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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7610 작성일 2023-12-28 07:08 조회수 1559

 

사람은 똑같지 않다. 따라서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다. 각자의 재능도 다 다르다.

 

일단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축구 선수가 되고 팀이 구성되며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들은 모두 축구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각광받는 스트라이커가 되고 어떤 사람은 만년 벤치 신세가 되기도 한다. 득점왕 스타 스트라이커는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요리하다가 장사를 시작하여 체인점을 내고 결국 백종원처럼 외식 사업에서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음식점 사장들이 백종원처럼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백종원이 자기가 벌이는 사업에 비해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되는 자그마한 분식점 주인할머니를 비웃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돈이 너무 좋아서 돈 버는 일에 집중하여 크게 부자가 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을 좋아한다고 누구나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부자는 부자가 못된 사람들을 우습게 보진 않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돈이 있건 없건 맘 편히 사는 아내나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나는 차를 굴릴 형편이 못돼 전철과 버스를 타는 시절에도 잘만 놀러 다녔다. 시외버스를 타고 설악산, 지리산 등등을 올라가 산속에서 노숙자처럼 잤다. 나는 노숙자가 되도 맘 편히 즐겁게 놀 수 있는 사람이다. 진짜다. 난 한때 노숙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세이노의 경우는 삶의 기준이 돈이다. 그는 돈이 없어서 자살까지 기도한 사람이다. 즉 그에게 돈 = 생명이다. 병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중요하다. 그는 병적으로 돈에 집착한다고 했다. 어느정도냐 하면 가난한 사람은 살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손목을 두 번 그었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세이노는 부자가 됐다. 여기서 그의 문제점이 시작된다. 그는 빈자를 능욕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돈은 삶과 죽음을 정하는 기준이고, 선과 악을 가르는 척도다. 따라서 부자는 생명이자 선이고 가난뱅이는 죽음과도 같은 악이다. 돈이 승리자와 패배자를 나누는 기준이다. 돈을 가진 승리자는 갑질을 할 권리가 있으며 가난뱅이 패배자는 갑질을 당해 마땅하다. 돈을 가진 자가 귀족이며 빈자는 천민일 뿐이다. 부자의 시간은 소중하고 빈자의 시간은 쓸모없다. 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은 부자에게만 해당한다. 가난뱅이에게는 건강마저도 사치다. 부자는 행복해야 하고 가난뱅이는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 부자의 삶은 즐겁고 빈자는 재미없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부자는 부지런하고 빈자는 게으름뱅이다. 부자는 정상인이고 가난뱅이는 성격 파탄자들이다. 부자는 고귀하고 빈자는 천박하다. 오로지 돈을 가진 자만이 아름다운 엘프다. 가난뱅이는 추악한 오크에 불과하다. 그가 쓴 ‘세이노의 가르침’ 책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패턴이다.

 

세이노가 믿는 것은 오로지 돈 뿐이다. 그는 돈 이외의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오죽하면 필명까지 Say No 다. 그는 부동산 투자를 할 때 그보다 부자인 사람이 내놓은 물건은 아예 현지 조사조차 안 하고 매입한다. 자기보다 부자인 사람의 안목을 믿기 때문이란다. 그의 돈에 대한 신뢰는 이처럼 중차대하다. 따라서 이처럼 완벽한 신과도 같은 돈을 많이 가진 나, 세이노는 우월한 존재다. 자기가 우월하므로 자신보다 가난한 직원과 타인에게 행하는 갑질이나 개지랄은 정당하다. 부자인 나의 주변에서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다 개새끼, 18년들이므로 나의 욕을 처먹어 마땅하다. (세이노의 가르침 2, 7 편 참조)

 

다시 한번 반복한다. 그는 ‘병’적으로 돈에 집착한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기 손목을 두 번 그었다. 굶어 죽는 지경이 되어도 수입이 뻔히 보이는 일은 하려 하지 않았다. 즉 받는 돈 이상 일하려 하지 않았고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느니 그냥 죽자고 결심하고 실행해 옮겼다. 자살에 실패한 후 그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결국은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밑에 직원을 두는 사장이 되었다. 그는 돈을 더더욱 벌기 위해 자기 직원들에게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가난뱅이는 받는 돈 이상 일하려 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 일이나 하려 하지 않는다’ 라는 말들을 자기 직원들에게 떠벌린다. 오로지 자기 직원들을 일 시켜 돈을 더 벌어 내기 위해 자기가 자살할 당시의 상황까지 까먹었다. 이런 자기 모순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쌍욕을 섞어가며 룸싸롱 접대를 비난하다가, 미모의 여직원을 채용해 접대부로 만드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직원이 마음에 안들면 개지랄을 떨어대다가, 마침내 자기처럼 개지랄을 떠는 상사가 훌륭한 상사라는 궤변까지도 떠벌린다. 이런 개소리들을 모아서 결국은 책까지 냈다.

