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해외문학상 제정의 변>
해외에 나와 살고있는 우리 동포는 700만을 넘어섰다 합니다 해외 동포들의 조국애와 민족애는 어느 누구보다 높음은
자타가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국에서는 해마다 숫한 문학상이 있으나 아직 해외 동포들 중에서 어떤 償 즉 상 같은 상을
타본 작가가 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개 소외된 취급을 받는 상항에서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identity) 을
고수하며 민족 문화의 창달과 계승, 전통 문화 고양을 앙양하고 해외동포 백년 대계에 꿈을 쉼어 주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정성을 모아 순수한 사재로 이 상을 제정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상 제정 목적은 창작 의욕의 함양 고취와 해외동포들간의
보다 깊은 유대를 강화 하는데 일조를 하게 되기를 갈망함에 있습니다 또한 해외 동포로서는 처음으로 이런 상을 제정
운영함을 감안 이 문학상이 해외 동포들에게 영원한 마음의 안식과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국내외 동포님들의
끝없는 사랑과 성원으로 역사에 빛 나는 상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지도를 갈망 해 보입니다
(민초 해외 문학상 제정 운영위원장 드림)
제 2회 민초 해외문학상 심사평과 수상작품 및 수상 소감
1) 2회째를 맞이한 민초 해외문학상 수상자가 하기와 같이 선정 되었기에 공지를 합니다
2) 금년도에는 중국 동포가 22명 캐나다 동포 8명 미국 동포 2명 총 32명의 응모가 있었으며 금년의 심사위원
으로는 임 헌영 교수( 전평론가 협회 회장,중앙대 교수) 신 상성 (소설가 피지 수와바외대 총장) 이 양우 (시인
육필 시공원 이사장) 이 길원 (시인 국제 펜클럽 이사장) 배 용파(시인 국제 문예 발행인) 조 성국 (시조시인
관악 문협 수석 부회장,시조시인협회 회장) 변 창섭(시인 캐나다 제1회 민초 문학상 수상자)등이 심사위원으로
수고를 하셨으며 심사평은 임 헌영 박사님이 써 주셨습니다
3)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중국 연변의 조 룡남 시인이 대상을 수상하셨으며 차상은 역시 중국 연변의 김 미화
시인이 차상의 영광을 안개 되었으며 시상식은 11월 12일에서 14일 사이 연변대학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대상 조 용남 시인과 차상 김 미화 시인께는 상금과 상패 및 시상식 파티를 갖게 되며 중국의 작가및 명망있는
사회 지도층의 인사들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게 됩니다
4) 이번 시상식겸 문학기행에는 임 헌영 박사 신 상성 박사 변 창섭 시인 조 성국 시인 배 용파 시인등과
민초 문학상 제정자와 조국의 중견작가 5명등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5) 문학상 심사평과 수상작 내용
금년도의 심사는 작가들의 살아온 생애와 얼마 만큼의 자작 시집등을 저술 했는가 그리고 사회를 위하여 얼마를
기여 해 왔는가와 작품성을 중요한 심사대상으로 관찰했으며 제 3회때에는 시 부문 응모작품에 좋은 작품이 없을
경우 수필과 소설 부문에서 훌륭한 업적이 있는 분들의 작품도 받아 심사에 포함 하며 앞으로 기회를 보아 가면서
모국의 문인들께도 동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슴을 양찰 하시고 국내외 동포제위
님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이 있으시기를 기대한는 심사위원님들의 의견이 있었슴을 공지 합니다
민초 이 유식 해외문학상 심사평
자연과 역사가 만나는 서정시
1. 조룡남의 시세계
1935년 훈춘에서 출생한 조룡남(趙龍男)은 16세 때 처녀작을 발표한 조숙한 시인으로 연변사범학교를 졸업, 교직에 있었으나 1957년 대격변의 시기에 20여 년 동안 추방생활을 겪은 역사적인 수난 받은 지식인이었다. 이 고난의 아픔을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무엇을 숨기랴, 나는 불행하였다. / 그러나 나는 원래 / 행복한 돼지보다 / 불행한 소크라테스를 더 숭상한 사람. // 그 불행이 바로 나를 / 인간으로 만들었고 / 그 불행이 바로 나를 / 시인으로 만들었다.”(<나의 불행을 두고>).
