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반란 당시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묘, 동작동 국립묘지
이민살이에 정신 없이 몇년이 후다닥 지나고, 어느날 친구가 소포를 보내왔다. 그 속에 월간조선 9월호와 녹음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그 후 해마다 이때쯤에는 전두환 일당의 반란 기록을 읽거나 녹음 테이프를 듣는다. 그외 여러가지기록이 있다.
12.12 반란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준 전시체제 국가에서 국군 공식 명령계통을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능멸하고 조롱하고 무력화한 사건이다.
김용휴 국방차관(당시): 이 자는 육사 5기로 이건영 3군사령관(당시)과 육사 동기다. 이자가 전두환을 동경사로 전출 시키려는 걸 밀고해 사달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것이 사건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것은 아니지만.
이자는 반란이 성공할 즈음인 13일 오전 3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건다.
"응 난데." "응" "장관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나를?" "상의 좀 하자고." "가는 길이 안전할까?" "안전하지, 잠깐 기다려봐." 잠시 후 "응 안전해." 3군 사령관은 국방부로 향했다.
안내를 받아 장관실에 들어가 경례를 하자 장관은 "저쪽에서 뭐 조사 좀 하자는데." 하며 턱짓을했다. 3군 사령관은 곧장 보안사 요원들에게 무장해제 당하고 끌려갔다.
노재현 국방장관은 육군총장 공관에서 총성이 나자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국방부 지하에서 1공수 병력에 체포되어 전두환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육군 정식 명령 계통은 사조직 하나회에 철저히 농락 당했다.
사건 초기 장태완 사령관은 장세동 30단장에게 그놈들 다 쏴 죽이던가 체포 하라고 지시한다. 장세동 대령은 "사령관님 제가 나중에 무릎 꿇고 빌겠습니다." 사령관 지시에 대놓고 항명을 했다. "이 새끼야, 나중에 무릎꿇고 빌면 뭐해?" 나중에 장세동이 무릎 꿇고 빌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9사단 참모장 구창회 대령도 3군 사령관 이건영 중장에게 허위보고를 한다. 사령관은 30연대장 김봉규 대령이 출동 지시 받았다고 보고하자 곧장 구창회 참모장에게 전화를 한다.
"이봐, 30연대가 출동한다는데 어떻게 된거야?" "연대 출동 안 합니다." "그럼 뭐가 출동하는 게 있나?" "연대 출동 안 합니다." 구창회 대령은 끝까지 허위보고로 일관했다.
그게 남북이 대치하는 상태에서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의 장교들의 실체였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사는 게 아니라 사적인 의리에 죽고 산다.
* 전두환 일당은 반란을 일으키긴 했으나 그래도 감히 국가 기록 문서를 파기하지 못하고 보존해 15년 후에라도 진상이 밝혀졌으나 윤석열 김건희는 기록문서 다 파기해서 그들의 기이하고 해괴한 행태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 같다.
* 허가 중에 한명인 허화평은 아직도 유튜브에서 간악한 혓바닥을 놀리며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데... 진실은 허위를 상대할 때 조용하나 허위는 진실을 상대할 때 시끄럽게 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