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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석가모니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작성자 에포케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6675 작성일 2013-03-08 08:41 조회수 4733

 

아래의 내용 상당히 공감가는 부분도 대부분인데, 마지막 부분만 좀 안타깝습니다. 

타종교를 언급하실때는 좀 더 정확한 이해를 하셔야 될 듯도 합니다. 물론 기독교만 이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출처: http://www.sharonch.or.kr/home/bbs/board.php?bo_table=j02&wr_i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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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에스라하우스 노 우 호 목사

고대 브라만교의 오류와 부정을 개혁하기 위하여 일어난 사람이 바로 불교의 비조(鼻祖)가 되는 석가모니였다. 우리가 무신론(無神論)을 이야기 할 때 고대 무신론으로 석가모니의 불교적인 무신론을 빼 놓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교가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석가모니가 무신론자(無神論者)라는 말을 들어도 그가 어떻게 무신론자가 되었는지를 대개는 잘 모르고 있다.

석가모니가 무신론을 주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적인 무신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석가모니는 본명이 아니라 하나의 존칭이었다. 그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그는 인도의 카필라성에서 성주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의 인도에서는 브라만교가 건재하고 있었다.

브라만교는 인간을 네 가지 계급으로 나누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이를 카스트제 혹은‘사성제‘라고 한다.

카스트제도란 ‘브라만‘계급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고 그 아래는 ‘크샤트리아‘계급의 사람들이 정치. 무사 등 관료의 직무를 맡아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바이샤‘라고 하는 평민들이 있고 다시 노예계급으로는 ‘슈드라‘계급이 있었다. 얼른 보기에는 왜 그렇게 계급사회가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인도의 고대역사를 통하여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인도에는 크게 두 가지 인종이 살고 있다. 먼저 인도의 원주민족(原住民族) 혹은 선주민족(先住民族)으로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드라비다족이라고 한다. 드라비다족은 황갈색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거기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후대에 인도를 침입한 아리안 족이 물러가지 않고 그 땅에 눌러 살게 되면서 카스트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아리안‘이란 말은 ‘고상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들이 드라비다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만든 계급제도를 두고 4성제라고 부르게 되었다.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위의 두 계급(브라만. 크샤트리아)은 아리안 족의 차지가 되고 아래로 두 계급(바이샤 슈드라)은 원주민족이었던 드라비다족에게 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가모니는 카필라 성의 성주 아들로 태어났으니 그는 아리안 족이었다. 그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를 낳다가 죽었고 석가모니는 어린 시절 그의 이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매우 우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정반 왕은 아들을 기쁘게 해 보려고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석가모니의 우울증은 차도가 없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생각이 깊은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는 상당히 비판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었고 분석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편이었다. 후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기까지 했지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상적인 방황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차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그 이전에 역사적인 진리와 종교적인 진리를 파고들었다.

석가모니는 티베트의 고산준령을 넘나들며 고승대가들을 만나서 설법을 들어보았지만 머저리 같은 브라만교의 중들에게서는 판에 박힌 넋두리들 외에는 들을 것이 없었다. 구도에 지친 석가모니는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는 사실 앞에 좌절도 경험했다.

그러한 고승대가들을 만나고 또 만나서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은 브라만교에 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브라만교는 다신론적인 종교였다.