1978년 복권 이후 그는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중국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연변자치주정협 상무위원 등을 역임, 시집《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그리며 사는 마음》 외에 수필, 실화, 아동문학, 번역 등 많은 작품을 발표, 중국작가협회연변분회 문학상, 연변자치주인민정부 우수작가상, 길림성인민정부 장백산문예상, 전국소수민족문학상,한국 미래문학 해외동포문학상(2006) 등을 수상했다.
2002년《반딧불》창작 50주년을 기념하여 모교 연변대학 사범분원 교정에 반딧불비가 세워졌고 2004년 룡정시 비암산 일송정에 시인의 “비암산 진달래”시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조룡남 시인에게는 “시를 쓴다는 것은 / 사는 한 가지 방식”으로, “고달픈 이 세상에 / 작은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의 신성한 사명은 / 세계의 화해에 있다 / 심령의 융합에 있다”(<시의 사변>)고 그는 주장한다. 왜 시를 쓰느냐는 물음에 이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가슴에서 눈물의 샘이 / 마르지 않으리라 믿기에 / 나는 시를 쓴다 / 생활의 터전에서 사랑의 불길이 / 꺼지지 않으리라 믿기에 / 나는 시를 쓴다 / 세상에서 돈 주고 사지 못하는 /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믿기에 / 나는 시를 쓴다 / 상처투성이 심장에서 흐르는 / 방울방울 아픈 진정을 짜서 / 나는 시를 쓴다.”(<시를 쓴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조룡남의 시세계를 평론가 최삼룡은 “진통기 혹은 과도기”라 이름 부쳤는데, 그 특징은 고난의 체험이 남긴 상처가 아물지 못한 상태에서 변모해버린 역사를 관조하며 새 진로를 모색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985년 이후 조룡남의 문학세계는 만년의 성숙한 미학으로 개화, 중국문학사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해외동포문학사에서도 찬연히 빛나는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시는 자연이 단순한 산하가 아니라 역사를 만나면서 국토로 변질되며, 그 국토는 인간의 삶의 보금자리인 고향의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상징된다. 그래서 땅과 하늘, 강과 산과 들이란 온갖 생명체가 서식하는 안식처이자 민족과 민중의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룡남은 <고향정회(故乡情怀)>에서 “만추(晚秋)의 빈 들녘에 서서 / 고향을 생각”하는데, 고향은 바로 어머니, 그리고 “아무리 풍성(豊盛)한 가을도 / 줄 것 다 주고나면 빈 가을”이었던 “빈 내 고향”, “빈 나의 어머니”, 그러나 “빈속에 가득 찬 / 아름다운 그 충만(充满)”을 떠올린다. “된장, 고추장은 지금도 내내 날라다 먹는 / 어머니의 손맛―고향의 참맛”이라는 구절에 이르면 우리의 향수가 짙게 우러나면서 대개의 시인들은 이쯤 해서 끝맺음 할 것이다. 그런데 조룡남에게 고향은 단순하게 자신이 태어나 자라난 곳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훈춘강 상류의 두메라 산골
시꺼먼 부식질(腐植質)의 부드러운 흑토지
그 검은 흙에 아버지네 피땀이 반죽되여
물동이같은 호박을 빚으면서
베개통같은 감자를 주렁지우면서
강물처럼 긴긴 개척사(開拓史)가 흘렀습니다
저희 또한 그 흙으로 빚어 만든 몸―
흙처럼 못생겼으나 흙처럼 순후(淳厚)한 자손입니다
저의 시이랑(诗行) 쑥내음이며 청솔향기를 아십니까?
그 흙에서 피여오르는 내 고향의 체취(體臭)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울면서 낳고도
이 세상 모든 것에게 웃으면서 짓밟히는
나의 흙은 비천(卑賤)합니다, 나의 흙은 위대합니다!
