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아들 현이(첫번째) 2005-3-16
막내의 얼굴이 날이 갈수록 어두어지고 있었다. 막내는 대학에서 모두 힘들다고 하는 Engineering Physics를 공부했다. 직장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진다고 했지만, 4월말 공부를 끝낼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 했었다. 사방에다 이력서도 보내고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해서 정보도 수집하고 전화도 하면서 분주하게 보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자고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졸업 전에 학교 직업 광고난에 난 직업에 apply를 했었다. 꽤 이름이 있는 회사였고 본인도 꼭 마음에 드는 회사였다. 1차, 2차 인터뷰까지 통과하고, 3차 인터뷰에서 두 명 중에 한 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으로 정해졌다. 꼭 될 줄 알았다. 그만큼 인터뷰를 잘 했기 때문이었다. 기대가 컸었기에 막내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걱정하지마. 더 좋은데가 될지 아니?”
위로를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문광고, Internet에 들어가 봐도 Physics를 공부한 사람을 찾는 곳이 없다고 했다. 처음 한 두달은 “야~ 공부하느라고 힘들었는데 좀 쉬어라” 하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모두 말 조심을 하게 되었다. 아내도 나도 형들도 직장에 대해서 일체 말을 꺼내지 않았다. 7월로 접어 들면서 막내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형 친구가 경영하는 Sports Bar에서라도 일을 해야겠다며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을 했다.
하는 일은 맥주를 serve하고, Hamburger, Hotdog을 굽고, 청소하고 온갖 잡일을 다 하는 것 같았다. Tip이 많아서 돈은 많이 번다고 좋아했지만,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 Hamburger를 굽고 있는 장면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Sports Bar에서 일하면서 계속 이력서를 보냈지만, 연락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참 빨랐다. 9월로 접어들면서 막내의 얼굴은 말이 아니였다. 많이 초조해 했고, 말수도 적어졌다. 막내와 이야기를 할 때면, 모두 조심스럽게 막내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혹시나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않을려고 애를 썼다.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막내는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저녁, 아내와 나 막내 셋이서 이야기를 했다.
“현아, 직장 잡는 일이 힘드는데, 교육대학에 가는 건 어때?”
전에 부터 직장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학교 선생이 되길 추천 하기도 했었다.
“아빠, 난 아이들 싫어 하는거 알잖아?”
“알지, 그렇지만 이렇게 허송세월만 할 순 없잖니?”
순간 막내의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어이구~ 내가 말 실수를 했나?’
“그래, 교육대학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찬이는 선생을 아주 즐기면서 하자나?” 아내가 거들었다.
“형하고 나하고 같아?” 대답이 퉁명스러웠다.
“물리선생과 수학선생이 제일 많이 모자란다고 하니까, 문제 없을꺼야”
별로 마음이 내켜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교육대학에 원서를 제출할려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신원조회(Police Record Check)를 한 다음 학교에서 100시간의 자원 봉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전공분야, 대학성적과 Personal Profile를 써서 원서와 같이 12월 1일 까지 제출해야 했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막내는 꽤 고심하는 것 같더니, 계속 직장을 찾으면서 차선책으로 교육대학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Peel 경찰국에 가서 신원조회 신청서를 제출하고 기다렸다.
신원조회는 약 4-6주가 걸리고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할려면 신원조회가 아주 까다롭다고 했다. 신원조회가 끝나면 둘째 찬이가 일하는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로 하고 벌써 교장의 허락을 얻어 놓았다. 그런데 6주가 지났는데도 경찰국에서 신원조회 결과가 오질 않았다. 막내가 전화를 해보니, 이미 보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하더란다. 다시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캄캄 소식이었다. 시간은 10월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별개 다 속을 썩혔다.
막내는 계속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직장사정이 워낙 좋지 않았고, 신원조회 결과는 오지 않고, 교육대학 신청 마감일은 점점 닥아오는데, 자원봉사 100시간을 하는게 큰 문제였다. 심난했다. 본인은 얼마나 심난할까? 난 심난한 마음을 Squash court에서 볼을 힘껏 때리는 것으로 풀었다. 땀을 쫘~악 흘리고 나면 한결 개운했다.
넉 주일 전에 같이 일하는 직장 여자 동료가 Squash를 배우고 싶은데, 배워 줄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사실 Squash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걱정마! 내가 가르쳐 줄께” 쾌히 승락을 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Lesson을 해 주었다. 처음엔 한심(?)하더니 점차 나아지면서 본인도 좋아했고 나도 보람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Squash를 치고 회사로 오는 길에 (Squash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친다) 차안에서 Sonia가 물었다.
“어진아, 현이가 직장을 잡았니?”
“아니, 아직 못 잡았어”
“그래~?”
“현이는 요즘 살맛이 안나나봐”
“그렇겠구나……”
“요즘 직장 사정이 안 좋잖니…”
“참! 어진아, 너 Physics Department에서 사람을 한 사람 구한다는데, 아니?”
“아~니~ 몰라”
“몰랐어? 현이더러 한번 apply해 보라고 해”
“내가 왜 몰랐지? 알았어, 고마워” 정신이 버쩍 들었다.
현이는 우리 회사의 Physics Department에서 Summer job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전에도 막내에게 우리 회사에 자리가 있으면 일해 보겠냐고 물었을 때, 시큰둥했었다. 일이 boring하다나? ‘짜식이 아직 배가 불렀구나!’하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본인도 Sports Bar에서 hamburger를 굽는 것도 지친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든 공부를 한 대학 졸업자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아~니~ 내가 왜 그걸 몰랐지? 이미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Physics Department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Brian, 너의 Department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냐?”
“그래, 맞아”
“그럼 아직도 이력서를 받니?”
“이제 곧 마감할려고 해”
“그럼 아직 시간이 있는거야?”
“왜?”
“내 아들 현이 알지?”
“물론! Summer job으로 우리 Department에서 일했자나?”
“그래, 현이가 apply할려고 하는데…”
“빨리 하라고 해. 현이가 apply할 때까지만 기다릴께”
휴우~~~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막내는 부리나케 이력서를 준비해서 그 날 저녁으로 Brian과 HR Department에 e-mail로 보냈다. 녀석도 똥줄(?)이 탔던 모양이었다.
은경: 이제 태욱이가 7학년...
고등학교도 가야하고, 대학도 가야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공부를 더 하게 될지, 직장을 구하게 될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들의 장래도 장래거니와 저희 처신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고민이 많습니다...
이제 이민 5년차...
이제서야 정말이지 아는 거 없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 병아리들에겐
어진이님께서 들려 주시는 이야기들이 정말이지 산교육이 됩니다.
이런저런 간접경험...
누추한 우리 홈에서 직접 보게 해주시는 어진이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항상 말로만 감사하는 것도 참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오늘 맛난 떡 맹그는 거 배웠는데 맛보실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또 공수표가 아닌지 걱정도 하믄서... *^^*
어진이: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제공해 주신 은경씨가 더 고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