브라만교에서는 여러 가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거기에는 천계의 신 댜우스(Dyaus)가 있었다. 창공의 신 바루나(Varuna). 새벽의 신 우샤스(Ushyas). 광명의 신 미트라(Mitra). 태양의 신 수르야(Surya). 전쟁의 신 인드라(Indra). 불의 신 아그니(Agni). 보존의 신 비쉬누(Vishnu). 파괴하는 신 시바(Shiva)와 그의 배우자인 칼리(Kali)가 있었다. 번영의 신 락쉬미(Lakshmi)가 있었다. 그리고 비쉬누라는 신이 성육신(成肉身)하여 나타난 신이 바로 크리쉬나(Krishna)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고대 인도의 평민들 즉 바이샤와 노예 계급인 슈드라들은 그 많은 신들을 섬기느라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싯다르타가 의심을 품은 것은 바로 “이러한 많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가?”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연구를 거듭하여 이 모든 것이 다 인조신(人造神)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이러한 많은 신들은 다 인간이 고안하고 창안한 인간 두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싯다르타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후 비로소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직설적으로 가르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조용한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것은 브라만교를 힘으로 타도하는 방법이 아니라 조용하게 사람들을 깨우치려고 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그 말이 오늘날은 참으로 많이 왜곡되어 불교인들은 불교의 교리나 불교의 경전에 무슨 고차원의 세계가 있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아무런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실 모든 것을 깨달았다. 해인사의 이성철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당시에 깨달은 것은 브라만교에서 섬기라 하는 모든 신들은 가짜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여 본 결과 브라만교의 모든 제도는 아리안 족이 선주민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악한 제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성제라는 계급제도 역시 인간의 지배욕에서 나온 기만적인 제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우리가 석가모니를 이야기 할 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채 이야기해서는 일평생 아니라 몇 천년을 연구한다고 해도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무슨 진리를 말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석가모니의 무신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브라만교에서 가르치는 신들은 다 가짜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인도의 계급제도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질서를 위하여 사도(邪道)를 버리고 정도(正道)를 설정하여 가르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邪道는 곧 당시의 브라만교를 말하는 것이요 그가 가르치던 정도는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것이었다.


 

 

불교의 팔정도(八正道)

우리가 불교의 무신론을 알기 위하여 불교의 교리 중 가장 근본이 되는 팔정도(八正道)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정견(正見)을 가르쳤다. 사물을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철이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리고 물은 그저 물일뿐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신비한 것이 없는데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 산에서 산신을 찾고 물에서 용왕신을 찾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다. 돌은 돌이요 나무는 나무이며 흙은 흙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다. 돌로서 부처를 만들었다고 그것이 부처일 수는 없다. 그냥 돌은 돌일 뿐이다. 나무는 그저 나무일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일뿐이다. 거기에 누가 성불(成佛)을 했느니 하는 것은 다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한 데서 온다.

둘째. 정사(正思). 즉 생각을 바르게 한다. 생각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사람이란 그 속에 있는 생각 그것이 곧 그 사람이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을 해야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 욕심이나 교만. 게으름이 끼어 들면 생각을 바르게 할 수가 없다. 사물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는 데서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생각이 삐뚤어지면 만사가 바르게 될 수가 없다.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르지 않게 되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관계가 바를 수가 없다.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만사가 다 바르지 않게 된다.

셋째. 정어(正語). 즉 똑바로 말한다. 인도의 사람들은 사실 똑바로 말할 때가 거의 없다. 온갖 관념에 얽힌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말이 어렵고 이해하기는 더 어렵다. 한 예를 들면 ‘나무들이 인간처럼 보였다‘하면 될 말을 인도인들이 표현할 때는 “인간성이 수목성을 띄고 표상 되었다”라고 말한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을 비비꼬는 것을 경계했다. 성철스님이 남긴 말은 바로 그것이다. 산이 어떠니 물이 어떠니 하는 것은 다 쓸모 없는 언어의 유희에 불과했다.

넷째. 정업(正業)이다. 이 말은 직업을 말하기보다는 행위 즉 행동을 말한다. 행위는 불교에서 業報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물을 볼 때 바르게 보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가 바르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바르지 않다는 것은 사실 그 이전에 말이나 생각이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사물을 있는 그대고 바르게 보지 못했다. 사람이 행위를 바르게 가지는 것이 쉽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앞의 세 가지를 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효가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가를 연구하다가 “보는데서 생각이 생성된다(見物生心)”는 것을 깨닫고는 인도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다섯째. 정명(正命) 즉. 남에게 무엇을 시켜도 똑바르게 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시키고 가르치려고 한다면 먼저 자신의 행위를 가지런히 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그 명령의 권위가 인정된다. 자신은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말을 비비꼬아서 시키니까 상대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행하지 않으면서 명령만 하다보면 그러한 명령은 권위가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는 책임을 추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섯째. 정정진(正精進)이다. 사람이 노력을 해서 정진하되 언제나 바른 방법으로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속이거나 해서 정진하는 것은 사실 정진이 아니라 퇴보한다. 옳고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출세를 한다든지 부정한 수단이나 부당한 방법으로 정진하는 것은 결코 정진이 아니라 도리어 죄를 지으면서 퇴보한다. 눈가림이나 속임수를 써서 도를 닦는 것은 하나의 사기 극이요 외식(外飾)에 불과했다.

