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월에 한국과 태국에 다녀와서 여행기 비슷한 걸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여섯 편이 한국 이야기였는데 두 번 째 부산 이야기를 하면서 추리문학관 이야기를 언급했었지요.
저도 어렸을 때 김성종 매니아였습니다. 고등학교 1~2 학년 때 까치담배 살 돈은 없어도 일간스포츠는 거의 매일 사 봤습니다. 이 사람 소설을 보기 위해서였죠.
나쁜 소설은 ‘이명박이 쓴 소설’이 아니라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리 메시지가 심오해도 독자가 몇 줄 읽다가 내던져 버려야 할 정도로 흡인력이 없다면 소설로서는 실패작이죠. 그런 면에서 김성종 씨는 일단 성공한 추리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사람 작품 중 제 5 열이나 최후의 증인 등 초기작품 몇 개를 제외하면 사실 작품이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은 드뭅니다. 갈수록 매너리즘과 상업주의에 빠져버린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도 제가 그 사람 소설을 거의 섭렵한 이유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특이한 점은 작가 스스로가 혹시 여성 혐오증 환자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가학적인 상황설정과 표현을 통해 여성을 학대하는 경향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요. 거의 모든 작품 속에서 골고루 나타나는데 특히 ‘일곱 개 장미송이’와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그 가학성이 극에 달합니다. 해방 직전 일본군 특무대 취조실에서 윤여옥이 당하는 고문 장면들이 그 사례입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수한 장하림이 보는 앞에서 말이지요. 나중에는 아예 ‘여자는 죽어야 한다’ 라는 제목의 소설도 나왔지요.
작가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살인청부업에 대한 동경과 예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 중 압권이 ‘제 5 열’이고 치과의사 ‘창’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제 5 의 사나이도 마찬가지죠. 가장 최근에 나온 ‘안개의 사나이’에서는 아예 자기 자신(1 인칭 화자)을 퇴락한 살인청부업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 마지막에 경찰에 체포되는 유일한 프로패셔날 킬러인 셈이죠.
김성종의 소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목과 표현 중 하나가 안개인데, 추리문학관이 들어서 있는 달맞이고개는 안개가 많이 끼기로 유명한 곳이죠. ‘안개 속에 지다’ 기억하시나요? 나비를 좋아하던 살인청부업자.
추리문학관에 가서 혹시 김성종 씨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습니다.
가령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와 입장과 격이 전혀 다른 송지나 각본의 여명의 눈동자를 보면서 원작자로서의 감회가 어땠는지 묻고 싶었죠. 유감스럽게도 내가 부산에 간 날 (10 월 16 일) 김성종 씨는 오사카-간사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더군요.
여행기에서는 추리문학관 사진과 함께 아래와 같은 설명을 넣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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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를 하루 땡땡이치고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부산에 갔었다. 당시 서면에서 고종사촌 누나(나보다 아주 나이가 많은)가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거길 찾아갔던 것은 아니고 그냥 기차를 타보고 싶어서 무작정 갔던 것 같다.
부산에 그렇게 많이 놀러 갔어도, 심지어 부산에서 2 년 6 개월 동안 군 생활을 했는데도 해운대를 찾은 적은 별로 많지 않다. 이번에는 해운대에 가 보았다. 뜬금없이 그 근처에 있는 추리문학관을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해운대를 가 본 게 1989 년 봄 이었으니 꼭 20 년 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해변을 따라 고층건물이 늘어서 있는 것이 호놀루루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봄에 부산에 몇 번 내려갔던 이유는, 시위 도중 경찰에 쫓기다 머리를 크게 다쳐 뇌사상태로 봉생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여학생을 취재하고 그의 부모를 면담하기 위해서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여학생의 이름은 이경현이고 당시 부산교육대학을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추리작가 김성종 씨의 작품 중에는 부산, 그 중에서도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국제열차 살인사건’의 주인공 추동림과 남화는 해운대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가난한 어부의 맏딸 ‘백색인간’의 홍난미의 집은 송정에 있었다. 그녀는 섣달 그믐날 밤 부산으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만났던 남자 주인공 서남표와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재회해 운명적인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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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추리문학관을 찾아서 라는 글 제목을 보고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어 단숨에 읽어보고 몇 자 올립니다. 즐거운 추억여행을 다시 하게 해 주신 박나리 님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