 

나는 그가 꽉 막힌, 사방이 꽉 막힌 꼰대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죽을 때까지 자기 생각을 못 고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내 유년 시절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는 말을 못 믿을 것이다. 그는 가난한 나의 빈민가 시절이 따뜻한 기억으로 충만했다는 말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세이노의 가르침 3, 4 편 참조)

 

세이노에겐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누군가에겐 돈이 아닌 다른 것이 삶에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비록 돈은 없지만 나의 시간들을 참 재미있게 써 왔다. 그 시간들은 나의 추억이 되었고 나만의 컨텐츠가 되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즐겁다. 아마도 세이노는 오직 돈만을 벌기 위해서 그의 청춘을 낭비했을 것이다.

 

친구들과 술내기 당구를 쳤다. 당구에 진 놈은 돈이 없어서 손목시계를 맡겼다. 그리고 학교 뒷골목 선술집에서 두부찌개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역시 돈이 없어서 학생증을 맡기고 외상을 했다. 되도 않는 말들을 지껄이며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마시고 놀다가 차비가 없어 한밤중에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술에 취해 교내에 있는 분수대에 빠져 같이 허우적거리며 낄낄댔다. 학교 근처 선술집에서 독한 막걸리 밀주를 마시고 과하게 취해, 비오는 다음날 아침 공사판 하수관용 토관속에서 일어났는데 같이 마시던 놈들이 모두 각자의 토관을 하나씩 차지하고 곯아 떨어져 있는걸 발견하고 배꼽을 잡았다. 이런 병신 짓이 몇 년 동안 쌓이고 쌓여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그리고 지금도 만나면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격의 없이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나의 청춘은 이 친구들을 만나는데 투자됐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성공적인 투자였다. (세이노의 가르침 5편 참조)

 

산 밑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집 근처에서 모친과 아내와 같이 텃밭을 일궜다. 집 서늘한 곳에서는 직접 맥주와 막걸리를 주조했다. 옥상에서 숯불을 피워 바베큐를 했다. 텃밭에서 딴 상추, 깻잎, 풋고추 등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고 직접 만든 맥주를 마셨다. 모친과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푸짐한 음식을 즐겼다. 후식으로 직접 기른 찰옥수수를 삶아 먹었다. 꺼져가는 숯불에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나 고구마를 던져 넣었다. 웃음소리가 흘러 넘쳤다. 그때 넘쳐나게 수확되는 오이를 주변에 나눠줘도 남아돌아서 처치 방법을 찾다가 아내가 피클을 담궜다. 나는 지금도 과하게 시지도 달지도 않았던, 그 완벽한 피클 맛이 그립다. 어우,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행복한 추억이다. 내가 직장 생활을 통해 번 돈들은 재테크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의 행복을 위해 쓰여졌다. 그리고 내 시간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삶의 재미를 위해 투자되었다. 엄청나게 성공적이다. (세이노의 가르침 18편 참조)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생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몰빵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안 될 것이다. 항상 세이노를 수식하는 말이 있다. 천억 원대 부자. 세이노 = 천억 원이다. 오징어 게임의 상금 두 배가 넘는다. 최근 세이노를 가리켜 이 시대의 스승이라고 칭송하는 경제지 기사를 봤다. 그렇다. 2020년대 한국은 천억 원대의 돈이 스승을 하는 세상이다. 소시민인 내가 아무리 다른 방식의 삶을 얘기해도 천억 원이라는 돈 앞에서는 빛을 바랜다. 거꾸로 천억 원이라는 액수의 돈이 하는 말은, 그게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기득권을 위한 음모일지라도, 대중에게 각광받는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표 : 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

 

위 표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한국은 현재 오징어 게임 속에 있다.

 

위 조사 결과를 차치하고, 다시 한번 이 말을 하고 싶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누구나 스트라이커가 되는 건 아니다. 식당을 운영한다고 누구나 백종원처럼 되진 못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며 자기의 인생을 몰빵해도 진짜 부자가 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이는 통계로 증명되는 진실이다. 오징어 게임을 봤다면 알 것 아닌가. 450여 명의 참가자 중에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 돈을 차지한다.

 

돈을 벌기 위해 세이노처럼 전쟁 속에 살아간다면, 그리고 결국 부자조차 못 됐다면, 그 얼마나 아까운 시간들인가.

 

젊은 시절 아랫배가 살살 간지러워지는 설레임 속 연인과의 알콩달콩, 평생 갈 우정을 쌓아 나가는 과정,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독서의 여정,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며 느끼는 감정,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멍 때리는 시간들, 지나가는 이쁜 길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는 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깨를 볶는 신혼의 순간들,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같이 만드는 추억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을 재운 후 부부가 맥주캔을 들며 도란도란 대화하는 시간들, 저녁에 웃음이 넘쳐나가는 가족들과의 식사 시간...

 

이러한 것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 모두가 일상의 평화와 행복을 버리고 돈의 전쟁 속으로 자발적으로 뛰어든다. 아마도 대부분은 전투에서 전사할 것이다. 그리고 승자는 최전선에 뛰어든 그들이 아닐 것이다. 최종 승리자는 이 돈의 전쟁을 부추키는 세이노와 같은 자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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