일곱째. 정념(正念)이다. 사람이 생각이나 염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원이나 염원도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옳지 않은 염원이 있으면 그것이 결국은 말로, 행동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실 불교의 고승들 중에 참으로 정진하려는 사람들은 이 정념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

여덟째. 정정(正定)이다. 결정을 할 때는 신중을 기하여 바른 결정을 하고 확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마침내 결정을 해야 움직이게 된다. 결정은 사실 최후의 확정이다. 여기에 이르기 위하여 앞에 7가지 정도를 닦아 온 것이다. 인생은 타고 난 환경과 판단과 선택 즉 결정의 결과를 살고 있다. 불교인이 아니고 승려가 아니라고 해도 이러한 팔정도의 자세를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석가모니도 깨닫지 못한 것이 많지만 그가 깨달은 사실들 중에는 바르게 깨달은 것이 많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 위대한 정각(正覺)을 얻었다. 그의 지성과 용기와 개혁적인 정신은 인류역사상 가장 진취적이며 가장 위대한 개혁자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正道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집을 버리고 독신이라야 겨우 당도할 수 있는 그런 까다로운 경지의 어떤 수도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석가모니의 사성체(四聖諦)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인간관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석가모니를 이해할 수 있다. 석가모니의 인간관은 부정적인 면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인간관이 형성된 것은 이른바 사문유관(四門遊觀=동서남북의 문을 나가 세상을 돌아본 사건)을 통하여 生老病死의 인생을 인간의 업보에 의한 악순환적 윤회과정(惡循紈的 輪廻過程)으로 보게 된 것이 그의 비관적인 인간관의 기초가 되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축복으로 본 것이 아니라 비극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가모니는 위대한 사람이었다.


 

 

석가모니의 정각(正覺)

석가모니(Sakyamuni-BC. 563-483)는 그 본명이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ha)였다. 석가(Sakya)는 부족이름이고 모니(Muni)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으로 부다(Buddha-불타)라 하고 또 진리의 체현자(體顯者)라는 뜻으로 여래(Tathagata)라 하였다. 그는 부친 정반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가 6년간의 고행 끝에 어떤 깨달음(正覺 Abhisambodhi)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그 내용은 아함경에 설명되어 있는데 이를 보통 四聖諦 八正道라 하고 四聖諦는 苦諦, 集諦, 滅諦, 道諦를 논한 것이며 팔정도란 정견, 정사, 정어, 정집,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통하여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1. 그는 위대한 사상가였다 안일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발견한 생로병사의 악순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보장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2. 그는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리안 족이면서도 부정당한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모든 계급제도를 용감하게 타파하려고 시도했던 사람이다. 인도에는 본래 원주민 드라비다(Drabbida-황갈색)족이 살고 있었는데 BC.2000년 경에 아리아인(Aryan-고귀한)들이 침입하면서 사성제(Caste : Brahman, Kshatrya, Vaishya, Sudra)가 실시되었다. 아리아인들은 자신들을 고귀한 계급으로 분류하고 드라비다족을 하층계급으로 분류하였다. 이것을 석가모니가 깨닫고는 계급 제도를 용감하게 타파하려 했다.

3. 석가모니는 평등사상을 부르짖은 선각자였다 그는 브라만교의 계급제도를 부정당한 점을 깨닫고 비참하게 억눌린 드라비다족의 해방을 외친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역사상 높이 평가될 휴머니스트였다

4. 그는 위대한 비평가였다. 브라만교에서 섬기라고 하는 여러 가지 신들은 모두가 가짜인 것을 간파한 것은 석가모니의 탁월한 지성을 웅변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천계의 신 Dyaus나 창공의 신 Varuna, 새벽의 신 Ushyas, 광명의 신 Mitra, 태양의 신 Surya, 전쟁의 신 Indra, 불의 신 Agni, 보존하는 신 Vishnu, 파괴하는 신 Shiva와 Shiva의 배우자인 Kali와 Lakshmi는 번영의 신이며 또 인도의 신약성경라고 불리는 바가바드기타(Bahgabad Gita)에서는 최고로 인기 있는 신이 크리쉬나(Krishna)인데 그는 보존의 신 Vishnu의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가르쳐 왔다.

