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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여름에 서울로 갔다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8222 작성일 2024-08-01 17:23 조회수 942

 

“왜 이렇게 습하죠?”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 심사를 위해 같이 걸어가던 아들 녀석의 말이었다. 나도 역시 뭔가 답답하고 습하면서 후덥지근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을 다녀왔다. 12년의 이민 생활 동안 한국을 자주 방문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돌이켜 보니 여름에 한국을 방문하는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 습하고 무더운 한국의 여름을 잊고 있었다. 청량하고 맑은 아침을 가진, 건조한 여름속의 캘거리에 익숙해져 버렸다. 한국의 고온다습한 기후는 약간 고역으로 다가왔다. 아침부터 온몸을 끈적끈적하게 하는 습기는 캘거리 여름의 청량한 아침을 그립게 만들었다.

 

아내는 김포공항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일반 호텔이 아니라 주택가의 방 두 개짜리 신축 빌라를 빌렸다. 시내 중심부와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만 별로 불편하진 않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었고 지하철만 타면 서울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민 오기 전에는 대충 팔개 노선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수인 분당선이니 김포 골드라인이니 서해선이니 하며 노선도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집 근처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민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제품들이 있었다. 밀키트라고 하는 것들인데 엄청나게 많은 종류를 자랑했다. 어떤 건 엉터리지만 메이저 브랜드에서 나온 약간 비싸 보이는 것들은 그럴듯한 맛을 내기도 했다. 더 이상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등등을 요리하지 않아도 된다. 밀키트를 냄비에 붓고 팔팔 끓이기만 하면 그냥 먹을만해진다. 점점 혼자 살기 최적화된 세상이 되어간다.

 

한국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중차대한 문제다. 재활용으로 지정된 걸 함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분리수거를 할 때도 정확히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컵라면을 먹고도 깨끗이 씻어서 재활용을 해야 한다. 삼다수 대형 생수병도 포장지 레이블을 제거한 후 압축하여 정해진 날짜에 지정된 장소에 놓아 두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아무 때나 함부로 내놓을 수 없다. 계란 껍데기 마저 한국 웹사이트를 참고하여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일반 쓰레기로 버리며 규제에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숙소로 묵은 빌라 입구에 쓰레기와 재활용에 대하여 하도 엄중하게 경고가 있어서 뭔가를 버릴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 처리했다. 스트레스!

 

아내는 장인 장모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며칠간 지방으로 내려갔다. 아들 녀석은 매일 점심쯤 나가서 밤 늦게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끝마치지 못하고 뒤늦게 캐나다로 끌려 왔지만, 역시 학장 시절의 친구가 오래 가는가 보다. 내게도 익숙한 아들의 친구 이름들이 들려왔다. 오늘은 이놈과 만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내일은 저놈과 만나서 이사를 도와준 후 저녁을 먹고, 모레는 그놈이 점장으로 있는 옷 가게에 들러 옷을 산단다. 십 몇 년 만에 한국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친구들과 노느라 바쁘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아내가 없는 동안 나는 숙소에서 홀로 비상대기를 했다. 항상 끼니마다 밥 먹으라고 보채는 아내가 없고 아들은 밖으로만 도니 아주 훌륭한 기회였다. 나는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훌륭한 기회는 훌륭하게 실패했다. 아내가 돌아온 후 친구들을 만나면서 술과 요리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들은 여전했다. 작년 말 망년회 이후 다들 처음 만난단다. 나 때문에 내가 있는 동안 여러 번 만나서 놀았다. 소주잔이 돌고 맥주병이 난무하며 양주병을 따고 노래방에서 고함을 질러댔다. 씨바, 몸만 늙었지 다들 마음은 청춘이다.

 

아니, 사실이 아니다. 다들 폭삭 늙었다. 한 놈은 건강을 위해 하루에 삼만 오천보에서 사만보를 걸으며 뱃살을 쏙 뺐다. 또 한 놈은 당뇨병 진단을 받고서는 담배도 끊고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얼굴이 반쪽이 됐다. 투실투실 하던 놈들의 얼굴에 살이 빠지니 더 늙어 보였다. 나 또한 그럴 터이다.

 

“요즘 경기 어떠냐?” 물으니 “요즘 그런 거 물어보면 욕하는 거랑 똑같아, 새꺄!” 라고 쫑코를 먹었다.

 

캘거리는 새벽에 일어나서 일찍 잠이 든다. 서울은 아침 늦게 일어나서 밤 늦은 시간까지 잠에 들 생각을 안 한다. 숙소 근처의 새벽 거리에서 커피 파는 곳은 편의점 뿐이다. 그 무수하게 많은 커피숍들이 10시, 11시가 되어서나 문을 연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파하고 밤 11시가 넘어서 전철을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 걸어가노라면 오전에 잠들어 있던 그 수많은 가게들이 불을 켜 놓고 불나방처럼 비틀거리는 나 같은 취객을 유혹한다.

 

약 한 달간의 방문을 마치고 캘거리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10여 시간의 비행 후 캘거리에 도착했다. 집에서 시차 때문에 자다 말다 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청량한 여름 아침이었다. 곧 고온 경보가 내려진 캘거리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낮은 습도 탓인지 한국에서보다 훨씬 쾌적했다.

