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이의 아들들 기른 이야기 2004-1-8
작년 년말에 어떤 어머니가 아들과 대화가 잘 안 통해서 속상해 하시는 글을 Internet에 올렸습니다. 그 분에게 제 경험을 글로 썼던 것인데, 혹시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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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님의 글을 읽고 ‘참 많이 힘드시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난 일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가 제일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십니까?
“우리애들은 얼마나 착한지, 제 할일 제가 다 알아서 하고, 공부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항상 1, 2등을 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어떤 때는 약이 오를 정도고, 밉기(?)까지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저는 님께 제가 아이들을 기를 때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아들만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1월생이라, 반에서 제일 큰 아이, 항상 Leader로 생활한 아이.
둘째는 반에서 제일 어린 아이, 키는 왜 그렇게 작았던지… 거기다 내성적이어서 항상 치이면서 산 아이.
막내는 활달한 성격에 형들에게 이기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서 산 아이.
제 소원중에 하나가 무엇이였는지 아세요? 둘째가 막내에게 팔씨름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팔씨름을 하면, 항상 막내가 이겼고, 이기고 나면 막내는 상대방을 KO시킨 권투선수처럼 두팔을 들고 이겼다고 뛰어 다녔습니다. 막내가 그때 만큼은 아주 미웠습니다. 둘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동생에게 지는 형의 자존심!
나이가 비슷해서 중학교 때는 같은 축구팀에서 경기를 했는데, 막내는 팀을 이끄는 선수로서 땀을 흘리면서 뛰는데, 둘째는 Bench에 앉아 있어야 했던 아이! 아이들에게 똑같이 해주었는데, 아니 둘째에게 더 정성을 쏟았는데, 둘째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둘째 때문에 많이 속상해 했습니다. 제가 쓴 글에 가끔 둘째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모든게 지난 지금은 담담하게 글을 쓰지만,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첫째와 참 많이 다투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다투었나?” 지금 생각해 보니까, 많은 경우에 제 욕심(?)을 아들이 채워 주지 못 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제가 바라는게 너무나 많았다고 생각했구요. 아들들이 성적표를 받아와서 제 얼굴 표정을 보면서 하는 말!
“아빠, 다른 아이들은 이런 성적이면 상으로 용돈을 받는데, 아빠는 얼굴 표정은 왜 그래요?” 였습니다.
아이들과 저의 대화 중의 일부분입니다.
“아빠는 정말 지기 싫어 하는 사람이예요.”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어떻게 아니?”
“아빠, 나이가 있는데, 왜 그렇게 약쓰면서 Squash를 쳐요?”
“악쓰긴~? 최선을 다 하는거지!”
“아니예요!!!”
“애들 말이 맞아요!” 아내가 옆에서 끼어 듭니다.
“당신 얼굴을 보면, 누가 이기고 졌는지 알수 있어요.”
“정~말~~?”
“말이라고 해요?”
“내 편은 하나도 없네……”
저는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있는 모양입니다. 암암리에 그게 아이들에게 작용을 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Stress를 준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 라고 이야기하지만,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기 아들 딸들이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남에게 칭찬 듣는걸 원치 않겠어요? 또 칭찬 듣을때 목에 힘이 들어 가지 않겠어요? ‘나의 지나친 기대가 아이들에게는 힘겨웠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뒤늦게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지나고 보니 “내가 어떻게 그걸 다 해냈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이민생활이 다 힘들었겠지만, 저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들 셋에 (첫째와 둘째는 22개월 차이, 둘째와 막내는 20개월 차이, 뭐가 그렇게 급했던지…) 수입은 저 혼자였고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게 일하는 것 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리(?)했음), 자동차는 한대, 아내는 면허는 있었지만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세 아들의 운동과 Lesson에 운전기사 노릇하는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영, Skate, Piano, 축구, Hockey….
아이들이 Hockey를 할때, 저는 10월 부터 4월까지 주말에 늦잠을 자 본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새벽 5-6시에 일어나서 바람이 쌩쌩부는 겨울 새벽에 잠이 덜깬 아이들을 데리고 Hockey area에 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야~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을 하는데, 너희들은 고것도 못 해주냐?”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생각이 아이들에게 큰 부담을 준 것 같습니다. 더욱이 큰 아들에게…… 큰 아들에게 거는 저의 기대 또한 제일 컷을 것이고, 경험이 없었으니, 무리한 것을 요구하기도 했겠지요.
큰 아들은 RCM (Royal Conservatory of Music)의 Piano course를 Grade 6 까지 끝마쳤습니다. 경연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타고 꽤 잘 쳤는데, Grade 6를 마치고 그만 두겠다고 해서 참 많이 싱갱이를 했습니다. 결국은 제가 져서 그만 두었지요. 그 후론 정말 신기할 정도로 피아노 건반을 건드려 본 적이 없습니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라도 한번씩 쳐볼 것같은데, 한번도 피아노를 치는 것을 못 봤습니다. 둘째는 Grade 3를 마쳤고 막내는 아예 Lesson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혼자서 독학을 해서 피아노를 곧 잘 칩니다. 세 아들 중에 피아노를 치는 아들은 막내뿐입니다.
제가 큰 아들에게 원하는게 하나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할려면 G12와 OAC(Ontario Academic Credit : 지금은 없어졌지만, 저희 아들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Grade 13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성적을 평균 85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동를 하고, Part-time으로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그렇게 할수 있는 머리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85점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82-84점에 머물었습니다. 그게 저를 속상하게 했습니다. 항상 1, 2점이 모자랐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성적표를 볼때마다
“야! 어떻게 항상 1, 2점이 모자라냐?”
