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쫀이 영감 (네번째)
어느 날, 드디어 6~7년 쓴 전기 물주전자가 고장이 났다. 어진이는 뭐든지 버리지 못하고 고장난 것은 꼭 뜯어 봐야지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주전자를 몽땅 뜯었다.
“여보, 이젠 그만해.”
“어디가 고장난 거야…”
“버리고 새거 하나 사와. 쓸만큼 썼는데…”
“아깝다~!”
“어이~구 저 궁상!”
“안 되겠어~…… 장례식 치러야 겠네…”
“장례식? 호호호 “
어진이는 주전자에서 전기줄을 짤랐다.
“여보, 줄은 왜 짤라?”
“장기 이식에 쓸려구…”
“장기 이식?”
“응~ 줄은 멀쩡하거든, 그러니까 딴데다 연결하면 쓸수 있어.”
“에이~구~ 당신은 알뜰한 거유? 쫀쫀한 거유?”
“당연히 알뜰한거지…”
“누가 당신을 말려. 하기야 그러니까 아들 셋 대학에 보내구, 집쓰고 살겠지…”
“그거야 당신 덕이지. 소처럼 일하는 당신 덕!”
“알긴 알아?”
”내가 몰라주면 누가 알아 줘!”
“고맙쑤~”
“나 주전자 하나 사가지고 올께.”
‘이번엔 “왕소금”이라는 소리 듣지 않게 좋은 놈으로 하나 사야지!’
어진이는 전기 주전자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집어 들었다. 맵씨도 좋고, 전기도 많이 절약한다고 써있었다.
“이게 좋겠군!”
더 좋은 것은 옆에 창문까지 달려 있었다.
‘바로 요거야! 요게 있으면 마누라도 꼼짝 못 하겠지!’
창문이 달려 있으니 물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알수 있게 돼 있었다.
‘요놈의 마누라 이젠 더 이상 변명을 할수 없을꺼야! 하하하’
세탁소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순진이가 물었다.
“어떤걸 사왔어?”
“아주~ 기찬걸 사왔지!”
“또 싸구려?”
“아니야, 이번엔 비싸고 좋은거.”
“당신이 비싸다고 해도 뻔하지 뭐.”
“진짜야, 이번엔 팍~ 썼어.”
그는 주전자를 상자에서 꺼내서 아내의 코 앞에 들여댔다.
“야! 정말 멋지네!”
”잘 봐! 뭐 보이는게 없어?”
아내가 창문을 볼수 있게 창문이 달린 쪽을 앞으로 놓았다.
“잘~ 빠졌네~!”
“잘 빠진거 말고 다른건 안 보여?”
“얼마 주었어?”
“어이~구~ 그저 돈돈…”
“……”
“정말 뭐 보이는게 없어?”
“뭐가 자꾸 보이느냐구 물어요? 멋있다는데…”
“이렇다니까… 창문이 안 보여?”
“무슨 창문?”
“요거~!”
“그게 뭔데?”
“물을 딸아 넣으면 얼마나 들어 갔는지 알 수 있자나.”
“……”
“이젠 당신이 물을 끓일 때, 커피 한 잔 탈 물만 끓여. 알았지?”
“……”
주전자를 사다 놓고 몇일이 지났다.
‘이 여자가 주전자를 잘 쓰나?’
어진이는 직장에서 퇴근해서 세탁소에 들어서자,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주전자 어때?”
”참 좋아. 물이 얼마나 빨리 끓는지 몰라!”
“그래~? 창문이 있으니까 좋지?”
“……”
어진이는 주전자를 들여다 보았다. 창문에는 물이 중간까지 차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된거야?’
“여보, 주전자에 물이 왜 이렇게 많아?”
“……”
“창문이 있는데도 물을 붓는데 감이 안 잡혀?”
“여보! 당신 정말 왜 이래!”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이상 올라갔다.
“…???”
“정말, 쫀쫀하게 물가지고 이럴래?”
‘어~! 이 여자가 정말 왜이래?’
“하루종일 일하구 힘들어 쭉~겠다구~~~!”
“……”
“들어오자 마자, 왜 물타령이얏!”
‘야~ 오늘 잘 못 걸렸네!’
“물이 한 잔이면 어떻고 열 잔이면 어때~!”
“……”
“한 번만 더 물타령해 봐~!”
“아니~ 나는 창문이 있으니까…”
“듣기 싫어! 아무 소리도 하지마!”
‘와~ 되게 화났구나! 몸조심 해야겠다!’
순진이는 우르락 푸르락하다가 하던 일을 내팽겨치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괜히 날벼락 맞았네!’
‘내가 정말 잘 못한건가?’
주전자 창문을 물끄럼히 쳐다 보았다.
‘창문이 있으면 뭐해! 여자들의 머리는 모양으로 달려 있나?’
‘조금만 머리를 쓰면 되는데…’
어진이는 컵에다 물을 채워서 주전자에다 부었다. 그리고 창문에다 permanent marker로 금을 긋고 “한잔”이라고 썼다. 다시 컵에다 물을 채워서 주전자에다 붓고 창문에다 금을 긋고 “두잔”이라고 썼다. 다시 물타령을 하면 신상에 해로울거라고 했으니… 주전자 창문에 금을 그어 놓고, 몇일을 기다려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그렇게 힘든가!?’
어진이는 아내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가끔 주전자를 들여다 보지만 물은 항상 “두잔”이라고 표시해 놓은 곳에서 한참 위에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 여자 IQ가 얼마야? 아니면 지금 일부러 오기를 부리는건가?’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또 벼락이 떨어질테고, 못 본척 할려니 속이 편치 못했다.
‘뭐 좋은 수가 없을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참자. 마누라 말대로 까짓 물이 한 잔이면 어떻고 열 잔이면 어때?’
꼬리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날은 순진이가 손님의 양복때문에 신경을 곤두 세울 일 있었다.
난 그걸 몰랐었고……
나한테 화풀이(?)를 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라도 Stress가 좀 내려갔다면……
남편 노릇을 한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