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격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어느 안과의사와 작은 분쟁이 있어서 다른데 신경을 쓸 여유가 적었습니다.
참, 제가 난생 처음으로 Prescription Eye Glasses를 구입했습니다. 평소에는 안경을 착용할 필요가 없는데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안경을 착용해야 합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아마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읽을 때 Reading Glasses를 써야 작은 글자를 볼 수 있는 ‘비극적인’ 자기신세를 한탄한 나머지 이런 말을 내뱉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안과의사와의 분쟁이란 다른 게 아니고 작은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는 프로패셔날 답지 않은 Attitude 문제를 지적한 것인데, 인도 힌디계 브라만 출신 특유의 문화적 자부심을 감안하더라도 좀 지나치다 싶어서 그 Optometrist가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Sears Optical에 네 페이지 짜리 항의공문을 보냈습니다. 짧게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설명은 생략합니다.
각설하고, 이제 두 주일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 5 개국 순방일정은 완벽하게 짰고, 오늘 구체적인 일정을 공지사항으로 작성해서 가족들에게 e-mail로 발송했습니다.
왜 5 개국 이냐고요? 미얀마와 라오스를 잠깐씩 건너갔다 오기로 했고, 태국 갈 때 홍콩을 경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직항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직항으로 가지 않고 이렇게 가면 비즈니스 클라스의 풀 코스 정식을 세 번이나 먹을 수 있다기에 그렇게 표를 구입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잘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
이번 여행의 핵심은 골든트라이앵글입니다. 새벽에 치앙마이를 출발해서 치앙쎈을 거쳐 메사이라는 국경마을로 가서 미얀마를 다녀오게 됩니다. 라오스는 치앙쎈 에서 노 젓는 카누 비슷하게 생긴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가면 됩니다.
메사이는 인구 수 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불과 10 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 정보-수사기관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던 곳입니다. 주변의 광대한 고산지대에서 생산 제조된 각종 마약의 집결지 역할을 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태국 국경 수비대 및 메사이 경찰서 휘하의 무장병력과 마약 생산 조직 민병대간의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던 곳 이기도 합니다. 마약 생산 판매루트를 관장하고 있는 조직 중 가장 강대한 세력은 아시다시피 역시 쿤사의 조직이었습니다. 1996 년 그가 미얀마 군사정권에 투항할 때까지 그는 이 일대 약 10 만 평방킬로미터(남한 면적은 9 만 9 천)에 이르는 지역을 관장하며 연간 1 백 만 톤이 넘는 생아편을 생산-판매했다고 합니다.
1980 년 대 후반 이후 미국정부의 집요한 체포 공작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미얀마 정부로부터 신변보호약속을 받아낸 쿤사는 수도 양곤에서 비교적 조용한 여생을 보내다가 2007 년 10 월 26 일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타계했습니다. 시신은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했던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저택에는 예불을 드리던 법당이 있었다고 합니다.‘독실한’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정말 나쁜 놈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그의 불심이 독실했다 한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지요.
매일 빠짐없이 예불을 드렸다는 쿤사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매주 일요일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다녔다는 골든트라이앵글의 가장 유명한 바이어 프랭크 루카스가’ 생각납니다. 1968 년부터 1975 년까지 맨하튼 마약루트를 장악하고 있던 뉴욕 마약왕 프랭크 루카스가 바로 그 사람이죠. 사실 쿤사는 죽을 때 까지 루카스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루카스 역시 당시 태국 북부 정글에 있는 어느 마을에서 그가 만났던 중국계 사나이가 쿤사였다는 증언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파격적인 거래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릴 정도의 권한과 배포를 가졌던 사람이 그리 흔치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그 사나이가 혹시 쿤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어쨌든 골든트라이앵글로부터 순도 100 % 의 헤로인을 공급 받아 1970 년 대 초 미국 마약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 올랐던 전설적인 인물 프랭크 루카스는 회고록에서 그의 열 두 살짜리 사촌동생이 KKK 단원들에게 잔혹하게 맞아 죽는 모습을 본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열매란 항상 용기와 부지런함을 겸비한 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불법마약은 국제적 단속망을 피해야 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선이 철저하게 차단된 점조직의 비밀유통망을 확보하지 않으면 거래자체가 불가능한 상품입니다. 당시 동남아 일대의 마약 전달루트를 장악하고 있었던 트라이어드 같은 중간매매조직을 따돌리고 생산자와 직거래를 시도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짓이었습니다.
