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게으름과 바쁨 사이의 일상이다. 그리 특별할 것도 다른 것도 없는 삶.. 일상은 그래서 지겹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거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듯, 일상을 떠나거나 또는 잃어버리면 그 지겨움은 어느새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일상을 잘 사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큰 후회없이 사는 한 방법이다. 그런데 일상을 잘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이게 쉽지만은 않다.
우리는 굳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마치 여행간 듯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일상 속에 여행가서 하는 것을 집어 넣으면 되는 것이다.
여행지의 공원을 찾듯 사는 곳의 공원들을 방문하는 것을 일상 속에 넣는다든지, 여행지에서 멋진 카페를 찾듯 사는 곳의 괜찮은 까페들을 방문하는 것 등..일상은 이렇듯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단순함 속에서도 조금은 다채로워질 수 있다.
캘거리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보우강은 그리 넓고 큰 강은 아니지만 그 주변을 따라서 얼마든지 멋진 산책길을 찾을 수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Edworthy Park 에서 출발하여 강변을 따라 걷다가 다운타운이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터닝하여 강변 언덕을 따라 나 있는 오솔길, Douglas Fir 라고 불리는 나무들의 군락지 숲속에 마련된 산책길을 돌아오는 코스를 걷기로 하였다.
늘 붉은 단풍을 아쉬워 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캘거리에서는 이런 노란 가을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아쉬울 뿐 불만은 없다. 노란 녀석들의 향연 또한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히려 붉은 녀석들이 주는 강열한 설레임보다는 차분할 수 있어 좋을 때도 있다. 이 역시 나이를 먹은 탓일까..
강 옆에 이렇게 수줍은 듯 서 있는 녀석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어느새 따뜻해져 온다.
휴일의 한가로운 날..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과 엄마의 모습에서 내 젊은 날의 초상이 그려진다. 이런 여유가 그 때 내게 있었다면..
Edworthy Park 의 피크닉 싸이트가 한가롭게 비워져 있다.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함께 바베큐 파티를 하며 휴일 한 때를 보낼 수 있다면 그로서 족한 일상이 아닐까...
피크닉 장의 불판엔 노란 잎들만..
이제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햇살 가득한 강변의 가을 느낌이 좋다
이런 곳을 걷는 즐거움은 일상 속에서 얻어지는 여행자의 그것처럼 새롭고 신선하다. 그런 시각으로 공원의 하이커들을 바라보면 더욱..
강변을 따라 지나가는 대륙횡단 철도의 캘거리 구간. 수천키로 저멀리 동부에서부터 달려온 기차들이 때론 백개도 넘는 차량을 달고 기적소리 우렁차게 밴쿠버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기차는 어렸을 적부터 웬지 애틋한 마음을 일게 한다. 달릴 때의 그 독특한 소리 때문일까..
육중한 몸체의 이 쇳덩어리가 가까이 지나가는 것을 보노라면 뭔가 거역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눌려 나도 모르게 얼어붙고 만다. 인간은 어쩌면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 거부감과 동시에 동경과 의지가 있는 것 같다. 두려움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모순의 역설이랄까..
강변 길은 호젓하고 평화로워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다운타운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캘거리.. 작고 소박한 마음으로 살기에 꽤 괜찮은 도시이다.
건너편 강변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 조깅을 즐기는 사람.. 나중에 강을 건너서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나 오늘은 같은 쪽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멋지고 예쁜 길은 계속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은 모두를 위한 선물이 되어 있다.
가을 색은 이렇듯 화려하다. 이것이 모두 태양이 만들어 놓은 그림이라니..
강변이지만 숲은 깊어지기도 한다.
누군가 자전거를 세워 놓았는데..꽤 비싸 보인 도로주행용 자전거다.
그런데 잠그지도 않은 채 주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노란 단풍 숲과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잘 어울리는 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는지.. 이런 길을 조깅하는 것도 멋질 듯 하다.
자연의 내음이 온몸을 깊이 감싸온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풋풋한 흙냄새와 낙엽과 단풍들이 있다. 아름다운 캘거리..
비록 단풍나무는 아니지만 붉은 단풍은 이렇게 곳곳에서 나를 반긴다.
푸른 하늘과 함께 멋진 그림이다.
마냥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절로 평안해진다.
따뜻한 가을 느낌..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것은 희미하게 보이는 물과 그 위에 떠 있는 단풍 때문일까.. 작은 나무다리 때문일까..
이런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붉은 색을 보면 저절로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
갑자기 뛰고 싶어진다. 걷는 것 보다는 웬지 역동적이니..
이제 반환점에 거의 다다랐다.
샤가나피 골프장의 한 쪽 구석, 도심이 코앞에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주변은 가을색으로 온통 물들었고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엔 작은 평화가 찾아온다.. 감사와..
청설모가 훌륭한 먹이를 문 채 고압전류를 곡예하듯 지나가며 내게 잠시 포즈를 취해준다.
돌아가는 길의 모습은 다음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