“넌 할수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해 봐!”
“잘~ 듣어라! 이 1점이 어느 순간에는 네 인생을 결정 짓는 아주 중요한게 될수 있어!”
“1점이 너를 성공하게 만들기도 하고, 실패하게 만들 수도 있어!”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항상 1, 2점이 모자랐습니다. 오히려 10점이 모자랐다면 포기했겠지요. 저는 아버지로서 진정한 충고라고 생각했었는데, 큰 아들에게는 그게 큰 Stress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운동을 잘하던 첫째가 12학년 겨울에 열흘간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나중에 여기 저기서 듣은 이야기로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Stress때문에 아무런 이유없이 아픈 아이들이 꽤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Stress를 주지 않았는데……’ 정말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가 하고 싶어하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집을 나서는 큰 아들을 보면서 ‘정말 감사하다!!!' 생각합니다.
‘내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라고 생각하는데, 제 버릇 개 주겠습니까? 그러나 저에게 큰 위로가 되는게 있습니다. 저는 멋모르고 제딴에는 잘해보겠다고 좌충우돌했는데, 요즘 아이들로 부터 “아빠, 저희들을 잘 길러 주셔서 고마워요!”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듣더니…… 생각해 보면, 저도 똑같았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부모님의 속을 썩혀드렸겠어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자기 일은 모두 잊어 버리고…… 괜히 아이들만 들복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연습을 자주합니다. 나이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일찍이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연습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이 후회가 됩니다.
저는 잘 못해 봤지만, 아드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드님과 입장을 바꾸어서 하는 Role play를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요?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아드님도 언젠가는 “엄마, 고마워요!” 하며, 님께서 눈길을 두시간 이상 운전해 주신 것을 감사할 때가 꼭 올 것입니다. 이건 제가 장담합니다. 꼭입니다! 꼭 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03년을 의미있게 보내세요. 그리고 새해엔 활짝 웃을 수 있는 신나는 일들이 님의 가정에 많이 많이 생기길 빕니다.
Cheers!!!
예재맘: 어진이님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학교에 꼬맹이 아들냄이 데리러 갔다가 자존심 사정없이 무너지고 기분이 꿀꿀해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고 아이를 재우고 은경씨의 따뜻한 방이 그리워 와보니 뜻밖에 좋은 글이 있어 어느덧 마음이 많이 풀어 졌어요.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말씀을 드리면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모양이 될것 같아 생략하고 저도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겠구나, 아이가 뭐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아이의 눈높이로 보면서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했다는 말씀을 대신 드리고 싶네요. 어진이님의 다복하신 생활의 모습도 뵈어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지면서 은경씨가 무지무지 부럽고 샘나네요. 참, 전 잠수함 타는게 특기이지만 은경씨를 알고 지낸 짠밥수 (이렇게 쓰는게 맞나요?) 로는 선배라는것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은경씨와 조이언니한테 새해인사도 하고 하소연하러 왔다가 가슴깊이 좋은 말씀 묻고 갑니다. 좋은 하루, 좋은 한해 되세요. 은경씨 왜 안와? 여기 무지 춥다. 내일 전화 안받으면 난방비 절약하려다 얼어 죽은지 알아.
어진이: 예재맘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민의삶의 성공은 자식들이 부모들보다 더 풍요로운 삶(영적,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쓰고 있습니다. “짠밥”이 아니고, 아마 “짬밥”일겁니다. 제가 군복무를 할때는 콩나물 길이를 사용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짬밥수”를 쓰더군요. 밥그릇 수! 무시 못하지요.ㅎㅎㅎ. 하여간 반갑습니다. 잘 봐주세요.
조이: 예재엄마~~!! 우리 이쁜 예재 잘있지? 무슨 하소연을 또 하려구... 다 예재가 너무 똘똘해서 그런거니깐 행복한 비명 고만 지르라니깐~~!! 글구,...어이구 '선배'님 ..무시라....@.@ .... 어른한테 꺄불고 있어...
예재맘: 어진이님보다 내세울거라고는 짬밥수 많은것 밖에 없어 잘난척 한번 한거에요. 그저 예쁘게 봐 주세요. 2주후면 만 4살이 되는데 제 에미 골려먹는데는 따라올 자가 없고 제 에미 혈압올리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맹랑한 놈이랍니다. 그런데 고놈이 제 에미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이미지 관리를 제법하고 있어 그것이 더 얄미울때가 있다니까요. 꼭 제가 지 아들냄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것 처럼... 다른것은 못해줘도 영적으로 아이에게 풍족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중입니다. 자주 뵐수 있으면 좋겠네요.
지연: 저도 요즘 무지 힘드네요..7살 딸과 19개월 아들..나이차가 많아서..물과 불입니다...그래도 웃어야겠죠..ㅎㅎ
은경: 제가 젤루 먼저 달아놓은 꼬랑지는 어디로 간거예요? 아지매덜이 힘 없다고 구박하니 게시판까지 사람 차별하나... (사실 공부방에 남주언니한테 올렸던 것도 날아갔더랬어요. 요즘 아무래도 컴퓨터가 돈이 필요한가벼...ㅠ.ㅠ) 암튼 어진이님 인기 짱^^이시구만요. 오래도록 누려 주시길... *^^*
어진이: 지연님, 그럼요 웃어야지요! 시간이라는것이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