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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난뱅이? 세이노의 가르침 - 10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7065 작성일 2023-05-23 05:46 조회수 1560

이건 그냥 심심해서 끄적거린 정제되지 않은 글입니다. 바쁘신 분들께는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

 

간부 승진 심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회사는 미국과 한국 재벌 기업의 50대 50 합작기업이었다. 나는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었고 미국식으로 다원 평가라는걸 받았다. 나의 상사, 동료, 부하직원, 그리고 고객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연구소래봤자 대부분의 시간을 TFT(Task Force Team)에 배속되어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래서 나를 평가한 고객은 TFT의 타 부서 사람이나 계열사 사람들이었다. 그 덕분에 후한 평가를 받았다. 최종적으로 나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직속상사가 취합한다.

 

승진의 최종 관문은 연구소의 모든 간부 직급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 판정한다. 십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후 투표에 의해 그 사람의 승진이 결정된다.

 

이 인터뷰를 앞두고 나보다 나의 상사가 더 안절부절했다. 앞전에 부서의 핵심 멤버 한명이 이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하고 크게 실망한 후 다른 부서로 이동해 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승진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유만만 했다. 언제나 처럼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프로젝트 관리 요소 중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정석 대로라면 맥킨지 방법론을 언급하고 S.M.A.R.T. 니 SWOT 분석이니 어쩌고저쩌고 떠들어야 되겠지만 왠지 평범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웰빙 Well-being 입니다.'

 

모두들 벙 쪄서 나를 주목했다. 침묵 속에서 나의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우리들이 하는 프로젝트는 결국 사람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공정관리에 실패한 후 일정에 쫓겨 팀원들이 매일매일 야근을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먼저 그걸 실행하는 팀원들의 행복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프로젝트의 일정과 자원 할당은 팀원들의 웰빙을 먼저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결국 승진했는데 상사가 나중에 전해 주길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는 팀원들의 웰빙 어쩌구 하며 건방을 떨었지만 사실 저건 내 얘기다. 나는 야근을 싫어한다. 휴일 근무도 안 한다. 보통 젊을 때 내 별명은 '땡충이' 였다. 6시 땡 하면 사라진다고…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며 사나? 때로는 놀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혹은 멍때리며 하늘도 올려다 봐야지.

 

그렇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후 나에게 직장 생활은 그저 호구지책이었다. 나의 진짜 삶은 퇴근 이후에, 그리고 휴일에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나는 참으로 게으른 인간이다. 사실 나의 이런 태도가 나의 삶을 돌아볼 때 '아, 행복한 삶을 살았다.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하면서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다. 행복한 기억은 친구들과 시시덕거릴 때, 연애할 때, 취미인 텃밭 농사 지을 때, 산속에서 비박할 때, 비박지에서 침낭 속에 들어 앉아 일출을 볼 때, 경치 좋은 곳에서 캠핑할 때, 그리고 아내와 시간을 보낼 때 등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놀 때 행복하다.

 

나의 이런 생활 태도는 세이노의 입장에서 보면 거지가 되기 십상인 모습이다.

 

+++

 

세이노는 스스로 정치적으로 회색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극히 극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든 빈곤문제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개인적인 책임으로 몰아간다. 열심히 일해서 몸값을 높이고, 소비를 최소화 해서 저축을 하며, 끊임없이 경제를 공부해서 재테크를 한다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하루에 8시간만 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주 40시간 근무는 그에겐 어불성설이다. 윤석열의 주 120시간 노동시간이 그가 주장하는 노동관과 합치한다. 물론 그는 주 5일제도 싫어 한다.

 

항상 최상의 상태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는 주말에 격렬한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싫어한다. 등산이나 낚시 같은 걸 하고 밤 운전을 하고 일요일 늦게 집에 돌아오면 월요일에 피곤해서 일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주일을 전부 바쳐야 하는 종교 활동 같은 것도 반대한다. 개인의 모든 시간은 오로지 노동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인 듯 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계속해서 공부하기를 요구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

 

졸음을 피하기 위해 식사는 단 두 번만 해라. 먹으면서도 공부를 하기 위해 라면 부스러기 같은 것을 부숴 먹으며 책을 봐라. 모자란 영양소는 영양제 같은 것을 먹어라.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를 해라.

 

건강을 해치면 어떡하냐고? 가난뱅이 주제에 건강해서 뭐 할래?

 

대략 이게 일과 공부에 대한 세이노의 요구이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는 못 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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