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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피자
작성자 어진이     게시물번호 17070 작성일 2023-05-23 21:33 조회수 2045

눈물젖은 피자   2004-1-19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는 토요일 저녁! 오늘 저녁은 피자로 때운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슬그머니 이층으로 올라왔다.

아빠, 피자 잡수실레요?” 막내가 아래층에서 소리 질렀다.
생각없는데……”
여보, 그러지 말고 내려와요.”
아빠, 맛있어요.” 둘째의 목소리였다.
“No, thank you.”
아빠, 왜 그래요.” 첫째가 피자를 손에 들고 입을 우물거리면서 올라왔다.
먹고싶지 않은데…”
내려가요.”
싫다는데~, 왜 그래~?”
에이~ 내려가요~.”

마지 못해 끌려 내려오니, 아내가 보라는듯이 커다란 피자를 한쪽 들고 그 큰입은 벌려서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아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힐끗 쳐다보니,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내 이래서 피자를 안 먹겠다고 했는데왜 이렇게 끌고 내려와!’
~, 저놈의 미소가 보기 싫어서 피자를 안 먹는다!’
난 피자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가능하면 피자를 먹질 않는다. 아내의 그 묘한 웃음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쥐구멍을 찾고싶다.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정확히 26년 전의 일이었다. 신혼초기였었고, 그렇게 기다리던 첫 아이를 아내가 임신했다. 얼마나 기뻣던지아내가 임신한지 8개월 정도 됐을 때였다. 그때는 맛벌이 부부였고, 미래의 계획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한푼이라도 빨리 모아서 집도 장만하고 싶었고, 참 할 것도 많았었다.

내가 복이 많았던지, 아내는 입덧도 하지 않고, 아무거나 아주 잘 먹었다. 하루는 직장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Large size피자를 시켜 놓고있었다.
여보, 이리와서 먹어요.”
~~ 밥을 하지
힘들어서 피자 시켰어요.”
잠깐이면 될텐데, 피자는 뭐하러 시켜!"
“………”

아내는 아무 말없이 피자를 우걱우걱 먹었다. 가을철에 도토리를 입안 가득히 넣어서 양쪽 뽈따귀가 터질 것 같은 다람쥐처럼, 피자를 한입 가득이 넣고 우물거리며, 나를 멀뚱멀뚱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렀다. 그러면서도 새김질하는 소처럼 입은 계속 우물거리고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피자를 먹고 있는 아내! 앗차 싶었지만,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난 후였다.

아내는 아무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피자를 먹을만큼 다 먹었다. 그게 모성인 것 같았다. 그러고나서는 방에 들어가더니 이불울 뒤집어쓰고 누웠다.
이일을 어쩐다?’
내 자신이 미웠다~ 맛있겠는데?” 하면서 같이 먹었더라면 아내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에이~ 바보퉁이! 바보퉁이
내키지 않는 피자를 두쪽 먹었지만, 맛도 없었고 기분도 언잖아 속이 불편했다.

다음 날 아침 그것도 남편이라고, 정성스럽게 쌘드위치를 싸놓고 아내는 아무말없이 출근했다. 아내는 나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을 했었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해야한다고 생각은 굴뚝같았는데, 종내 한 미디도 못했다. ~이구~ 등신! 하루종일 눈물에 범벅이 돼서 피자를 먹던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려서 일을 하는둥 마는둥 하루를 보냈다.
~~ 요놈의 주둥이!” 손바닥으로 주둥이를 쳤더니, 생각보다 되게 아팠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뭐라구 말하지?’
~,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아파트 문을 여니, 구수한 두부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힘들텐데…’
남산만한 배가 더 커보였다. 눈을 마추지 않고 찌개를 푸는 아내의 옆에 가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정말 미안해.”
“………”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니, 아파트 문고리에 Pizza discount coupon이 끼어 있었단다. 그 날따라 너무 힘이 들었고, coupon를 보는 순간 전화로 피자를 주문했단다.
남자들이 임신한 아내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해해!’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쥐구멍을 찾는다.

아내가 피자를 다시 한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얘들아, 아빠가 말야…”
무슨 소릴 할려구 그래~?”
엄마 뭔데요?”
엄마 아빠가 신혼 때 말야…” 아내의 입가에 다시 묘한 미소가 흘렀다.
그냥 파자나 먹~~~!”
엄마가 진이 너 임신했을 때…”
당신 정말 이러기야? 내가 피지를 먹을 때마다, 미안하다고 했는데피자를 입에 넣다가 말고, 눈을 무섭게 떴다.
“……”
엄마~, 뭔데?”
아무것도 아냐. 아빠한테 물어 봐.”
아빠, 뭔데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잖니~!”

한 순간의 잘못이 요렇게 오래 갈줄 몰랐다!!!
~! 언제까지 저 묘한 미소를 보아야 하나! 인생 정말 고달프다!’
묘한 미소를 띄우며 피자를 먹고 있는 아내의 얼굴위로, 피자를 뽈따귀가 터지도록 입에 넣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만삭의 아내 얼굴이 겹쳐졌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내에게 살짝 속삭였다.
여보, 정말~ 정말 미안했어!”

 

꼬리글: 요즘도 그때를 생각하면 쥐구멍을 찾습니다. 

 

나홍구: 감동입니다.

저도 같은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더욱 아내사랑을 할수 있도록 만들어주니 다행이라 생각도 되구요.
저희 집사람도 피자 좋아하는데 오늘은 피자나 시켜 먹어보고 싶군요..

 

은경: 여자들 임신했을 때 얘기 나오면 남자들 군대 얘기 만큼이나 할 말 많지요?ㅋㅋ 제가 듣기론 임신 했을때, 출산할때 무슨 호르몬이 분비 되는데, 고거이 뇌에 아주 강하게 기억되는 뭔가가 있어서 그 때 일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네요. 그러니까 평소에 점수관리를 잘 하셔야 되는데...ㅎㅎ 괜히 저 야밤에 피자 먹고 싶게 맹그셨습니다요. ^^ 안전운전 하시구요, 즐거운 한 주 되셔요~~ *^^*

 

노랑별: ㅎㅎ.. 저두 임신 거의 막바지에 제 생일 이었는데 남편이 밥만 먹고 배부른 저를 남겨 두고 친구를 만나러 갔거든요..... 그거이 한이 되어 아직도 칼을 (?) 갑니다... 아 그때 생각 하니 또 머리에서 김나네.....

 

어진이: ~고~~ 제가 괜한 소리를 썼나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순진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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