<고향정회(故乡情怀)>
바로 자연-고향-국토-민중의 삶과 역사의식이 공존하는 실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전반부의 개인적인 체험을 후반부에서는 민족사의 보편적인 역사의식으로 승화싴ㄴ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런 보편성은 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 <백두산석>과 <두만강>으로 연이어진다.
시인에게 백두산이란 “남이장군이 검을 갈던 돌 / 애국지사 의지와 신념을 갈던 돌 / 한 많은 겨레의 뼈가 된 돌 / 불멸의 력사에 얼이 된 돌”이다. 그래서 “오 겨레여, 우리 어디서 살든 / 끌날같은 백두의 얼로 살자! / 우리 어디서 죽든 / 쇠소리 나는 백두산 돌이 되자!”고 시인은 절규한다.
<두만강> 역시 “7백리 두만강, 력사의 물길”로 “남이장군이 / 말 먹여 물 찌였던 가람기슭이 / 예가 아니더냐 충익 김종서 / 일장검 짚고 섰던 바위벼랑”에 다름 아니다.
백두의 심장에서 솟아 흐르는
겨레의 한이길래 설움이길래
물결은 부서져도 하얀 혼이 되고
여울은 울면서도 조선(祖先)의 넋을 불렀더라
<두만강>
이런 산과 강이 조화를 이뤄 형성된 대지를 시인은 <‘失踪’된 民族 ― 광개토왕비 앞에서>란 시에서
-내 나라는 어디 있는고?
내 족속은 어디 갔는고?…
돌따보면 尉那巖城(丸都山城) 허물어진 성벽
내다보면 압록강 울며 가는 푸른 물
<‘失踪’된 民族 ― 광개토왕비 앞에서>
라는 탄식으로 나타난다.
“장검으로 ‘나의 세기’를 열어가던 / 영광의 시대는 빨리도 지나갔구나 / 애달파라 반석같던 옛 나라는 깨여지고 / 사나이다운 민족은 력사에서 ‘失踪’되였다”는 시인의 역사적인 참회는 자신이 겪었던 수난과 겹쳐지면서 그 아픔이 가중된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의 역사는 <해빙기의 강변에서>에 이르게 되면 “비단결 새살로 아물어 푸르구나 / 어제날 두꺼운 얼음 밑에서 / 숨 죽이고 누구와만 나누던 귀속말 / 오늘은 와―와― 가슴 터쳐 말하며 / 하늘아래 자유로이 흘러가누나”로 변모하여 나타난다. 바로 새로운 천지개벽의 시대를 맞아 시인은 자연과 역사와 삶을 자유로이 보듬어가며 굳건하게 살아가는 자태를 보여준다.
나는 안다 강아, 네속에 가득차
끓으며 사품치는 그 많고 많은 말을
나는 안다, 풀려내리는 해빙기의 강아
너는 정녕 반짝이는 무수한 눈물방울!
지금 내 가슴속에 흘러들어
가슴벽 세차게 때리며
너는 우는구나 강아!
너는 웃는구나 강아!
<해빙기의 강변에서>
작가 김학철이 겪었던 긴 수난의 연대기가 많은 걸작을 낳았듯이, 시인 조룡남 역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 우리 문학을 빛나게 해준다.
믿음 앞에서 축원하는 시인
2. 김미화의 시세계
1962년 길림성 훈춘에서 출생한 시인 김미화(金美花)는 연변대학 조선어문문학학부를 졸업한 뒤 한국 삼육대학 신학 연수과정을 마쳤다. 훈춘 신문화생활협회 회장 겸 강사, 송도원 자연치로법 요양원 원장, 연변 작가협회회원, 한국 재림문인협회회원으로 활약하면서 시 <겨울> <장도열차> 외 많은 작품을 발표한 이 시인은 ‘별나라’ 최우수상, 한국 ‘문학세계’ 주관 ‘침묵의 빗장’ 신인문학상, 한국 ‘현대시선’ 겨울호에 <청계천에서>란 작품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미화 시인의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오직 당신 앞에>란 시에서 보듯이 믿음의 자세다. “오직 당신 앞에 / 어서 오심을 / 기름으로 맞이하기 원하오니 // 나의 연약함, / 나의 부족함, / 나의 허물어짐이 / 당신 십자가로 채워주소서”라는 기원(祈願)은 중국조선족 문학에서는 흔하지 않은 신앙의 세계가 다소곳하게 펼쳐진다.
