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이야기 (마지막편) 2006-5-18
이민와서 살아보겠다고 물불 안가리고 열심이 뛰었던 한국의 아내들! 얼마나 열심이 살았느냐 말이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 하루에 24시간이 모자라게 살지 않았는가! 그렇게 열심이 산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도 속상하는 일이데…… 애써 모아놓은 재산(?)이 자기가 원하던 쪽으로 써지지 않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세상 떠난 아내가 어디선가 보고 있다면 그 심정은 기가 막히리라! 가끔은 세상 떠난 아내의 산소에 꽃이라도 들고 찾아간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헌 아내의 자취는 옛날 고리짝에 잊어버린듯 살고 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자식들은 찬밥 신세가 되고 알량한 남편이라는 사람은 새장가들어서 싱글벙글하면서 살고 있고…… 불쌍한 자식들이 “엄마, 왜 이렇게 일찍 갔어~!”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면…… 아마 긴머리 풀고 꿈에 나타나 남편의 목을 조르지 않을까?
순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하다 말고 무슨 생각을 해?”순진이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어~? 어~~”
“무슨 생각을 했느냐니까!”
“아무 생각도 않했어”
“안하긴~ 분명히 했는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나니까, 약간 이해가 되긴 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아직도 할 말이 있어?”
“너무 불공평해”
“그게 여자와 남자의 차이이고, 모성과 부성의 차이야!”
“뭐~ 모성이나 부성이나 그게 그거지!”
“천만의 말씀!”
“……”
“남자들은 새장가 갈 생각부터 하지만 여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 먹여 살릴 궁리부터 한다구~ 알기나 해?”
“……”
“혼자 된 여자들을 보라구~ 먼저 보낸 남편 생각하면서 자식들 잘 기르잖아!”
“당신 지금 소설 쓰고 있어?”
“소설? 사실이잖아”
“여자들은 다 열녀고 남자들은 모두 촛불 못 끄는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아?”
“……”
“다 사람나름이야! 사람나름!”
“사람나름이지.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라구 어느 쪽이 맞는지”
“당신~ 요즘 통계 꽤 좋아하더라~”
“……”
“통계라는 것 말짱 꽝이야!”
“왜~?”
“중요한 건 당신 남편이 어떻냐 하는거야”
“하기사…”
“그런데 당신은 날 아주 뭉개버렸어!”
“화났어?”
“화가 났다기 보단 무진장 섭섭하다!”
“……”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보였다는게……”
“……”
“아이들은 당신 자식이기도 하지만, 내 자식이기도 해! 우리들의 자식들이라구!”
“당신 정말 많이 섭섭 했구나~!”
“말이라구 해~?”
“미안해~!” 순진이가 뺨에다 입을 맞추었다.
“저리 가~ 이 여자가 왜 안 하던 짓을 해~!”
“에~이 남자가 쫀쫀하긴…”
“내가 그랬지~! 쫀쫀이라는 말 쓰지 말라구!”
“알았습니다. 쫀쫀이 영감님~! ㅎㅎㅎ”
“한대 맞을래~?”
“아야~” 순진이 머리통에 알밤을 한톨 먹였다. 4등분해야 한다고 했던 순진이의 말에 대한 분풀이였다.
얼마 지나서 친구들이 우리집에 모여서 저녁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보통은 친구들이 모이면 여자는 여자들 끼리, 남자는 남자들 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 날은 내가 제안을 해서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남녀가 함께 모여 앉아서 세상사는 이야기, 아이들 기르는 이야기, 남편들 흉보기 등등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래간만에 아내들과 남편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남자 여자 따로 따로 모여서 이야기를 했을까?’
내가 순진이와 다투었던 유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나간 일이였지만 나자신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이야기라고 하기엔 좀 챙피해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고 유서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정말 “딱소리”나게 의견이 둘로 갈렸다. 여자들은 모두 순진이의 결정이 옳다고 했고, 남자들은 하나 같이 말도 안돼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부부들이고, 모두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유서 이야기가 나오니, 서로 침을 튀기면서 공방전을 벌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나와 순진이가 저렇게 타투었겠지? ㅎㅎㅎ’
재미있었다! 그리고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 혼자만 당하는게 아니라고 생각을 하니 안심(?)이 됐다.
