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배우 장진영과 수애 땜에 다시 리싸이클링합니다. 전에 국화꽃 향기는 법정 스님과 관련해서 댓글에 썼었는데, 다시 독립적인 제목으로 정리했습니다. 두개 연속으로 글을 올려서 마음이 불편한테 너그러이 이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제가 이 두 영화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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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화꽃 향기]는 사랑의 전승에 대한 동화적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나의 삶의 현실로 받아들여 그것에 돌이킬 수 없이 관여 (involvement)하며, 나를 온전히 바치는 것(commitment)”입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희재와 인하가 지하철에서 만나는 첫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희재는 만삭이 된 임산부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널부러져 자고 있는 술취한 건달을 일으켜 거기에 자리를 확보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죠. 나중에 희재의 출산과 연결되는 좋은 영화적 장치입니다. 지하철 손님들은 이 임산부의 삶에 무관심하죠. 인하는 희재의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희재가 지하철에서 내리자 따라 내리는 장면은 바로 타자의 삶의 끈이 형성되는 “인연”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두 번 째 장면은 인하가 선배의 권유로 “한국역사” 알기 동아리에 참여하기 위하여 헌 책방에서 만나는 것이죠. 여기서 인하는 미국에서 자라서 한글의 어휘가 부족하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무식한 신입으로 나옵니다. 이런 무지가 만들어낸 에피소드에서 이 동아리 여자 회장인 희재는 후배 인하를 이렇게 쏘아 붙입니다.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하여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런 얘기지? 자기가 어디에 자랐건 자기 뿌리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는 확실해야 되지 않은가?”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체현되지 않은 지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타자를 아는 과정을 설명하는 장치기도 합니다. 이 똘똘한 희재는 의협심 강한 여성이지지만 여전히 아직 타자의 고통을 자기 삶의 고통으로 철저히 내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부모와 약혼자인 선배 (인하의 선배이기도 하며 동아리를 이끌었던 정신적 지주)를 교통사고로 잃고 철저히 절망하고 망가진 후, 인하와 친구 정란의 도움으로 거듭납니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짝사랑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희재를 짝사랑하는 인하, 이 인하를 짝사랑하는 정란. 이 두 사람은 그 동안 먼 발치에서 희재가 정신적 충격에서 회복되기를 지켜보는 인물들입니다.
희재와 인하의 행복한 결혼 그리고 생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불임인줄 알았던 희재 는 아이를 갖지만, 그녀의 몸에 암세포가 번져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치료를 하게 되면 아기를 잃고, 치료를 하지 않으면 자기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희재는 자기의 목숨 대신 아기의 목숨을 선택합니다. 암이 몸에 번지면서 오는 고통은 사랑하는 아기를 위해 감내하며 결국 수술을 통해서 아기는 태어나고 이 탄생을 어렴풋이 보면서 희재는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아기는 그녀가 남길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의 결실이자 마지막 삶의 끈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랑의 희생 공양이자 무소유였던 것이죠. 고 장진영님은 이 아름다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던 국화꽃 향기의 기억을 남기고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늘한 바람 속 향기.
이제 둘만 남은 여자 아이와 인하, 그러나 둘은 행복합니다. 여전히 희재는 그 둘을 묶어 두는 사랑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희재가 인하와 함께 병 요양을 하던 바닷가 집에서 두 부녀는 앉아서 희재가 딸 재인에게 남긴 동화책( 희재는 미술학도였슴)을 읽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 사랑해, 바다야 사랑해, 하늘아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그리고 인하도 딸 재인에게 말합니다. “나도 우리 재인이 많이 사랑해.”
이 영화에서 인하를 짝사랑하면서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 아프게 키우고 담아 가는 사람은 정란입니다. 그녀는 희재와 인하가 잘되기를 바라는 벗으로 남습니다. 정란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자기를 절제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타자의 삶에 관여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까요? 바로 그녀는 친구 재인과 인하를 모두 사랑하니까요. 이 영화의 후기는 바로 인하, 재인 그리고 정란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 희재, 인하, 정란 세 인물의 캐릭터는 가을 풍경의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들입니다. 이 착한 주인공들 때문에 한국이 그립습니다. 처마 밑으로 비내리는 장면, 노란 은행잎 거리, 바닷가, 70년대나 80년대 초의 농촌, 헌책방. 이야기의 곳곳은 우리의 일상 삶에서 엮어 나갈 수 있는 그런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고 장진영님의 죽음처럼 안타깝기도 하고, 또 그 절절한 안따까움 땜에 다시 보게 됩니다. 이 슬픈 수채화 속에 따뜻한 인간 윤리가 담겨 있습니다. 국화꽃은 삶을 열심히 살고, 사랑의 이야기로 엮어져,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가을 향기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의 몫 같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슬픈 것입니다. 떠나 보내는 슬픔이니까요.
배경음악은
http://chom1007.com.ne.kr/music/lnnocence-GiovanniMarradi.a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