5. 그는 마르틴 루터가 부패했던 카톨릭의 개혁을 외친 것보다 약 2000년이나 앞선 종교개혁자였다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외친 것과도 같이 석가모니는 누구든지 역사적인 사실을 바르게 깨닫는 사람들은 계급에 상관이 없이 다 브라만(Brahman=사제)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6.석가모니는 이런 가짜 신들을 섬기라고 하는 브라만교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신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깨달은 자는 브라만(Brahman 승려계급-제사장)들과 같이될 수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마르틴 루터의 만인제사장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는 석가모니의 正覺이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여러 가지 오해와 착각도 많았다. 석가모니의 오해와 착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7.노예제도를 개선하여 인간 평등을 실현하려고 했던 그의 사상은 실로 숭고한 것이었다. 그러한 결단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석가모니의 정각(正覺)이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도 인간이기에 많은 착각(錯覺)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석가모니의 착각은 자기 자신만의 착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착각 속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착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비극으로 이끌게 되었는지 석가모니는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착각(錯覺)

그는 비범한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개혁자이면서 또한 탁월한 교사로서 인류역사에 큰 빛은 남긴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당시의 환경이 참된 진리를 발견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두웠던 탓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깨달음은 착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1.그는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생각도 못했다.

2.그는 악령(惡靈)들의 세계를 전혀 알지 못했다.

3.그는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에 대하여 별로 알지 못했다.

4.그는 사랑의 비밀(秘密)을 깨닫지 못했다.

5.그는 일생을 심한 우울증(憂鬱症)으로 보내면서 인생자체를 비관적인 입장에서만 보았다.

6.그는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7.따라서 죽음의 의미도 깨달을 수 없었다.

8.그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지 못했다.

9.그는 만사(萬事)를 부정적(否定的)으로 보았다.

10.그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를 비극으로 보았다. 이것은 결국 반 사회적인 삶으로 오도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혼을 부정하게 보고 속된 것으로 보았던 것은 그의 잘못된 인간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1.그의 개혁은 불완전한 개혁이었다. 그의 역사관이 브라만교의 계급적윤회전생설을 겨우 개혁하여 3계 6도의 윤회전생설로 만들어서 결국은 윤회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12.그는 하나님이 없이 인간을 설명하려고 하다가 결국 무신론자가 되었다.

 

우리가 알 것은 이렇게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싯다르타도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참뜻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불교는 석가모니의 참뜻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져 있다. 실제로 석가모니는 종교나 신들을 전혀 부정해버렸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석가모니는 마치 하나의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절간에 가보면 한 가운데는 대웅전(大雄殿)이 있고 그 양편에는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서양사람들의 격언에는 “모든 비극은 오해로부터”라는 말이 있다. 현대의 속어로는‘錯覺은 自由‘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착각을 해도 어떤 농부가 사소한 착각을 했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민중의 지도자나 종교의 창시자가 중요한 문제를 착각하였을 때는 역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석가모니가 가장 싫어한 것이 誤解와 錯覺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불교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오해와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오늘날 불교인들은 석가모니를 하나의 신으로 착각하여 경배하고 있다. 거기에 불공을 드리고 있는 행위는 석가모니를 가장 슬프게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신도 아니요 창조주도 아니요 초월자도 아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할 수도 없고 주관하지도 않는다.

