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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목사님들이 용기있게 공개사과 하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2009 작성일 2009-12-08 15:21 조회수 1779
이제 지루하고 소모적인 갈등을 끝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결자해지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들께서 직접 나와서 매듭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제가 다른 곳에 썼던 글인데 일단 서로간의 긴장을 푸는데 좋은, 즐거운 이야기 같아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아마 기억하실 것 입니다.

토론토스타 紙가 지난 봄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갑 20 개에 각각 43 불 77 센트 (약 4 만 8000 원)와 debit card 아이사진, 신분증, 연애편지 등을 집어넣고 토론토 다운타운 곳곳에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이 중 몇 개가 돌아올까 궁금했던 것이지요.

몇 개가 온전한 상태로 돌아왔을까요?

‘잃어버린 지갑 20 개’ 중 뒤늦게 돌아온 2 개를 포함, 모두 17 개가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이 도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민자 도시입니다. 군사독재시절에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해외본거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지요. '토론토 임시정부'라는 말도 나왔을 정도니까요.

아무튼 auto industry등 제조업이 밀집해 있어 세계불황의 가장 심각한 직격탄을 맞고 있었던 온타리오 주의 수도이기도 한 이 도시의 양심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 준 셈 입니다.

지갑을 살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갑 속에 남겨 놓은 전화번호 등으로 메시지가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답신을 보내지 않자 지갑 취득자들은 몇 차례씩이나 메시지를 남겨놓는 노력을 했답니다. 어떤 학생은 지갑 속에서 발견한 포토아이디의 사진 속 얼굴 임자를 찾으려고 주변을 반 시간 가량이나 빙빙 맴돌았다고 하지요. (성이 Song 인 걸로 봐서 아마 한국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폴 다웰이라는 한 부동산 업자는 온타리오 호숫가에서 발견한 지갑을 수소문 끝에 자기가 주인(실은 주인역할)을 직접 만나 전해 주기도 했구요.

이 신문의 사회윤리담당 칼럼니스트는 이전에도 비슷한 실험을 한 모양인데 “달랑 현금과 연락처만 들어있는 지갑보다는 사진이나 편지 등 어떤 개인의 personal 한 흔적이 남아있는 지갑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토론토스타는 돌아온 현금 모두를 지갑을 찾아 준 사람들의 명의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물론 토론토스타 紙의 지갑실험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표본수량(20 개)이 너무 적어 사회학적 실험으로서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데다 지갑 속에 40 여 불이 아닌 400 여 불을 넣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 때문이죠. 개인의 정직도란 개인 간의 차이보다는 한 개인이 맞닥뜨린 ‘유혹의 강도’에 따라 마음 속에서 진동하는 그래프의 변동폭이 더 클 수가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느 개인의 마음속에서 진동하는 그래프의 변동폭을 진정시키고 될수록 steady 하게 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적 요인들을 제대로 발굴해내는 것이야 말로 사회심리학의 핵심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당시 저와 토론했던 한국의 어떤 목사님께서는 “토론토가 기독교 정신을 물려받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정직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 목사님의 분석은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첫째, 토론토는 그 인구분포상 기독교문화의 잔재가 의식의 저변을 지배하는 사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광역 토론토 전체도시인구 5 백 70 만 명 중 절반이 좀 넘는 2 백 40 여 만 명이 비(非)유럽계일 뿐 아니라 전체 인구의 3 % 정도만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둘째, 이번 실험에 반응한 사람들의 출신 배경 분포가 이 도시의 인구분포와 대체로 비례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다만 캐나다에서는 이런 종류의 실험결과를 ethnic group 별로 구분해서 발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알려진 성(surname)등으로 미루어 보면 그렇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높은 정직도가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 현상의 중요한 요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중요한 요인을 찾아 보기 전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밴쿠버 캘거리 에드먼턴 시내를 운행하는 전철역에는 개찰구나 출찰구가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냥 타고 다닐 수가 있지요.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이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돈을 내고 표를 삽니다. 가끔 무임승차를 하다 적발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이들은 모두 비기독교인들 일까요. 하다 못해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들일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쁜 놈과 좋은 놈의 비율은 문화권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비슷비슷하다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좋은 놈과 나쁜 놈의 비율은 문화권이나 종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여 사는 공동체의 꼬라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이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문화권이나 종교가 아니라 그 개인을 학습시키고 있는 환경 즉 소속집단의 성격과 그 집단에 소속된 개인들이 과연 얼마나 그 집단에서 합의하고 있는 norm 과 morality를 신뢰하고 존중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겠지요.

