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킬링필드 사건이 떠 오른다.
63 년 전, 코리아전쟁이 발발하고나서 궤멸적 패주를 거듭했던 3 개월 간 한국 정부는 군과 경찰, 우익폭력조직을 총동원해 최소한 20 만 명에서 많게는 무려 120 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 전대미문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가리켜 보도연맹 사건이라고 부른다. 인민군이 진주하기 전에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좌익경력자와 ‘부역예상자’를 가려내 ‘후환’을 미리 제거하고 후퇴한다는 이승만정부의 방침에 따라 곳곳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졌다.
보도연맹이란 원래 좌익사범으로 체포됐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계도한다는 핑계로 전쟁 전에 조직한 관제단체였지만 학살당한 사람 중 전향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오히려 전쟁이 발발하고나서 패색이 짙어지자 광기에 사로잡힌 이승만정부와 폭력단체가 합작하여 벌인 좌익사냥몰이에 걸려 든 무고한 민간인들이 더 많았다.
해외의 해커집단에 의해 친북사이트에 가입한 회원명단이 공개된 후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름끼치는 종북사냥을 목격하면서 지금으로부터 63 년 전 그 사건이 떠 오르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때는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야 마녀사냥이 시작됐지만 지금은 국지전조차 시작한 적이 없는데 살기넘치는 증오와 오합지졸들의 경망스러운 엉뚱한 호들갑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불법적 해킹정보를 수사의 근거로 삼겠다는 의지를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정신적 무능력과 후진성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어쨌든......
북코리아는 제 2 차 북미전쟁을 선언했다. 전면대결전을 최초로 선언한 건 지난 2 월 14 일이었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선언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었다.
북코리아 외무성이 자국거주 외국인들의 철수를 권유하고, 그 직후부터 분쟁지역을 전문으로 취재하는 종군외신기자들이 서울과 도쿄에 몰려들어 진을 치는 한편 호주와 필리핀 등 일부 국가가 한국에 거주하는 자국민 철수를 시사하고 나서야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듯 하다.
어제 (4 일) 부터는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매도가 시작됐고, 미국자동차회사 GM 은 한국법인직원들의 안전철수를 위한 Contingency Plan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가 리토릭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이며, 무엇이 북코리아가 획득 가능한 목표일 수 있겠는가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잃을 각오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어떤 규모가 됐든 북코리아가 군사작전을 시작한다면 그 시기는 당초 한미연합군 합동훈련이 종료되는 4 월 30 일 이후가 될 것으로 관측되어 왔었다. 그런데 어제 오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무도 그 시기나 공격의 규모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리토릭부터 가려내 보자.
우선 지난 3 월 29 일 북코리아가 슬쩍 공개한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의 미국 본토 타격목표가 대표적인 리토릭이 될 것이다.
그들이 공개한 도표에 따르면 미국 본토 타격목표는 네 군데다.
첫번째 타격 목표는 ‘도발 원점’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다.
두번째 타격목표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와 미국군 북부사령부다.
세번째 타격목표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다.
네번째 타격목표는 태평양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하와이다.
이 타격목표들은 선제공격 대상이 아닌 전략적 위협대상이지만, 하와이를 포함한 일부 지역이 북의 핵공격 사정권에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만큼은 이를 리토릭이 아닌 ‘실질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리토릭 뒤에 숨어 있는 실질적인 공격대상은 무엇일까?
북코리아로서 당장 제거하고 싶은 가장 뼈아픈 위협은 서해북방한계선일 것이다. 자국영토인 황해남도 일대를 포위하듯 숨통을 조이고 있는 이 유령선이야말로 제일 먼저 제거하고 싶은 목표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 공격대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은 서해 5 도를 둘러싸고 있는 수역이다. 이 수역에 대한 기습점령이야말로 북코리아가 미국과의 전면전쟁을 피하면서 획득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전리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서해 수역만이 아닌 서해 5도 자체를 북코리아에 양보할 수도 있다는 진단도 있다. 그 근거는 작년 10 월 24 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SCM 에서 한국측이 마련한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미국측이 서명을 거부한 사건이다.
미국이 이 계획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북코리아군이 서해 5 도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을 공격하거나 이 섬들을 기습점령했을 때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 지휘관들이 즉각 대응반격을 할 수 있는 작전권한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북코리아가 지난 3 월 5 일 조선인민군 대변인 성명을 통해 3 월 11 일 0 시를 기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한 건 여러가지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정전협정의 한계 안에서는 서해 5 도 주변 수역만 점령가능하지만 정전협정이 백지화된 상태에서는 유엔사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면 5 개 도서에 교전단체를 파견하는 절차를 밟을 때 국제법적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북코리아는 이미 3 월 5 일 성명을 통해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미국군이 군사작전권을 행사하는 어느 지역으로 교전단체를 파견해도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펼 것이다. 북코리아의 교전단체 파견에 대해 유엔사는 전투행위를 통해 방어하든지 섬들을 포기하든지 양자간에 선택을 해야하는데, 만일 전투행위를 통해 방어하기로 결정한다면 미국은 북코리아와 직접 전쟁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미국은 북코리아의 전략목표인 서해 5 도만 내어 주느냐 아니면 서해 5 도를 지키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 매뉴얼에 따라 자국군 60 여 만 명을 코리아반도에 파견하여 피비린내나는 지상전을 벌이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다시 서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전쟁이, 태평양 및 동아시아 군사기지들은 물론 미국 본토의 전략적 군사기지들이 북코리아 중장거리 핵미사일의 다발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대미문의 위험속에서 치루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한 끔찍한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미국의 심각한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