이 시인에게 믿음이란 인간이 스스로 “부족한 줄” 알도록 해주는 힘,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나의 약함은 / 아름다운 약함이 되고 / 나의 약한 곳에 / 당신의 강함을 채울 수 있나니”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연약함은 수치나 무능이 아니라 ‘당신’이 채워줘야 할 축복으로 풀이된다. 이런 연약함, 미완성, 죄인으로서의 인간 존재의식은 이 시인으로 하여금 진리를 향한 소망으로 일관되게 만든다.
나에게 저 하늘 흰구름
한 그릇 담아놓고
높고 낮은 연봉들 꿰매여
빛 하나로 엮어보고 싶다
오고 가는 길손 막아 세워놓고
세상에 묵은 때를
명경같이 씻어보며
새로운 진리 속에 잠기고 싶다
물을 건너
산을 돌아
가난에 찌든 굴레를 벗으며
뛰여보고 싶다
<빛>
여기서 시인은 우주 삼라만상의 자연조차도 빛과 진리로 다가가기 위한 무대로 인식된다. 앞에서 보았던 조룡남 시인의 자연 - 국토-역사의 연상 작용과는 대조적으로 하늘의 흰 구름이나 산봉우리조차도 빛으로 꿰매고 싶은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노라면 모든 인식체계가 달라지는데, 예를 들면 <백의 찬가>를 보노라면 “이별 모르는 철새 같고 / 눈물 모르는 나그네 같아라” 라고 하는데, 여기서 흰 옷 입은 우리 동포에 대한 연민의 정은 민족사적인 수난사에 근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세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서의 비극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얀 구름타고 넘어야 하는
간절한 베 적삼의 소망
삶의 진실을 사랑하는
흰빛 영혼으로
하늘 향해 눈뜨게 해다오.
<빛>
베적삼 입은 동포의 소망을 “삶의 진실”( 곧 믿음)을 향한 눈뜨기라고 진단하는 게 이 시인의 견해다.
그러기에 김미화 시인에게는 <봄은 산에서 온다>는 자연을 읊은 시에서조차도 “먼 나라 꿈같은 소리 / 성자의 오솔길이 되어 / 곳곳이 보고픔으로 허기진 / 그리움이 풀리는 꽃길에 홀려” 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앙시가 중국 동포문학 속에서 어떤 자리 매김을 할지 김미화의 활동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끝)
6) 수상 소감과 수장자의 간단한 약력
조룡남(趙龍男) 약력;
1935년 출생.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중국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역임.
시집《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그리며 사는 마음》 등 다수.
전국소수민족문학상,등 수상.
2002년《반딧불》창작 50주년을 기념하여, 모교 연변대학 사범분원 교정에 반딧불비가 세워지고 2004년 룡정시 비암산 일송정에 시인의 “비암산 진달래”시비가 건립됨.
성치 못한 고단한 “어깨”에, 짊어진 나이조차 무거운 인생계절, 이젠 마음뿐이지 “성지 순례”도 별로 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시인의 “성지 순례”란 “들끓는 삶의 현장으로 가는 일”을 의미하지요. 들끓는 현실적 삶의 현장을 외면하고 서재의 묵은 책더미 속에만 묻혀서야 어찌 생생한 감동과 청신한 시의 영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시가 도무지 씌어지지 않는군요. 시 쓰기가 갈수록 어렵습니다. 단시 한수 쓰는 데도 컴을 마주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지우고를 몇 십 번씩 거듭하다 나중엔 포기하고 마는 때가 많습니다. 남을, 더욱이는 지난날의 자기를 초과하지 못하는 시를 독자들 앞에 내놓고 싶지가 않아서지요. 그만큼 고민도 깊어간답니다. 세월은 저물어, 신기한 환상은 날아가고 부드러운 감정은 굳어졌으니 “이제 풍월의 시절도 지나갔구나!”라고 했던 저 러시아의 대시인 푸쉬낀의 탄식을 되뇌어 보기도 합니다.
