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주 목사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교회연합신문 10월 25일자에서 발췌)
한국교계가 이단으로 지목해온 어느 인사가 최근에 한국교계의 유명한 목회자들이 자신에게서 성경을 배웠다고 주장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물론 오래 전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거명한 이들은 서울의 ㅅ교회, ㅁ교회, ㅇ교회, 인천의 ㅈ교회 등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이다. 그 같은 발언의 저의는 자신을 이단으로 지목해온 한국교계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현이며, 또한 이러 이러한 사람들이 내게서 배운 제자(?)인데, 자신이 이단이라면 이단에게 배운 사람들은 무엇이냐? 는 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물음표를 던진 것이라고 본다.
이단이 교회의 적이라는 것은 교회사를 통해서 교훈되고, 현재도 한국교회가 고심하고 있는 심각한 현실적 문제이다. 그런데 이단의 위험성을 잘못 사용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지적해야 할 사안이다.
그 이유는 이단이라는 정죄내지 지목이 자의적이거나 어느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어느 단체에서는 지난 십 수 년 간 한국교회의 목회자 수십 명을 이단 명부에 올려놓았다. 그들 중에는 훌륭한 목회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단체의 이 같은 행위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그 피해가 어떠한지 짐작조차 어렵다.
그런가 하면 교계에서 공인된 단체에서 판별한다는 이단에 대한 결정도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결정된다는 불만도 있다. 최근에 장로교 통합측 총회에서 교계 5개 신문을 이단 사이비 옹호신문으로 규정한 것도 일부 부작용이 있어 보인다. 당사자들이 승복하지 않고 법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결정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 결정으로 인하여 입게 될 충격과 피해 때문인 것이다. 이 일은 이단에 대한 문제가, 교회와 이단의 싸움만이 아니라 교회내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성경은 말씀하셨다.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잠언17:15) 이단을 문제없다고 한다거나 이단이 아닌 이들을 이단이라는 누명을 입히는 것 모두가 하나님께 심판 받을 일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단이라고 한 번 이름이 붙여지면 이를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지난 예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가 하면 현재처럼 함부로 이단이라는 정죄를 남발한다면 이단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상적인 목회자의 다수를 이단이라고 한다면 이단에 대한 경계심이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단에 대한 정의가 분명해야 한다. 지난날 의도가 의심스러운 몇몇 사람들에 의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 발간이 한국교회를 혼란스럽게 한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범 교계의 신학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말은 교단적인 신학적 견해가 다름으로 인하여 이단의 기준이 다르다거나 또는 ‘이단대책위’에서의 자의적 결정의 문제, 그리고 뒷거래라는 부끄러운 이야기도 들리기 때문이다.
이단은 교회를 파괴하는 사단의 도구내지 사단적 행위자들을 말함인데, 사도 바울은 바른 교리가 아닌 거짓된 가르침을 이단의 가르침으로 경계했으며, 사도 요한은 미혹케 하는 자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를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였으며, 사도 베드로는 이단들의 가르침을,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단에 대한 경계의 목적은, 영혼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며, 교회를 대적하고 파괴하려는 자들에게서 교회를 지키기 위함인데 자칫 그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서 에너지를 내부의 다툼에 소진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이단 논쟁으로 인하여 바른 교리의 정립이 이루어졌으며, 거룩한 공교회를 사단의 침투에서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의 이단 논쟁은 명분과 당위 뒤에 숨어있는 정직하지 않은 의도를 읽어내기가 어렵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으로 인하여 이단에 대한 마땅히 해야 할 경계까지 소홀하게 된다면 이는 진정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단에 대한 교계의 논쟁이나 대응은 단호하되, 신중하고 정확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