2. 불교인들은 석가모니가 아들과 딸을 낳게 하는 줄로 알고 거기 가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석가모니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를 비극으로 본 사람이었다. 석가모니를 너무나도 모르는 불교인들이 우리 주위에는 가득 차있다. 오늘날 불교인들의 오해와 착각을 다 기록하려면 종이를 낭비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3. 어떤 불교인들은 물고기를 방생한다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불자는 어선을 진수하고는 물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 달라고 스님을 모셔다가 염불을 하고 있다. 그러한 일에 초빙되어 가는 스님들은 무슨 염불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양심을 가지고 석가모니의 뜻을 알고 있는 스님이라면 그러한 진수식에는 가지 못한다. 오늘날 불교인들 중에 석가모니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염불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불교인들이 절간을 찾는 이유는 부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했다.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功勞도 많이 있지만 過誤도 있게 마련이다. 석가모니는 正覺도 있었지만 錯覺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錯覺은 누구나 할 수 있는 錯覺이었다. 그러나 그의 正覺은 결코 아무나 깨달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석가모니를 한 인간으로서는 존경할 수 있다. 석가모니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면 그의 과실이 있다할지라도 그 과실이 그의 위대한 사상과 업적을 상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날도 석가모니를 무슨 신이나 되는 것처럼 오도하여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불교신자들이 석가모니를 두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분이라고 믿고 존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대자대비한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 당시의 바이샤, 슈드라에게는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석가모니가 한국 불교 신자들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자비는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도 우리와 꼭 같은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고 부활하지도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의 숭고한 사상과 교훈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욕심으로 버리고 정도를 지향하라는 그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감화를 줄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불교 신자들은 사실 석가모니의 자비를 바랄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에게 좀 자비를 베풀어 석가모니를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신처럼 우상으로 만들어 그의 이름을 팔아 치부하는 악한 일들과 석가모니의 이름으로 무당(巫堂) 노릇하는 일들은 하지 않는 것이 석가모니를 가장 바르게 위하는 길이 된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을 신으로 떠받드는 것을 석가모니가 가장 경계하고 미워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당대의 현자(賢者)요. 길이 기억될 사상가(思想家)이며 위대한 개혁자(改革者)였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석가모니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인간으로 살았고 인간으로 죽었으며 인간으로 기억되고 인간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사람이요 공자 님께서 사람이었듯이 그도 역시 사람의 아들 곧 사람이었다. 결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힌두교의 모든 신들은 다 가짜라고 외치며 외로운 개혁을 기도(企圖)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에는 예레미야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가 있었다. 그리고 비록 포로 되어 갔던 사람들이지만 다니엘과 에스겔의 시대였다 그리고 에스라 느혜미야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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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티기독교는 아닙니다.

다만 안티 종교에 가깝다고 봐야겠습니다. 지금의 종교가 좀 더 건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맨날 다른 분 글만 퍼다 담아서 죄송합니다.



* 운영팀.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9-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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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포케  |  2013-03-08 08: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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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Jesus와 역사적 Buddha가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는 없는건가요.

에포케  |  2013-03-08 10:2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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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설명 드리자면,
- 파란색으로 하일라이트 된 부분은 고등학교 윤리책 수준에서 불교를 이해한다고 해도 하나하나 다 말이 안되는 것 같구요,
- 붉은색으로 하일라이트 된 부분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주신 성인들의 경우에도 다 똑같지 않은건가요?

에포케  |  2013-03-08 11:0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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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미다만 첨언드리자면, 설교중에도 좋은 설교도 많겠지만, 이와 같은 잘못된 설교가 종교내에서만이 끝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바른 내용은 별로 강조되지 않고 잘못된 관점만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객관적인 사실은 잘못된 설교에서 별로 강조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설교를 통해서 왜곡된 세계관을 가진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길러지게 되어서, 잘못된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다수가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암담합니다.
정말로 좀 생각하시고 말씀 하셔야 될 것입니다.
가치관을 위해서 역사와 사실을 왜곡해선 안될 것입니다.

너무 비관적이어서 죄송합니다.

