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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냐고?
내가 살기 좋은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의 Global Liveability Index 2023 에 랭크된 도시들 순위는 절반정도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도시가 그 개인의 운명의 절반정도를 결정한다는 말에 대체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EIU 는 영국에 본사를 둔 매체에서 운영하는 인덱스/평가 전문기관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회사니까 영국인의 관점에서 평가했을 거라는 지레짐작은 촌스러운 편견이다.
영국인의 시각에서 평가했다면 영국 도시가 한 개라도 상위에 랭크될만도 한데 영국도시들 중에는 상위에 랭크되기는 커녕 상위 근처에 간 도시조차 없다.
특정 문화권 시각만을 중심으로 평가서를 작성하는 평가기관은 곧바로 퇴출되는 세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뉴욕이나 서울같은 도시가 각각 50 몇 등과 60 몇 등에 불과하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다.
하긴 두 도시 모두 여행하기 즐거운 도시이지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니기는 하다.
그런 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첨단 트렌드에 도전해서 승부를 보고 싶은 야망을 가졌다면 뉴욕에 살아볼만하다.
맨해튼에 있는 방 한 개 짜리 아파트에 렌트비를 매달 6 천 달러씩 내가며 살면서 쥐가 돌아다니는 지하철이나 타고다니더라도 뉴요커가 되고 싶어 하는 엘리트들은 전 세계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나같은 사람이 뉴욕의 삶의 질을 평가했다면 50 몇 등이 아니라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비슷한 170 등을 매겼을지도 모르겠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는 은마아파트라는 오래된 아파트먼트 건물군이 있다.
백마탄 왕자의 백마보다 한 단계 높은 은마라는 의미의 이름인데,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봐 그랬는지 한자로 銀馬라고 써 놓았다.
1970 년대 캬바레 이름 비슷한 이 아파트를 모르는 사람이 가서 보면 영락없는 정부보조 빈민촌라고 해도 믿을 수 밖에 없어 보이지만, 그 아파트 주민들은 그 낡아빠진 아파트에 산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도 여전히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아파트에 방문했던 10 여 년 전에는 그랬다.
프라임무비 한국영화 House of Hummingbird 에 나오는 은희네 집도 바로 그 은마아파트다.
삶의 질 탑 10 에 뽑히는 도시 중에는 캐나다 도시 세 군데와 일본 도시 한 군데가 늘 단골로 등장한다.
밴쿠버, 캘거리, 토론토, 오사카가 그 도시들이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이 단골 사형제가 모두 탑 10 안에 들어갔다.
순위도 위에서 나열한 순으로 늘 같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도시들의 공통점을 한 가지 발견해 놓은 게 있다.
모든 게 예측하고 기대한대로 돌아가는 도시라는 점이다.
공무원형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도시들이 천국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같이 은퇴를 몇 년 앞 둔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참, 공무원 이야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수 년 안에 공무원 업무 상당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우선은 하위직일수록 대체율이 높다. 절대 안정된 직업이 아니니 공무원 시험 준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EIU 는 삶의 안정성 요소들만을 삶의 질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순위를 매긴것 같은데, 이제는 좀 다른 기준들을 적용해서 사람들의 취향별로 평가를 내놓은 인덱스가 따로 나올때도 된 것 같다.
매년 거의 똑같은 순위 이제는 보기도 지겹다.
사람들의 취향, 가치관, 리스크테이킹 정도는 다양하게 분화하는데,
이코노미스트도 변하지 않으면 그저 권위에나 의지하고 전통에나 안주하는 이류매체로 하루아침에 전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