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 / 양현주
해거름 오후에 돌아오신 아버지
TV 소리 등지고
멍석잠을 잔다
꿈에서도 쟁기질을 하시는지
이랴. 워워,
잠꼬대를 하신다
황소 같은 아버지,
일곱 개의 짐을 짊어지고
일곱 마지기 옥토 밭을 일구었다
먼 길 걸어오셨다
위가 썩을 때까지 아버지를 부렸던
철부지 칠남매
나도 어느덧
세 개의 짐을 메고
거실 소파에 잠든 아버지를 본다
골 깊은 이랑 조글조글 이마에 파였다
아버지
일곱 채의 집을 내려놓고
활처럼 휘었다
계간 [크리스찬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평화 주제 문학작품공모 입상
월간 스토리 문학 2004 올해의 작품상 수상
한국문학도서관 <문단소식> 운영자
시마을 <문학가산책> 운영자
시마을 동인
공저 시집 <내 마음의 외딴 방>, <한강은 흐른다 >,
<내 마음의 무지개>, <가을이 있는 풍경>, <아듀 2003 >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등
시는 결국,
시인의 '체험적인 상황'의 바탕에서 비롯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상황이 <아버지나 어머니>에 관한 것일 때, 시인들은
어쩔 수 없이 '어버이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명제命題 앞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시인 자신을 내세우는 걸 금기시 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서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은
죄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신神이 그 사랑을 베푸심에 있어,
그의 업무(?)를 대행케 하기 위해 어버이를 이 지상에
내려 보내셨단 말도 있지만...
정말, 어버이의 사랑은 인간이 행하는 사랑의 행위 가운데
가장 신성神性에 가까운, 즉 거의 인성人性을 초월하는
그런 무조건의 사랑인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자식들이 그 어버이의 사랑을 깊이 자각할 때면...
이미 어버이들은 모든 진액津液을 자식들에게 다 빨려
속이 텅 빈 수수깡 같은 모습으로 되어 계시죠.
또 한결 같이 그 등은 활처럼 휘어있구요.
오늘의 이 시에서는 특히, 아버지의 등을 말하고 있군요.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또 다른 질감의 현재적顯在的
사랑이죠. 뭐랄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사랑을
현상現像케 하는 필름Film 같다고 할까요...
시를 읽으니, 저 역시 10여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 생각에
콧날이 시큰해지네요.
살아 생전에... 저를 위해 하셨던, 수 많은 걱정과 염려를
그때에는 왜 그리 불필요한 간섭으로만 느꼈던지.
저 자신, 아이들을 키우며 그 아이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내 모습을 통해 이제 비로소 희미하나마 그 사랑을 감지합니다.
활처럼 휘인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속 울음을 삼키는
시심에서 시인의 아버지를 향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네요.
아, 아버지...
저 역시 가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살아 생전에,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 못 드렸던 게
평생의 통한痛恨으로 자리하네요.
- 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