‘남자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단 말이냐!’
“이봐 이봐! 좀 조용히 해 봐! 조용히 하라니까!”
“……”
“결론은 집에 가서 단둘이서 내리도록 하라구~”
“아냐~ 아냐, 여기서 함께 결론을 내리자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ㅎㅎㅎ 조것은 내가 한 소리지? 정말 신기하네!’
“아~니, Danny 아빠 왜 말이 안된다는 거야?”
“그만들 하세요. 이러다가 싸우시겠어요. 내가 괜한 이야기를 꺼낸 모양이군!”
“괜한 소리가 아냐! 이거 심각한 거라구~!”
“남자들이 양심이 있어야지요~~!”
‘조건 순진이가 한 말이고… ㅎㅎㅎ’
“아니 왜 여기서 양심이 나와~~~?”
“여보, 당신 집에 가서 나한테 혼나고 싶어~?”
“ㅎㅎㅎㅎㅎ”
“야~ 넌 가만이 있어! 몸조심하는게 좋아”
‘어떻게 생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야~ 잠간만, 이 이야기가 누구네 집 이야긴지 알아?”
“누구네 집인데?”
“너희들이 잘 아는 사람이야”
“누군데?”
“우리집…”
“뭐라구~? ㅎㅎㅎ”
“하여간 고맙다. 나 사실은 많이 depress됐었어!”
“……”
“순진이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고…… 인생 헛살았다고 생각했었어~”
“짜식, 쫀쫀하긴…” 순진이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 말 이이가 제일 싫어 하는 거 알아요? ㅎㅎㅎ”
“여보~, 거기까지! 많이 위로 받았다. 매도 여럿이 맞으면 덜 아프다잖아”
“고민되는 일있으면 또 저녁차려 놓고 불러”
“알았어”
즐거운 저녁이었다.
“그런데~ 유서는 뭐라고 쓴다?”
로빈: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때,남자들은 재혼을 하는경우가 많치만 그것도 재산이 좀 있어야 가능합니다.그렇치못하면 아무여자도 안오고 홀애비로 밥이며 반찬, 빨래하며 궁상맞게 삽니다. 돈이 없다고 남자들은 자녀한테 기대기도 쉽지않습니다. 왜냐하면 며느리, 사위들이 싫어하고 그러면 할수없이 홀애비로 살아야 합니다. 여자들은 자식들과 대부분 함게 삽니다. 살림도 도와주니까 누구라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재혼하는 것이 자녀들로 볼때도 좋은게 아닌가요? 만약 남자가 재산이 있는데 혼자 살면, 대개 자식들이 빼았아 갑니다. 사업한다, 애가 아프다, 집산다 등등....
주위를 돌아다 보십시요. 제말이 거짓말인가.
로빈: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역시 삶의 진솔한 글은 항상 감명을 줍니다. 저는 아직 나이가 젊어서(?) 유서 까지는 안썼어도 보험은 잘 들어놨습니다.
예쁜이: 음..이번에도 저에게 딱 맞는 글을 올리셨군요..^^ 우리부부도 유서를 만들어야지...하고 생각은 진작 했지만서도 실행을 못 옮기고 있답니다. 재산이 50만불 이하면 만들 필요 없다고 하는 듯도 하고…… 생명보험인가를 들고싶어 알아보니 보험은 드는 순간 손해라고 하고....그래서 유서든, 보험이든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요..실은 게으른 처사지만..먼저 만드시면 그 과정좀 이야기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어진이: robin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두 부부가 모두 건강히 함께 사는 것이겠지요.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사이좋게 다시 신혼살림을 하는 것 같이 살면 더 좋고… 저희집은 이젠 정말 빈둥지가 됐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결혼을 하니까, 아내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더 서로을 위해 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자식도 중요하지만, 아내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