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지우기 / 안희선
1
도시의 아웃라인(Outline)은 모든 것을 흐리게 하는
색깔로 물든다, 특히 저녁무렵엔
집에 가야 하는 시간에
전자대리점 쇼우윈도우에서 뉴스를 말하는 TV를 본다
하루는 참으로 잘도 속이며 흘러간다
오늘도 깜박 속았다
내일의 다짐은 저 홀로 헛구역질
얼핏, 떠오른 달이 신기하다
2
호주머니 안에는 아직 웃을 수 있는 힘이 약간 남아서
생소하지만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어서 또 다시 슬퍼지고
가난한 수첩엔 옹기종기 그리움이 묻어 반질거린다
도시에 남아있던 먼 발치 산자락의 달동네가
노을의 세례를 받는다
얼마 동안의 시간을 금박(金箔) 된 황혼에 포장하고
미미한 불안의 정체를 살펴본다
혼미와 고뇌는 이미 오래 전에 적당한 가격으로
출하(出荷)되었다
괴로워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그대를 위한, 시를 짓는 일에 비한다면
3
스스로의 발견에 놀라 소스라치게 등굽은 초생달이
매연 가득한 도시의 하늘에 외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누구도 그리워 하지 않는,
잔뜩 여윈 몸짓으로 밤의 문을 열어 영혼의 별들을
하나, 둘 밝히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문득, 표정없이 산다는 일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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