인터폴과 각국 정보기관, 그리고 기존 유통조직 등 삼중 감시망을 뚫고 직거래를 성사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누구도 이 흑인 건달을 주목하지 않았고, 그가 어느 뉴저지 지방검사의 집요한 추적으로 체포될 때까지 수 년간 아무도 이 희한한 거래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약조직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동남아시아 주재 미국 정보기관 조차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쿤사든 국민당 패잔병 그룹의 보스든 조직의 관례를 깨고 루카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비즈니스적 계산 이외에 그의 용기와 부지런함,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판단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들어 본적이 없는 한 흑인 건달에게 돈을 받았다고 해서 관례를 무시한 거래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쿤사는 어떤 사연으로 마약왕이 되었고 이 지역이 왜 피비린내나는 마약전쟁의 현장으로 둔갑했던 것 일까요?
골든트라이앵글 마약열전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악역은 쿤사도 국민당도 트라이어드도 아닙니다. 바로 미국 넘들 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의외의 신선함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항상 착한 역으로만 나오던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서는 몽땅 악역으로 나오기 때문인데, 이 미국 넘들은 한결같이 악역 전문 ‘허장강’ 식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아주 지겹기까지 한 배역입니다. 골든트라이앵글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들은 모택동의 홍군을 남쪽에서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퇴각해 내려 온 장개석의 패잔병들이 미군무기로 무장하고 마약재배를 통해 경비를 조달하는 행위를 묵인하고 지원했습니다. 1960 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이 통일된 1975 년까지 전쟁 중에는 최신 미제무기로 중무장한 마약 민병대가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 국경지대를 누비며 친미 반공 게릴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 CIA 와 FBI는 미군의 비호를 받는 이 마약조직을 통해 엄청난 양의 헤로인이 자국의 동남아 주둔 군대는 물론이고 미국 본토를 비롯한 전 세계로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방관했고 오히려 다른 정보루트를 통해 이를 감지한 뉴저지 마약수사대의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정부가 국제마약조직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이들의 국내조직과 연계된 경찰관들을 이른바 뇌물수수혐의로 일제 소탕한 시기가 베트남 전의 종전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시사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국제 마약조직간의 인연은 참으로 끈끈하고 질기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트남 전쟁 당시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 조직을 활용해 먹은 미국이 아프칸 침략전쟁에서는 ‘황금의 초생달’ 지역의 마약조직을 기반으로 친미 카르자이 괴뢰정권을 수립하기도 했으니까요. 미국의 정보책임자들과 아시아의 마약상들은 아마 전생에 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주와 창녀 관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입니다.
쿤사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옆으로 샜군요. 쿤사는 1933 년 생입니다. 미얀마 고산 소수민족인 샨 족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장치푸(張奇夫)라고 합니다.
쿤사에게 군사기술과 양귀비 재배법을 전수해 준 것은 이 지역까지 쫓겨내려 온 중국 국민당의 패잔병들이었습니다. 아마 그의 나이 10 대 중 후반 때였을 것입니다. 고산족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소년 쿤사는 산악게릴라전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 소양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산악 군사소양과 이때 배운 양귀비 재배기술을 바탕으로 후에 강대한 마약생산과 산악 민병대 조직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1960 년 대 버마 정부군의 장교로서 샨족 등 소수민족 반란진압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는데 스스로가 소수민족으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그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임무였을 것입니다.
이 때부터 그는 마약거래를 시작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비즈니스영역과 군사조직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이 지역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 계기는 1967 년 쿤사의 민병대와 기존의 국민당 패잔병 그룹간의 주도권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 중 느닷없이 CIA의 지원을 받은 태국 정규군이 개입해 국민당 패잔병 그룹을 공격함으로써 쿤사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화된 것 입니다. CIA의 목적은 이들의 무장해제가 아니라 이들을 압박함으로써 국경지대의 Red Meo 등 소수민족과 공산게릴라들을 소탕하는데 유격전의 달인들인 이 마약조직을 이용하자는 것 이었습니다.
제가 동남아시아 전문기자가 아니니 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골든트라이앵글이야말로 미국의 정치 군사적 목적 때문에 전 세계 수 천 만 명이 마약으로 희생되는 것을 정책적으로 방조하고 비호한 20 세기 제국주의 범죄의 가장 추악한 역사 현장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지금은 초라한 마약 박물관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짜 담배나 파는 상인들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달리 볼만한 것도 없는 초라한 시골마을에 불과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다녀 올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로 볼 것도 없는 그 곳을 굳이 가 보려고 합니다.
자세한 보고는 다녀와서 다시 하겠습니다.
추신: 그동안 반가운 이름들이 많이 다녀가셨군요. 그 중에서도 pioneer 님이 가장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