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마리 양 2012-11-05
오늘 우연히 Susan Boyle의 노래하는 모습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Susan Boyle의 공연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습니다. 현재로 1억 1000만 명이 보았더군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3년 반이나 지났는데, 아직도Susan Boyle의 공연을 보면서 열광을 할까요?
Susan Boyle은 어려서 부터 많은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화면에 비친Susan Boyle의 모습은
“아~ 저래서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겠구나!” 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말과 행동, 뿌시시한 머리 모양, 옷차림새가 모두 촌스럽고 약간은 바보스럽고……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 등 주책스러운 아줌마의 전형이었습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Susan Boyle의 공연을 처음 보았을 때, 예수님의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수없이 이 비유를 접할 때마다 ‘왜 한 마리의 양이 무리를 떠났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설교자들과 성경 주석가들은 그 양을 죄인에 비교하고 문제아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 양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양의 무리를 떠났고, 선한 목자의 곁을 떠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는 죄인이고 문제아인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헤매다가 그를 찾아서 품에 안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죄인를 찾으신 아름다운 예수님의 비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Susan Boyle의 공연을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양은 죄인도 문제아도 아니었지만, 그 무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의 놀림과 업신여김과 따돌림이 목자와 다른 양들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떠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떠나야만 했던 양의 심정을 이해할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외톨이가 되어서 떠나야만 했던 양을 목이 쉬도록
부르며 찾아 다니던 선한 목자을 그려보았습니다.
마침내 외톨이였던 양을 찾고 좋아하는 선한 목자을 그려보았습니다.
저에게 Susan Boyle의 동영상은 양무리를 떠나야 했던 외톨이 양 비유의 재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 심사위원들의 표정도, 관중들의 표정도 비웃음이었고
“주책없는 아줌마가 도대체 어떻게 하나 보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Susan Boyle이 Elaine Paige 같은 가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끝난 후 관중들의 환호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Piers: “전혀 의심없이, 당신의 노래는 제가 3년간 심사를 하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거기 서서 Elaine Paige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린 모두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웃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놀랍습니다.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Amanda: “뭐라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 모두 당신을 믿지 못하고 비웃었습니다. 참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Simon: “저는 당신이 무대로 걸어나오는 순간, 당신이 큰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제 말이 맞았습니다.” Simon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머숙해 했습니다. 놀라움과 반성의 표정이 엇갈렸습니다. 농담으로 얼버무렸지만, 미안한 표정이 역역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Susan Boyle, 당신은 당당하게 머리을 높이 들고 Three “X”를 가지고 당신이 사는 동네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래 후에 가진 심사위원들의 대화와 관중들의 표정과 환호는 아혼 아홉 마리의 양들이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 선한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지고 와서 가진 잔치가 이랬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Susan Boyle 이 공연한 “Britain’s Got Talent”는 잃어버린 양을 다시 찾은 잔치자리였습니다.
약자와 소외당한 사람들을 보듬어야할 교회가 생긴게 좀 다르다고, 색갈이 다르다고, 행동이나 삶이 자기들과 다르다고, 많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모는 것을 봅니다.
오래 전에 어떤 글에서 읽었던 어느 사람의 말이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교회에 오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왜 교회을 안 가십니까?”라는 질문에 한 대답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교회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돈도 있어야 하고, 지위도 있어야 하고, 옷차림새도 봐줄만 해야 하고…… 안 그러면 교회문을 들어설 때 자기가 교회에서 환영을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외톨이로 만들었고, 또 양의 무리에서 내쫓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죄인이나 문제아가 아니었고, 저희들이 만들어낸 왕따당한 외톨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가서 저희들은 그들에게 죄인이라는 누명까지 씨우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이제부터 더 이상 잃어버린 양들을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