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101주년을 맞았다. 이날 남산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새로 준공되고 새로운 동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사형을 집행했던 당시 관동도독부의 사토 경시총장과 요시다 경시, 형무소장, 변호사, 검찰관 판관 등이 뤼순공등법원장 관사에서 기생까지 불러 축하파티를 열고 보상금까지 지급했다는 사실이 새로 발굴한 사료에 의해 밝혀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만큼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처형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당시 일본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테러리스트이거나 폭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모르지 않았다.
안중근은 개화사상을 지닌 가정에서 성장하여 조선의 부국강병을 통한 태평성대를 갈망했던 젊은이였다. 그러나 일제침략이 노골화되자 안중근은 의병부대의 장교(대한의군 참모중장)로 변신하여 의병전쟁에 뛰어 들게 된다.
의병전쟁 중에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죽여야 한다”고 주문하는 동료들을 물리치고 ‘제네바 협약’에 의해 돌려보내준바 있고,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트린 뒤에도 총알 1발이 남아 있었음에도 더 이상 쏘지 않아 ‘절제된 폭력’을 행사했던 안중근이다. 그리고 이는 죄악의 뿌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 하에서 행한 의거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안중근은 스스로 군인임을 밝히고 있다. 그의 유묵가운데도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이란 글이 있지만, 재판과정에서도 “군인으로서 적장과 전쟁을 벌인 것이므로 포로로 대우해 달라”고 일관된 주장을 했던 것은 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할 바를 다하면서도 목적 달성이외의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제했던 그는 말 그대로 ‘평화를 사랑했던 참 군인’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의거 101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안중근 의사지만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해 그가 사랑했던 조국 땅으로 모셔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