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가 2004년 9월에 작성해서 이 씨엔드림 웹싸이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글을 쓸 때엔 박근혜님은 한나라당 총재로 계셨습니다. 이런 시대적 차이를 감안하면, 저한테 문제 제기 한 것은 아니지만, pioneer님에 대한 답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봐서 다시 퍼 올립니다. 이 글의 논지는 박근혜님은 부친 전 박정희대통령의 이념적 딸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박근혜님이 이념도 철학도 없는 이명박님보다는 심정적 존중이 더 깊어지는군요. 이분은 적어도 국격은 몰라도 인격은 있어 보입니다. 낡은 글 퍼올려서 죄송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박근혜 추억
-아프리카 (2004년 9월 9일)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라는 사람의 총탄을 맞고 서거했을 때, 온 세상 사람들이 슬피 통곡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가 살던 경남 함양의 어느 시골엔 TV가 귀해, 온 동네 사람들이 TV있는 집에 몰려 들어, 육 여사의 장례식을 지켜 보았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농촌 마을에 혁신을 가져다 준 것은 분명합니다. 지붕이 개량되고, 도로가 확장되었으며, 신작로라고 하여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가난과 체념의 삶을 살던 농민들에게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는 계시와도 같은 하늘의 메시지였습니다. 부역에 무작정 동원되어도, 결과적으로 마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 나가 길을 닦고 있는 동안에 아이들은 점심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지저분하고 좁은 길이 넓고 반듯한 황톳길로 변할 때의 기적이란 당시의 어린 심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느끼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 새마을 운동의 중심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고, 그 보다 더 인기를 끈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육영수 여사였습니다. 저의 부친이 가져온 정부 홍보용 화보에 나온 여러 국가 원수들과의 회담에 동반한 육영수 여사의 모습은 아름답고 단아한 그 자체였습니다. 작고 인물도 그저 그런 박정희 대통령 옆에 우리의 존경하는 영부인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육여사가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더 없이 안 서러워 보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바로 따님인 박근혜 씨가 채웠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씨는 육영수 여사 못지 않은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참 잘 하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저는 진주시로 학업을 위해 고향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마도 중학 1학년이었을 것입니다. 시 주도로 진주 공설 운동장에 대대적인 학생 동원이 있었습니다. 저는 진주 남중학교에 다녔는데, 공설 운동장까지 가려면 한 참을 걸어야 남강 다리에 도달하게 되고,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시가지가 끝나는 곳까지 가야 했습니다.
기억에 희미하지만, 우리는 공설 운동장까지 집회 연습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여러 번 남강 다리를 건너 운동장까지 걸어 갔습니다. 다름 아닌, 박근혜 총재의 새마음 갖기 운동에 어린 학생들이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처럼 어린 중학생들은 운동장 스탠드에 서고, 아마 기억컨대 고등학생들은 운동장에 도열을 해서 총재님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총재님이 멀리 중앙 스탠드에 얼굴을 보이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애 띠고 나이 어린 아가씨에게 나이 많은 어른이나 높으신 분들이 굽실거리는 모습은 신기하고 신난 광경이었습니다. 우리는 “새마음”이라는 힘찬 구호와 함께 멋진 총재님을 “향하여” 거수 경례를 하였습니다. TV로만 보던 그 멋진 분을 멀리서나마 직접 뵐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냐 하면, 진주시 당국에서는 박근혜 총재님을 모시기 위해 공설 운동장 가는 길을 새롭게 포장하고 보도를 단장까지 하였습니다. 깨끗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길을 귀하신 분의 차가 사뿐히 지나가도록 하기 위한 시당국의 헌신적인 배려라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컨대, “새마음 봉사단”이 “새마을 운동”의 하부 조직이라는 것은 그 당시 저의 어린 생각에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물질적, 외부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새마음” 운동은 정신 개혁 운동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운동을 통해서 박정희 정권은 유신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고, 반대파의 소리를 잠재우는 이중 효과를 기대한 듯합니다. 사회 통제 (social control) 이론을 그대로 교과서적으로 잘 실천에 옮긴 셈이지요.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었을 때, 열린 우리당에서는 그녀의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경력과 독재 정치를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자녀를 연좌제에 몰아 넣지 말라는 한나라 당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연좌제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자녀에게 까지 죄를 묻는 원죄론 (theory of original sin)입니다. 기실, 연좌제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박근혜씨에 대한 연좌제 논란은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현재의 박근혜 대표를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에만 가두어 두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자녀가 뒤집어쓰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요. 