쉽게 말해 똑같은 사람이라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종교적 배타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갈 때와 자기가 공정하게 존중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때는 그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합의의 내용, 즉 norm 이나 morality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그 norm 과 morality 에 반응하는 행동양식 또한 달라지겠지요.  

이 글의 본론입니다.

저는 어떤 사회 안에 높은 정직도가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 요인으로서 개인과 그 개인이 소속된 사회집단간에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높은 사회적 연대의식을 꼽고자 합니다. 사회적 연대의식이란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그런 의미로서의 사회적 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대체로 착하면 덩달아 자기도 온순해 지는 일종의 동화현상 같은 것이죠. 양보를 받았다면 양보를 해 주고 싶고 상대가 나에게 자기 종교를 설명만 하려고 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들어주려고 한다면 나도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도리 아닌가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 입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교역자 여러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자기 신념과 다르다고 압력과 배타적인 실력행사를 일삼는 수준의 윤리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동체의 ‘꼬라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어떤 형태로 기여를 할 지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정직하지도 않고 관용적이지도 않은 이런 사람들이 어떤 도시 시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서로간의 긴장과 적대감을 유발하고 있다면 기독교 아니라 기독교 할애비 문화 잔재가 널널하게 남아 있어도 그 도시는 하루아침에 생지옥으로 변하고 말 것 입니다. 아닐 것 같나요?  

전 세계 문명국들이 intolerance 에 대한 규제를 법으로 정하고 다원화된 사회구성집단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정서적으로는 반대하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찬성하고 있는 것도 전자와 같은 이유일 것 입니다.

지금 캘거리 기독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교회가 사회의 modeling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교회가 그보다 훨씬 더 ‘예수적’이고 신앙적인 사회 윤리의 본을 받아야 할 판 입니다. (‘예수적’이라는 말이 의아하게 들릴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그 고문서를 아무리 들여다 보고 있어봤자 배울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캘거리 한인 사회는 일부 한인 교회 교역자들이 아직까지 행사하려고 하고 있는 중세기적인 문화적 횡포를 더 이상 애교로만 봐 주지 않을 것 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캘거리 한인 교역자 님들이 캘거리 한인 공동체를 향해 정중하게 머리 숙여 공개 사과해 주심으로써 이 갈등을 이만 끝냈으면 합니다.

저 역시 그 동안 무례한 표현이 있었다면 정중하게 사과 드리겠습니다.

추신: 제가 내일과 모레는 바쁘고, 금요일부터는 휴가를 떠나므로 혹시 반론에 대한 답을 즉시 못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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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09-12-08 15:5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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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를 벗어난 말씀이지만, 성서관에 대해서는 저는 강현님과 좀 다릅니다. 저는 미국식 복음주의자는 아니지만, 독일 신학자 Karl Barth의 초월론과 Paul Tillich의 문화론의 중간 쯤에 있는--이런 말이 성립될지 모르지만--\"진보적 복음주의자\" (progressive evangelical)입니다. 성서는 아직도 캐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전통적 기독교인입니다. 혹시 이상의 제 의견이 강현님의 논지를 흐리게 할까 걱정이지만, 그냥 짚고 넘어가고 싶어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강현  |  2009-12-08 16:1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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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서관의 차이 문제보다는 괄호안의 제 언급이 교역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려는 이 글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삭제할까도 생각했었습니다. 뭐. 댓글을 다셨으니 삭제할 수는 없고...... 아무튼 이 문제는 정경채택과정에 대한 선입견때문에 다소 감정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09-12-08 16:2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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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은 언제든 삭제할 수 있습니다. 강현님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강현  |  2009-12-08 16:5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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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보다도 저는 이번 사태를 공개적으로 확실하게 매듭을 풀고 끝냈으면 합니다. 여기에는 캘거리 교인들의 협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역자들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씨엔드림 운영진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의사를 전달했는데, 다소 진통과 갈등이 있더라도 그렇게 확실하게 사과할 거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고,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게 정당한 해법 같습니다.

두 달이 지나도록 당사자들의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는 건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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