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남편 2003-7-3
누구였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오래 전에 어느 수필가가 쓴 수필 중에 “닭똥집이 두개라면…”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분의 불만은 하나밖에 없는 닭똥집이 항상 자기의 몫이었는데 아들이 생기고 나서 어느때부터인가 고놈의 닭똥집이 아들의 몫이 되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닭다리처럼 똥집이 두개라면 섭섭함이 좀 덜 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요즘 그 수필가가 느꼈던 섭섭함을 난 가끔 느낀다.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저희들도 할일이 바쁘니까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을 기회도 점점 적어졌다. 아내는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오면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많이 피곤해 하곤했다.
어느 날, 식탁의자에 맥없이 털석 주져 앉더니 아내가 말했다.
“여보, 미안해. 오늘은 아무거나 간단히 먹어요”
“그래, 난 아무래도 괜찮아”
“여보, 김치하고 무말랭이 무친 것 좀 꺼내와요”
“알았어”
“여보, 밥 좀 퍼와요”
“OK”
아내는 한참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
“여보, 물 좀 줄레요?”
“아이구! 내가 물을 안 줬어? 기다려”
“여보, 나 밥 좀 더 먹어도 돼요?”
“그럼~ 더 퍼다 줘?”
“네~”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맥을 못출까’ 아내가 애처러웠다.’ 아이들 기르느라고 고생하고, 아이들 대학 보내느라고 지난 10년간 세탁소에서 때묻은 옷들과 씨름하는 아내를 보면 고맙기도하고 안쓰럽기도했다.
‘에이구! 나라도 잘 해주어야지…’
“아! 잘 먹었다”
“김치하고 무말랭이해서 잘 먹을게 뭐있어?”
“아냐요, 정말 잘 먹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회덥밥 사줄걸…” 아내는 회덥밥을 참 좋아했다. 돈 안드는데 무슨 말을 못하랴! 아내가 약간 감동먹는 눈치였다.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How about coffee?”
“끓여 주면 좋고용!”
“알았어”
‘오늘은 어리광이 좀 심하군!’ 나도 하루종일 일했는데… 회사에서 세탁소에서…
‘에라! 해 주는 김에 화끈하게 해주자!’
아내는 coffee가 될때까지 넋놓고 앉아 있었다.
아내가 막 coffee잔을 집어드는데 큰 아들이 들어왔다.
“Hi 엄마, 아빠”
“어디갔다 이제 오니?”
“회사에서 좀 바빴어요”
“저녁 먹었니?” 여지껏 맥놓고 앉아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아직 못 먹었어요”
“15분만 기다려!” 아내의 눈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난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 저것 꺼내고 oven에 불을켰다. 채소를 써는 칼소리가 경쾌했다. 지지고 복고 끓이고… 순식간에 부엌에는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이 여자가 조금 전까지 축처져서 “반찬 꺼내와라, 밥 퍼와라, 물 떠와라”하던 여자 맞어?’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저런 힘이 솟아 날까!’
정말 15분 후에 그럴듯한 요리가 준비되었고 무럭무럭 김이 나는 막 해낸 음식들이 먹음직스러웠다.
“진아, 다 됐다! 빨리 내려와!” 아내가 윗층에 대고 소리쳤다.
‘야! 정말 너무하다!’ 어디서 저런 힘찬 목소리가 나올까!’
“음~~~ 맛있겠다. Thanks mom!”
“많이 먹어” 맛있게 먹는 큰 아들을 대견한듯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
‘아! 저게 모성이구나!’
“여보, 당신도 좀 잡술레요?”
“어이구, 일찍도 물어 보시네용! 아들 줄려고 한 음식을 내가 왜 축냅니깡, 싸모님”
“아이구, 삐지긴…”
“우리집엔 아들이 셋이니…, 닭똥집이 네개는 돼야 겨우 내차례가 되겠군!”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 뭐라구 그랬어요?”
“아니, 암 말도 않했어”
‘하기사, 닭똥집이 다섯개는 돼야, 아내한테 차례가 갈테니… 난 불평할 것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