 

더운 열대지방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듯 했다.

 


5           0
 
philby  |  2024-08-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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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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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습하죠?”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 심사를 위해 같이 걸어가던 아들 녀석의 말이었다. 나도 역시 뭔가 답답하고 습하면서 후덥지근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한국을 다녀왔다. 12년의 이민 생활 동안 한국을 자주 방문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돌이켜 보니 여름에 한국을 방문하는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 습하고 무더운 한국의 여름을 잊고 있었다. 청량하고 맑은 아침을 가진, 건조한 여름속의 캘거리에 익숙해져 버렸다. 한국의 고온다습한 기후는 약간 고역으로 다가왔다. 아침부터 온몸을 끈적끈적하게 하는 습기는 캘거리 여름의 청량한 아침을 그립게 만들었다.
 
아내는 김포공항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일반 호텔이 아니라 주택가의 방 두 개짜리 신축 빌라를 빌렸다. 시내 중심부와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만 별로 불편하진 않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었고 지하철만 타면 서울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민 오기 전에는 대충 팔개 노선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수인 분당선이니 김포 골드라인이니 서해선이니 하며 노선도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집 근처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민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제품들이 있었다. 밀키트라고 하는 것들인데 엄청나게 많은 종류를 자랑했다. 어떤 건 엉터리지만 메이저 브랜드에서 나온 약간 비싸 보이는 것들은 그럴듯한 맛을 내기도 했다. 더 이상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등등을 요리하지 않아도 된다. 밀키트를 냄비에 붓고 팔팔 끓이기만 하면 그냥 먹을만해진다. 점점 혼자 살기 최적화된 세상이 되어간다.
 
한국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중차대한 문제다. 재활용으로 지정된 걸 함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분리수거를 할 때도 정확히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컵라면을 먹고도 깨끗이 씻어서 재활용을 해야 한다. 삼다수 대형 생수병도 포장지 레이블을 제거한 후 압축하여 정해진 날짜에 지정된 장소에 놓아 두어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아무 때나 함부로 내놓을 수 없다. 계란 껍데기 마저 한국 웹사이트를 참고하여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일반 쓰레기로 버리며 규제에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숙소로 묵은 빌라 입구에 쓰레기와 재활용에 대하여 하도 엄중하게 경고가 있어서 뭔가를 버릴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 처리했다. 스트레스!
 
아내는 장인 장모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며칠간 지방으로 내려갔다. 아들 녀석은 매일 점심쯤 나가서 밤 늦게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끝마치지 못하고 뒤늦게 캐나다로 끌려 왔지만, 역시 학장 시절의 친구가 오래 가는가 보다. 내게도 익숙한 아들의 친구 이름들이 들려왔다. 오늘은 이놈과 만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내일은 저놈과 만나서 이사를 도와준 후 저녁을 먹고, 모레는 그놈이 점장으로 있는 옷 가게에 들러 옷을 산단다. 십 몇 년 만에 한국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친구들과 노느라 바쁘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아내가 없는 동안 나는 숙소에서 홀로 비상대기를 했다. 항상 끼니마다 밥 먹으라고 보채는 아내가 없고 아들은 밖으로만 도니 아주 훌륭한 기회였다. 나는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훌륭한 기회는 훌륭하게 실패했다. 아내가 돌아온 후 친구들을 만나면서 술과 요리에 푹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들은 여전했다. 작년 말 망년회 이후 다들 처음 만난단다. 나 때문에 내가 있는 동안 여러 번 만나서 놀았다. 소주잔이 돌고 맥주병이 난무하며 양주병을 따고 노래방에서 고함을 질러댔다. 씨바, 몸만 늙었지 다들 마음은 청춘이다.
 
아니, 사실이 아니다. 다들 폭삭 늙었다. 한 놈은 건강을 위해 하루에 삼만 오천보에서 사만보를 걸으며 뱃살을 쏙 뺐다. 또 한 놈은 당뇨병 진단을 받고서는 담배도 끊고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얼굴이 반쪽이 됐다. 투실투실 하던 놈들의 얼굴에 살이 빠지니 더 늙어 보였다. 나 또한 그럴 터이다.
 
“요즘 경기 어떠냐?” 물으니 “요즘 그런 거 물어보면 욕하는 거랑 똑같아, 새꺄!” 라고 쫑코를 먹었다.
 
캘거리는 새벽에 일어나서 일찍 잠이 든다. 서울은 아침 늦게 일어나서 밤 늦은 시간까지 잠에 들 생각을 안 한다. 숙소 근처의 새벽 거리에서 커피 파는 곳은 편의점 뿐이다. 그 무수하게 많은 커피숍들이 10시, 11시가 되어서나 문을 연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파하고 밤 11시가 넘어서 전철을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 걸어가노라면 오전에 잠들어 있던 그 수많은 가게들이 불을 켜 놓고 불나방처럼 비틀거리는 나 같은 취객을 유혹한다.
 
약 한 달간의 방문을 마치고 캘거리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10여 시간의 비행 후 캘거리에 도착했다. 집에서 시차 때문에 자다 말다 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청량한 여름 아침이었다. 곧 고온 경보가 내려진 캘거리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낮은 습도 탓인지 한국에서보다 훨씬 쾌적했다.
 
더운 열대지방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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