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곧 사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관의 정립은곧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의 출발점이 됩니다.
오래된 논쟁 중에 대한민국 개발경제의 공이 박정희에게 있는가 아니면
다소는 애매한 표현이긴 하지만 국민들에게 있는가는 바로 사관의 차이에서 비롯합니다..
박정희에게 있다고 보면 인물 중심이 될 것이고 일종의 영웅주의 사관이랄까요... 그것도 지배엘리트의 관점에서 본 지배계급적 영웅주의지요.
반면 국민들에게 있다고 보면 세력중심이 되겠지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는 차이와도 관련이 있겠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허접한 모양으로 살더라도 가치를 세력에 두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외형의 변화와 양적 팽창이 비본질적으로 보일 것인데 반면, 세력간 동등한 힘의 균형, 그리고 세력과 개인간의 균형잡힌 자유와 권리의 향유, 천부적 인권 및 고유한 정체성의 비적대적 향유가 본질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야말로 세력을 결집하여 이루려는 것의 종착역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터 비로소 민주주의는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의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셈입니다. 아쉽지만 서 본 경험이 없습니다. 지난 10년 민주정부의 결과 겨우 서볼까 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뭉개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개인적으로 뛰어난 성공을 거둔 부류들 중에는 사실 인물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어느 사회나 할 것없이, 특별히 자본주의가 판을 장악하면서는
더욱 심화된 사회의 일반 현상입니다. 돈이 위력을 떨치는 세상이고
그것은 곧 권력에 닿아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세력이란 단지 불순한 집단이거나 천박한 무리들로 보이기 십상이며 따라서 그들은 화려한 구호 속에 외형적 변화와 양적 팽창에 올인하며 도덕과 질서와 규율과 집단적인 이념으로 세력을 통제하려 합니다.
그런 가운데 개념이 불명확한 자유와 규제완화를 말하지만 이것은 단지 그들의 지배 무기를 강화하는데 한정되어 있을뿐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 뿐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사관입니다. 사관은 방법론에 의해 완성됩니다.
방법론을 거치지 않은 사관은 그래서 위험합니다. 즉흥적이거나 필연적으로 인물중심의 지배세력에 봉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맹퇴치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 이름입니다. 그것도 한국의 한글날에 맞추어 시상합니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그의 지적인 능력과 한글 창제에 대한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자랑스럽지요. 그는 분명 위대한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과연 당시 동티모르나 네팔의 국왕이었어도 이런 한글을 만들어 내었을까요. 현재 동티모르인들이 '떼뚬' 이라는 자국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채택한 것은 그들의 언어를 문자로 표현할 문화적 욕구가 그 어느때 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에 한글의 걸출한 우수성이 부합한 결과라고 본다면 어떤 위대한 문화적 창안은 결국 당시 사회의 인문적 욕구가 낳은 결과라고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글은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 시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조선 민중들의 차고 넘치는 지적 문화적 재능과 성과물들을 보다 쉽고도 간단하게 담아낼 우리 고유의 문자가 강력히 요구되어진데 부응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세력의 성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는 한글창제와 관련하여 세종을 지나치게 찬양하고 그를 마치 최고 정치인의 정형으로 떠 받드는 것은 경제 개발의 공을 박정희 찬양으로 몰아가는 사관과 닿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또한 북쪽의 김일성 김정일 세습체제에 대해 비호감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로 주체사상이 지닌 인물중심의 사관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누구나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사관이 있습니다. 그것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형성되어 있고 그 눈으로 세상을 제각기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해석들이 개별 사안에 투영되어 자신들만의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객관적인 사고의 형성의 기회가 박탈되어 온 것이 우리 조국에서의 오랜 전통이자 치명적인 결함이었습니다.
특히 소통부재의 사회 속에서 오래 고립되어 살아온 결과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게되면서 논쟁이 쉽게 싸움으로 비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가운데 살아감을 오히려 축복이라고 여겨야할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관점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교정해 나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열린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다들 똑똑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좀 배우면 어떤가요.
남이 가르치려 들면 그 가르침을 숙고해서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겠지요.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치열하고 진지하게, 신중하게
성심껏 싸워야죠.
그래서 서로간에, 개인간에, 세력간에 적당한 긴장을 균형있게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