늘봄  |  2013-03-09 04:5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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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란 말의 의미를 하늘 위에 있는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모두 가짜이고 기독교의 하나님 만이 진짜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가 최고라고 우겨대며 싸우는 모습과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에서 하나님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석가가 '사랑의 비밀'을 깨닫지 못했다는 말은 저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아마도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라는 중개인을 거쳐야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주장하는듯 합니다. 즉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천상의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이원론적 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런 사랑을 깨닫지도 않았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의 사랑의 비밀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구원받기 위한 사랑, 축복과 보상 받기 위한 사랑은 비밀도 아니고 교회가 교리라는 포장지로 덮어놓은 상업적인 사랑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3-03-10 23:0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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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연구하려는 분야를 [종교학](Religious Studies)라고 합니다. Studies가 복수로 되어있어서 짐작하실 수 있지만 종교학이 워낙 방대한 분야라서 이론에서도 학자들간에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고 fields는 더 방대해서 서로 소통조차도 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심차게 나온 것이 바로 종교현상학이라는 방법론입니다. 현상학이라는 말은 애초에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에 의해 발전된 것이지만 나중에 종교학쪽의 학자들이 이론적 정치함을 위해서 후설을 많이 차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후설이전에 종교현상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자는 운동이 종교학계에 퍼져 있었습니다. 현상학의 출발점은 학자들의 태도에 있습니다. 연구주체가 종교경험의 주체의 표현을 주관적으로 환원시키지도 않고 종교경험의 주체도 종교 연구의 주체와 동떨어지지 않기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종교 현상이 자기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에포케님의 아디처럼 사실 “epoche”라는 단어는 종교현상학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말의 뜻은 보통 판단중지(suspension of any judgment)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연구자의 선입견을 최대한 중지하고 타자의 음성이 제대로 들려지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종교현상학은 여전히 연구자의 주관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방법론적 문제에 봉착해서 인기를 많이 잃었습니다. 실은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 이런 방법론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역사학자들의 역사서술과 별로 다르지 않은 연구를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종교현상학은 종교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계속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현상학을 사회적 관심으로 확대시키면서 대중화시킨 현상학적 사회학자로는 Alfred Shutz가 있습니다. Shutz와 Thomas Luckman의 [The Structures of the Life-World]가 상당히 좋은 책입니다. 여기에서 더 대중적으로 그리고 종교현상학과 사회학을 접목시킨 책이 Thomas Luckman과 Peter Berger가 공저한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가 있습니다. 이 책은 Berger의 [The Sacred Canopy]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사회학 또는 현상학적 사회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책을 강력히 추천하구요. 사회학적 배경보다는 순수한 종교학자 또는 비교종교학자로서 방법론적 고민을 한 Ninian Smart의 [The Science of Religion & the Sociology of Knowledge]라는 작은 책이 있습니다. 스마트는 제 싸부의 싸부라서 제 할아버지 뻘되는 분입니다. 이 책은 작은 책이지만 많은 통찰력을 주는 책입니다.

위의 책들이 전문적인 책들이라면 종교현상학으로서 개론적인 책은 Walter Brenneman 등이 공저한 [The Seeing Eye: Hermeneutical Phenomenology in the Study of Religion]가 참 좋구요. James Cox의 [A Guide to the Phenomenology of Religion]는 더 포괄적으로 그리고 쉽게 잘 정리한 책입니다.

그 외에 신화등을 연구한 Mircea Eliade, Jonathan Smith, Bruce Lincoln 등도 있긴 하죠. 쓰다보니 쓸데없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뭐, 이런 분야도 있다는 정도로 참고하시면 되구요.

사족을 붙이자면 요즘은 신학과 종교학의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신학적 급진주의와 종교학은 완전히 다른 분야입니다. 신학은 분명한 자기 진리주장(truth claims)을 하는 규범적인(normative) 분야라면 종교학은 규범적이라기보다는 진리주장을 삼가하는 서술적인(descriptive) 방법을 견지합니다. 이렇게 보면 종교학자의 자격은 태도를 제대로 견지한다면 무신론자도 종교학자가 될 수 있고 몰몬교도나 기독교 목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했듯이 연구자의 개인적인 그리고 주관적인 판단을 중지(에포케)한다면, 연구자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죠. 그래서 학자들이 많이 제안하는 방법은 "방법론적 불가지론"(methodological agnosticism)론입니다. 가령, 종교학자는 신이 존재한다는 규범적인 판단을 하는 대신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르지만 그런 신을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표현, 그런 신이란 없다는 사람들의 무신론자들의 표현을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뭐, 이런 축에 못드니까 방법론적 불가지론이라는 거창한 말을 감히 못합니다.

그럼, 좋은 한주간 되십시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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