡이들이 놀림을 받고 부모들이 오른 손을 쓰게 할려고 애쓰던 것도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그늘에서 사는 것도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타투다가 나중에는 서로 등지고 대화를 하지 않는 것도 부모는 자식생각을, 자식은 부모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부는 치약 때문에 많이 다투었다고 합니다. 그 부부는 서로 다른 치약을 쓰는데, 아내는 치약이 오분의 일쯤 남으면, 새 치약을 꺼내썼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왜 치약을 끝까지 다 쓰지 않고 새 것을 쓰느냐고 하고, 아내는 그까짓 치약을 가지고 쫀쫀하게 구느냐면서 다투곤 했답니다. 남편은 생각다 못해, 부부가 같이 이를 딱을 때는 아무 소리 않고 남은 치약을 아내의 치솔에 짜서 주었답니다. 잔소리를 하는 대신 아내의 행동을 인정했고, 아내는 남편의 알뜰함(?)을 인정했답니다. 아내는 요즘 남편이 남은 치약을 치솔에 짜서 줄 때면, 남편의 쫀쫀함이 아니라, 알뜰함과 자상함이 느껴진다면서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다름”을 “틀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와의 다름은 곧 틀림” 이라는 생각이 많은 어려움을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잣대를 잘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나의 잣대로 남을 재지 말아야 하겠고, 만약에 부득이 잿을 경우, 나의 기준치에 맞지 않더라도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코 나의 잣대로 남을 후려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