그것도 민족 분단의 이념이 빚어낸 결과가 연좌제가 아니겠습니까? 박대통령이 연좌제를 철저히 이용하여, 그것을 구워먹고, 삶아먹고, 튀겨먹고, 데쳐먹고, 우려 먹었습니다만, 그 더러운 연좌제를 다시 그의 딸에게까지 덮어 씌운다는 것은 심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박근혜 대표를 연좌제의 사슬에 묶어, 친일의 대표적인 사람인 박정희의 딸일지언정, 또 자기를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을 감옥에 잡아 넣고, 자신이 좌익 활동을 한 전력이 있으면서 무고한 사람들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총살시키고, 연좌제에 몰아 공무원 임용을 못하게 한 박정희의 딸일지언정, 그와 그의 딸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령, 박정희의 친일, 좌익, 독재의 전력이 씻을 수 없는 역사의 과오라 할지언정,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변하고, 오솔길이 경운기가 넘나드는 길로 바뀌게 한 “잘 살아 보세” 경제의 영웅의 딸이 생존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에게야 또는 기득권을 잃지 않고 싶은 사람들에게야 매우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극히 당연하게도, 박근혜씨가 한나라 당 대표가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 때문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구/경북, 심지어 부산/경남으로 이어지는 박정희에 대한 “경제의 추억”이 그녀를 한나라당 총재로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우파 또는 극우적 정서를 가진 한나라당이, 그것도 가장 가부장적인 당으로 대표되는 한나라 당에서 여성을 당 대표로 만든 것은 획기적입니다. 그것도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승리로 그녀는 당 총재가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이념을 이어받은 유신 정권의 “정통” (orthodoxy)입니다. 박대표는 단순히 아버지의 경제적 성공이라는 후광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의 반공/보수 이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새마을 운동에 대한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할 수 있는 새마음 갖기 운동의 총재직을 유신정권 때 맡았었고, 그러한 보수 이데올로기를 21세기의 여명에서도 그대로 전승하고 있습니다. 당 대표가 된 이 후, 박 대표의 발언과 행동은 극우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박대표를 보좌하는 측근이 보수적일 뿐 아니라, 박 대표 자신이 바로 극우적인 인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즉 이십여 년 전 (아마 1978년) 진주 공설 운동장에서 새마음 갖기 선전 (propaganda) 활동을 “가열차게” 하던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 박근혜가 현재의 한나라당의 대표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박근혜 씨는 단순히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아닙니다. 그녀는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보수 또는 극우적 정서를 그대로 이어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본인이 이것을 전파하는 선봉에 서 있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누구를 지지하거나 어떤 이념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그런 선택의 자유가 허용된 곳을 민주사회라 일컫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이런 이념적 선택의 문제에서는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됩니다. 그 선택의 길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worldview)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발언 (utterance)과 논리는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구성물을 만들어 가는 주체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이런 구성물이 우리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구조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박근혜 님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택의 길은 바로 여러분이 살아 온 삶의 여정,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 온 앎의 축적, 더 구체적으로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지식은 수용하고 싫어하는 지식은 배척하는 선택적 지식의 축적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꿈과 희망을 준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영애 박근혜 님이 요즘 자주 저의 뇌리를 두드려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한나라당 대표이신 박근혜 님께서 보수적 이념을 고수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의 생존이 달린 남북문제, 궁극적으로는 통일 문제를 현실적으로 잘 풀어나가시길 빌어 마지 않습니다. 이십 여 년 전 진주 공설 운동장에서 고혹적인 모습으로 연설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옛날, 선전의 전선 (frontline)에 선 그 분의 모습이 여전히 싫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은 몸가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성인이 된 지금, 그 분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세월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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