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쫀이 영감 (첫번째) 2004-9-1
“쫀쫀이 영감” 이 말은 요즘 부쩍 어진이의 아내, 순진이가 자주 쓰는 말이다. 기분이 좋을 때, 어진이의 양쪽 뽈따구니를 잡고 가볍게 흔들며 “어이구~ 우리 쫀쫀이 영감!” 하면, 반은 칭찬, 반은 귀엽다(?)라는 표현이 되고 “에~이구~~! 쫀~쫀이 영감!” 같은 말을억양을 바꾸어서 이야기할 때면 어진이의 속을 긁어 놓는 말이 “쫀쫀이 영감”이다. 그게 언제부터인가 순진이가 어진이에게 붙인 별명이 되어 버렸다.
순진이에게는 잊어 버릴만하면 한번씩 한국에서 와서 약 6개월씩 있다가 가는 여고 동창생이 있었다. “쫀쫀이 영감”은 순진이와 그 친구의 합작품이였다. 순진이의 친구가 카나다에 왔을 때, 어떻게 수소문을 해서 거의 30년만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고교 동창생이라는게 참 묘하다. 학교에서 단짝이 아니었다면 극히 짧은 기간의 사귐이다. 얼굴이 아물아물하고 이름도 기억이 안나지만, 일단 동창이라는 것이 확인만 되면 그 때부터는 얘, 쟤, 기집애하면서 왕수다를 떤다. 여고 동창생! 참 묘하고 좋은 관계다.
그녀가 카나다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관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전화를 자주했다. 뻐스와 지하철을 타면 2시간 이상 걸리는 순진이가 하는 세탁소를 물어물어 찾아오기도 했었다. 어진이의 집에서 저녁식사도 두어번했고, 한국식당에서도 몇번 저녁을 같이 먹었다. 큰맘을 먹고 어진이가 회사에서 휴가를 내어서 순진이에게 휴가를 주면, 그녀는 토론토 시내에 나가서 머리도 하고 시내에 사는 그 친구를 만나 Bloor 한인타운을 누비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거의 6개월이 지나서 그녀가 한국에 간다는 연락을 받고 순진이가 휴가를 신청했다. 회사에서는 어진이가 짧은 휴가를 신청하면 의례 “It must be a hair day!” 할 정도로 그의 휴가는 아내의 미장원가는 날로 통해 버렸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절을 할까? 순진이는 소풍가는 아이처럼 신나서 시내에 나갔고, 어진이는 하루종일 죽치고 세탁소를 지켰다.
‘아내가 이렇게 일을 해서 세 아들 대학 등록금을 냈구나!’ 새삼 아내가 고마웠다. 세탁소문을 닫고 집에가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니, 왠지 쓸쓸했다. 아내가 없는 집! 냉기가 돌았다.
‘이래서 죽으나 사나 마누라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돼!’
“그런데 요놈의 마누라,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 시계가 벌써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전화라도 좀 하지! 손가락은 두었다 뭐해!” 올 시간이 됐는데 오지도 않고 전화도 없었다. 순진이가 시내에 나가면 대개는 저녁에 지하철 종점에서 pick up하곤 했었다.
“요놈의 마누라 오기만 해 봐라!”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봉~, 미안해용~.”
“손가락이 부러졌어?! 전화도 못해?!” 어진이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미~안~~ 그렇게 됐어용~.”
“거기 어디야!?”
”나~ 엄마집에 와있엉~”
“그래~?”
“여보, 당신 여기 올수 있어요?”
“알았어. 장모님 안녕하시고?”
“그럼요~. 내가 왔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기다려. 지금 떠날께.”
어진이의 장모님은 그 늦은 시간에 사위가 온다고 밤찬을 차렸다. 그녀의 갈비탕은 역시 일품이였다.
집으로 돌아 오는 차안에서 어진이가 물었다.
“그래, 재미있었어?”
“그저 그랬어요.”
“그런데~ 이렇게 늦었어?”
“여자들이 모이면 다 그렇지 뭐.”
“친구는 언제 간대?”
“내일 모레.”
“또 온데?”
“내년에 오겠지요. 참~ 개가 당신보구 쫀쫀이래~.”
“쫀쫀이가 뭔데?”
“몰~라요.”
“좀 물어 보지… 쫀쫀이~? 쫀쫀이라~.”
어진이는 쫀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날더러 쫀쫀이라구?’
‘좋은 소릴까? 나쁜 소릴까?’
딱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감에서 풍기는 걸로 짐작하건데 좋은 말은 아닌게 분명했다. 누구에게 물어 보기도 그렇고… 그러다가 잊어버렸는데, 우연한 기회에internet에서 글을 읽다가 “쫀쫀하다”라는 말을 발견했다. 글의 앞뒤를 마추어서 그 뜻을 추정해보니, “째째하다” “소심하다” “남자답지 못하다” 대강 이런 뜻인 것 같았다.
“썅~~! 기껏 대접해 주었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쫀쫀하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
“두고보자. 다시 오기만 해 봐라!”
“아~니, 도대체 내가 어디가 쫀쫀하단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