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할배 (세번째)
수미를 보고 온 후로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잠을 잘려고 눈을 감으면 수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와 있었고, 일을 하다가도 멍하니 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거~ 참 이상하네! 나만 그런 건가?’
순진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도 수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 아른해?”
“어~ 참 이상해!”
“나도 그런데……”
“그래서 핏줄이 땡긴다고 하는 걸까?”
“그러게 말야!”
“당신은 수미의 어디가 제일 예뻐?”
“전부 다!”
“난말야~ 수미의 입에 고렇게 예쁜거 있지~”
“입만 예뻐~? 전부 다 예뻐~!”
“알아~ 그런데 그 중에서 수미의 입술이 너무 예뻐”
“그래~?”
“수미의 입을 보고 있으니까, 수미는 말하는데 Talent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 같아!”
“그래~?”
“수미는 말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감동시키는 일을 잘 할 것 같아! 또 어려운 사람들을 잘 위로해 주고 격려해서 용기를 주기도 할꺼야! 두고 봐라, 아마 내 추측이 맞을꺼야!”
“할아버지를 닮았으면 오죽 말을 잘 하겠쑤!”
“좋게 봐 주어서 고맙쑤~!”
그러고 몇일 지났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세탁소에 들어서니, 순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여보, 오늘 준이 엄마가 왔었어”
“그랬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뭐가?”
준이 엄마는 순진이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고교동창은 만나기가 쉬워도 초등학교 동창생은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글학교에서 만났다고 했다.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어서 이야기했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워서 어쩔줄 몰랐다고 했다. 아이들도 나이가 서로 비슷해서 친구가 되었고, 두 사람은 가끔 만나서 수다를 떠는 철친한 사이가 됐다.
준이 엄마는 운명철학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책을 보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그래서 웬간한 운명철학자에 버금가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 녀가 순진이의 사주를 풀어 보더니 하는 말이
“얘~ 너희 집이 이만큼 사는 게, 진이 아빠 덕인 줄 아는데, 아니야! 절대적으로 네 덕인 줄 알어!” 라고 했단다. 그래서
“진짜 실력있네! 내 생각두 똑같애! 돗자리 깔라고 하지 그랬어!”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준이 엄마가 수미 사주를 봐주었어!”
“거~ 제발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했지!”
“재미있자나!”
“재미~? 당신 지금 재미라고 했어?”
“미안 해! 앞으론 안그럴께!”
“한번만 더 쓸데 없는 짓 해 봐라~!”
“여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까 부터 자꾸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준이 엄마가 당신이 한 말을 똑같이 하더라구!”
“그래~?”
“수미가 말에 Talent가 있을꺼구~ 뭔가 큰일을 해낼 아이래~!”
“거참~! ……그럼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으니까, 준이 엄마가 아니라, 내가 돗자리를 깔아야 되겠네! ㅎㅎㅎ”
난 사주팔자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좋다고 하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이쁘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은 제 자식이 제일 똑똑하고 모든 재능은 다 가져서 이 다음에 커서 굉장한 사람이 될꺼라고 생각한다더니, 내가 그 꼴이 돼가는 거 아닌가?! 세 아들이 태어났을 때, 바라는 것도 많았었고 꿈도 많았었지만, 내가 바라고 꿈꾸었던 것대로 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악을 썼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우리 수미는 어떤 아이로 자라날까?’
이제 태어난지 일 주일 밖에 안된 아이를 가지고 온갓 공상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내가 할아버지로서 수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듬뿍 사랑해 주는 것과 수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것 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