때론 지난 세월 자기가 창작한 시들을 회의의 눈길로 훑어보기도 합니다. “이 거치르고 투박한 낱말들의 집합이 시란 말인가? 살 줄 알고 일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놀 줄 아는, 그런 우수한 민족의 깊고깊은 한과 절절한 정서 그리고 멋스러운 풍취를 나타내지 못하고야 어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시가로 불릴 수 있겠는가?”, “우리 모국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의 하나로서 부드럽고 표현력이 극히 풍부한 언어인데…그중에서도 시가 언어는 오관에 직접 와 닿고 가슴을 치는 그런 극치를 보여주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인데… 나의 시어란 겨우…” 하여 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모국을 멀리 떠나 다른 하늘 밑에서 나서 자라고 그 하늘 밑에서 어설프게 배운 모국어로 과연 시라는 문체의 글을 쓸 수 있는가?”, “의사나 과학자는 될 수 있어도 시인만은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인의 길을 걸어온 건 애초부터 자신의 틀린 선택이 아니였는가?…”
바로 이런 시점에, 이런 침침한 고민기에 대양 건너 머나먼 캐나다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나에게 “민초 이유식 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너무도 기쁘고 고무적인 소식입니다. 물론 나의 처지에서 받을만큼의 상은 이미 다 받았으니 더 큰 욕심은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지요. 금년 들어 7월 현재까지만도 중국 국내(주로 북경)에서 《조국만세》채방편집센터의 “우수작품 금상”, 중국대중문학학회의 “최가창작상”, 세계화인교류협회와 중국국제출판사의 “혁신성과 특등상” 등등 모두 8건의 수상통지를 접수하였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한 것은 그것들이 모두 한어(중국어)로 번역된 시들을 두고 심사한 것이고 또 어떤 의지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찜찜한 생각조차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초 이유식 시문학상”은 이와는 전혀 다른 문학상입니다. 내 동포가 제정해 만들었고 내 동포가 인정해주는 시문학의 상이기 때문입니다. “모국어로 쓴 나의 시를 내 동포가 읽고 인정해준다” 이보다 더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최고의 심사진에 의해 심사되였다고 하니 이는 나의 시의 존재가치가 인정받는다는 증거이지요. 나의 시에 세상을 구원할 힘은 없다 하더라도 내 동포들에게 얼마만큼의 기쁨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왜서 그를 부정하랴! 이것은 나의 시의 생존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번 수상은 나의 시문학 생애에 자신을 믿고 일어나 다시 분투하도록 큰 힘과 용기를 준 사건으로 됩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요구는 모름지기 높고 엄해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각박한 평판은 자신심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나의 시가 모국 여느 시인들의 시처럼 그렇게 우수한 시로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격이 높은 문학상의 수상자로서 체면이 구겨지고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생각도 피할 길 없습니다만 세계 한민족 대합창에 작은 목소리라도 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호하며 기뻐하고 만족하는 바입니다. 설사 그것이 “동메달” 이하의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나의 모자라는 시를 이쁘게 보아주시고 대상작으로 뽑아주신 존경하는 민초 이유식 시인 님과 존경하는 여러 심사위원 님들의 사랑과 배려에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 영광, 이 영예를 이곳 우리 연변의 여러 문인, 시우들과 함께 나누렵니다. 그리고 꼭 노력하여 더 좋은 시를 써내는 창작실천으로 보답하여 드리렵니다.
끝으로 민족애와 문학사랑의 숭고한 뜻으로 세워진 “민초 이유식 시문학상”이 해마다 융성발전하여 민족시문학사에 빛나는 한 획을 긋는 기여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문학인과 각계 인사 여러 분, 내내 건승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