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몬톤 김동규 목사의 위험한 글쓰기
지나가듯 한말씀 드립니다. 씨엔드림의 지난 11월 16일 B10 문화 쪽에 에드먼튼 새길 교회의 김동규 목사의 “공자가 죽어야 한다고?’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칼럼 하나를 쓰기도 힘든데 매주 전면을 채우다시피하는 칼럼을 쓰시는 것을 보면서 상당히 열심히 사시는 분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여기 글을 올리는 것은 단순합니다. 지난 번에 씨엔드림 운영팀에서 최성철 목사의 글에 대해서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항의성 전화가 왔다는 글을 여기 자유게시판에 올리면서 최목사의 글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정중히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박의 글을 올리길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씨엔드림에 전화를 걸어 사단적인 글을 왜 싣느냐고 항의하기보다는 여기 게시판에 토론 비스무리한 글을 올리는 것이 신사숙녀답다고 생각해서 질문 비스무리한 글을 올립니다.
김동규 목사의 칼럼의 요지는 제식으로 풀어쓰자면, 이른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설명하듯 한국 사회에 공자사상의 부정적 요소가 팽배하므로 이런 공자적 레거시가 사라져야 하는데, 사실은 공자가 죽고 나니까 나라를 막아 먹을 “포스트모더니즘”의 귀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김동규 목사께서는 저의 이런 요약을 동의하시지는 않으실 수 있지만 그 칼럼을 제 식으로 해석하면 그렇다는 것이죠. 그런데 공자사상의 부정적인 귀신이 대신한 자리에 포스트모더즘이 들어와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동규 목사의 글”
“공자를 쫓아내는데 포스트 모더니즘이 주된 역할을 했지만 교회도 한 몫을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수와 개성을 존중하며 절대 도덕을 부인하니 이 땅에 절대 도덕을 제시하지도 않고 또 제시하지도 못하지만 교회 역시 그 도덕의 공백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니까 김목사의 주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존의 절대도덕성을 상대화했다는 것입니다. 즉 기존의 공자 사상이 어느 정도 절대적 도덕성을 견지했는데 공자가 죽고 말았으니(유교의 영향력이 사라져버렸으니), 김목사는 이를 “도덕적 아노미”(저의 표현)로 보고 걱정하시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김목사가 이런 주장을 하시는 핵심은 사실은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김목사가 싫어하는 신학적 경향성을 포스트모더니즘에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서 비판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의 글에서 그의 의도는 분명해집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물들은 잘못된 기독교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해방과 자유를 외친다. 그러나 인간 안의 본성, 이 죄성성은 자유를 이용해 타락하느데 아주 빠르다. 그들이 누릴 부와 자유가 그들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김목사는 다음의 자기 결론으로 열씨미 달려가고 계십니다.
“예수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만이 도덕적 공백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칠 수 있다.”
김동규 목사가 상당히 긴 분량의 칼럼을 통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단순합니다. 즉 예수만이 절대적 도덕성을 보증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동규 목사께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첫째, 김동규 목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적 정의 또는 설명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반인을 위한 하나의 칼럼에 jargon을 사용하려면 왜 그 개념이 그 글에서 중요한지를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위키피디아 정도에서 설명하는 사전적 이해를 전제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평해야 합니다. 김동규 목사의 글을 보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른바 기독교라는 종파적 도덕성을 해체하는 것으로만 간주됩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예술, 신학, 철학, 건축, 사회학, 역사학, 언어학 등등 무지무지하게 방대한 것인데 그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기독교 또는 예수의 윤리가 절대적이라면 왜 절대적인지를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김동규 목사 같은 기독교 절대 윤리론자 외에 이른바 세속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학자 중에 어느 누가 김동규 목사의 주장을 동의할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윤리에 대해서 말하려면, 이른바 세속사회에서 말하는 기본적 윤리를 기독교에서 따라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만이 최고다라고 해도 그것은 아전인수격인 사투리에 불과합니다. 개신교도인 김동규 목사는 동의하시지 않겠지만, 누가 뭐래도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가 낳은 최고의 윤리학자는 가톨릭의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그의 윤리학은 기독교 신학에서 순수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세속적인 철학과의 대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셋째, 김동규 목사가 말하는 예수절대 윤리는 기독교 내에서도 공통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수많은 예수상이 있습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성공예수로 볼 것이며, 천당에만 목숨거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천국으로 안내하는 관광가이드 예수일 것이며, KKK단에게는 백인 예수일 뿐입니다. 김동규 목사께서 예수 윤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예수만이 희망”이라는 공허한 구호 대신에 이 세상에서 예수가 지향하는 착한 예수상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도덕성(morality)은 가치의 문제를 논하며, 착하고 착하지 못한 것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하는 대신에 왜 예수쟁이들이 다른 비예수쟁이들보다 더 착하지 않으며, 왜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포스트 모더니즘도 괜찮다고 말하는 진보적 기독교인들보다 덜 착한지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포스트 모더니즘 지지자가 아닙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하나의 시대의 경향성이기도 하며, 또 주장이기도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지 못한다는 오늘 칼럼도 재밌군요.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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