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한국말이라도 남코리아에서 쓰는 말이 다르고 북코리아에서 쓰는 말이 다르듯 캄보디아에서 쓰는 한국말도 좀 다른 듯 하다.
태국으로 통하는 6 번 포장국도.. 가자! 타이드림을 안고 !!
I can see the Victory Monument… Very small, though.
큰 조카다. 2 년간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올 여름 토론토로 귀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더 늦기 전에 저 아이의 잠재의식안에 저장되어 있을 인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퍼 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3 주도 아니고 3 개월이나 인도 이곳 저곳을 쏘다녔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축적된 스토리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일기형식으로 생각나는대로 글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산만하더라도 수집해 놓은 정보와 시청각 자료가 있다면 그것을 해석하고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업은 너무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다.
툭툭 파트너 마사코와 폭탄주 제조비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3 박 4 일 동안 서로 한 가지씩 상대방의 일정을 따라가 주었는데 나는 Bantreay Srei 에 따라갔고, 마사코는 평양랭면관에 따라와 주었다. 나는 그 힌디사원에 만족했고 마사코는 냉면에 완전히 매료된 듯 했다. 그런 이유로,, 당초 마사코가 내기로 되어 있었던 Bantreay Srei 추가 툭툭 비용 중 절반을 내가 부담했다. 마사코 역시 그 보답으로 내가 내기로 했던 평양랭면관 식사비의 절반을 부담했다. 결국 우리는 모든 비용을 1 불 단위까지 철저하고 깔끔하게 나누어 낸 모범적인 비용분담파트너가 됐다
프춤번 명절이라 택시잡기 어렵다던 그 날, 씨엠립 호텔에서 국경까지도 아니고 방콕까지 10 불에 모신다는 소리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호기심, curiosity,, 이거야말로 상황을 스펙타클하게 바꾸게 하는 매력적인 심리현상이다.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여행자버스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 버스에 여행자들만 타고 출발했다. 가는 도중 버스가 세 차례 정차했다. 한 번 씩 정차할 때마다 짐을 한 보따리 씩 둘러 멘 캄보디아 주민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어른들도 탔고 아이들도 탔다.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려 보고나서 혹시 지붕위에도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버스 지붕 위에까지 사람이 타지는 않았다. 닭이나 염소를 데리고 탄 사람은 없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언젠가 여행자 버스의 전설이라는 글을 써 올린 적이 있는데, 내가 그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명박산성' 은 2008 년 5 월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배낭산성' 은 이 버스 안에서 처음, 그리고 직접 목격했다.
씨엠립에서 출발하는 여행자버스는 싸르니아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었다. 승객의 권리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운수회사가 속한 국가의 물질적 조건에 따라 대단히 상대적일 수 있다는 교훈이 그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역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준거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집단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지 그 집단 바깥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준거가 적용된다는 사실...... 자기가 지금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화를 내거나 불평을 하는 여행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날, 아주 새삼스럽고도 멋진 교훈 얻었다. 득도할 수 있는 가르침도 주고 게다가 단돈 10 불에 방콕까지 데려다주니,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 명절 날 이용하는 여행자버스 강추!
이런 착각을 한 적이 있다. 방콕은 서울보다 음식값이 비싼대신 숙박비가 저렴하다. 과연 그럴까?
후자는 맞는데 전자는 틀렸다. 생각해 보니,, 싸르니아에게는 아주 못된 편견에 사로잡힌 여행습관이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을 여행할 때는 노점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으면서 동남아를 여행할 때는 '아무데서나'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점에서 음식을 사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두 번인가 치앙마이에서 예외가 있기는 했다.) 대한민국 식당과 태국 식당을 차별해 온 싸르니아에게 서울과 방콕의 음식값을 비교할 자격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다.
하지만 숙박비에 관해서라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방콕의 숙박비는 환상적이라고 할만큼 저렴한 게 사실이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생계형 여행자 싸르니아가 호텔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청결도만 주로 확인한다. ‘스펙’ 같은 건 아예 거들떠도 안 본다. 그러다보니 20 불대에 지낼만한 호텔을 건질 때가 있다. 서울에서 20 불 대 숙소? 글쎄.. 홍대부근 서교동 연남동 동교동에가면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생겼는데, 거기 도미토리가 20 불대다. 가 본 적은 없는데 잘 안다. 우리 동네니까.
전투수칙…… 다섯, 나는 야간전투의 승리자가 되겠다.
이 사진들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올린 게 아니다. 야간촬영을 한 것들 중 맘에 드는 컷 몇 개를 골라봤다.
그나저나 걸림막에 쓴 '유신쿠데타 40 년' 이라는 글을 보니 생각나는게 있다.
꼬마시절,, 그러니까 1972 년 10 월 말 경.
안국동 풍문여고와 인사동 밉구 신민당사 사이에는 육교가 있었다. 그 육교 아래 장갑차 두 대가 항상 서 있던 기억이 난다. 오가는 행인들을 향해 정조준한 기관포를 걸어놓고 거총 자세로 모가지를 내밀고 있던 군인 아저씨들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40 년이 됐다고?
그럼 그 때 그 군인 아저씨들 나이가 환갑이 다 넘었겠네.
……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