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리아 취주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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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코리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성택 처형은 이 사태의 종결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으로 보인다.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칭 ‘북한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입에서 나오는대로 마구 지껄여대는 소리들을 듣고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북의 대외정책에 관한 행동예측을 할 수 있는 분석가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북코리아 핵심권력구조 내부의 지각변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난 12 월 초부터 중구난방 헛다리 짚는 소리를 반복해온 내외언론의 분석기사라는 것들을 보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북코리아 사태를 비교적 객관적이고도 정확하게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은 없을까?
참고할만 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을 살펴보자. 하나는 친북 그룹의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반북 그룹의 시각인데 재미있는 것은 두 상반된 시각 사이에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첫 번 째는 북코리아의 국가안전보위부와 미국의 중앙정보국의 첨예한 정보공작전쟁에서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완패했다는 시각이다.
두 번 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하는 민간 테크노크라트 계열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유혈쿠데타라는 시각이다. 북코리아에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다가 남코리아로 망명한 장진성 씨가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현재 반북극우진영에 속해있다. 쿠테타를 주도한 전위그룹은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이며 그 배경에는 광범위한 유격대혈통 인맥이 버티고 있다고 분석한다. (장씨는 조직지도부만을 언급했지 유격대혈통이란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첫 번 째 시각인 <미국 중앙정보국 완패설>은 장성택 계열의 밀사가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을 접촉하는 초기단계에서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정보망에 포착되어 그 전위조직이 일망타진된 것이 이 사태의 발단이라고 주장한다.
알려진대로 미국이 추진하는 대북공작의 첫 번 째 목표는 유사시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탈취하고 이 분야와 관련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체포 격리하는 것이다. ‘유사시’란 단지 전쟁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의 당-정부조직의 통제력이 무력화 된 상태까지를 의미한다. 이런 유사시를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공작을 구사하여 그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창출하고자 제작된 작전이 이른바 5029 작전이다.
근데 2011 년 12 월 17 일 김정일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미국의 대북비밀공작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험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공작기조가 바뀐 것이다. 북 내부의 비주류를 외교적으로 지원하여 그들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산시킴으로서 북의 권력구조의 성격자체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전해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전략적 인내’란 바로 이를 두고 나온 말이었다. 이 비주류는 비교적 개방적 사고를 지닌 테크노크라트 그룹을 말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 장성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두 번 째 시각도 미국의 첩보공작 이야기만 빠져 있을 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본질은 유사하다. 북코리아 유격대혈통 지배구조에 도전하는 전문가그룹을 향한 허리꺾기 공격 개념으로 장성택 제거를 해석하고 있다. 다만 두 번 째 시각에서는 이른바 장성택계열의 미국연루설을 누락하고 잇거나 부정하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내부정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북 체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이 단순히 김일성 주석일가, 즉 백두혈통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받는 사회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성택도 비록 곁가지이긴 하지만 백두혈통의 가족일원이니까 막강한 권력과 인맥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장성택이 알려진 것만큼 실세였거나 권력가였을까?
지난 17 일 있었던 김정일 위원장 2 주기 추모행사에 아주 의미있는 인물이 등장했다. 올해 94 세의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황순희가 누구인가? 1950 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가장 먼저 진입한 제 105기갑여단 여단장이었던 류경수의 부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가 김일성 주석과 항일유격부대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여성전사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과 친구사이였다는 점일 것이다. 김정숙이 사망하자 생사를 함께 했던 친구를 대신해 어린 김정일을 친자식처럼 돌봐 준 일화는 유명하다.
장성택이 처형된 바로 5 일 후, 이 역전의 여전사가 노구를 이끌고 휥체어에 앉은 채 주석단 상석, 그것도 그 행사에 불참한 김경희 비서의 자리에 나타났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 위원장은 이 노파의 두 손을 잡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북코리아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무멋을 의미하는지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김일성대학을 나오고 백두혈통의 사위가 되어 외면적인 출세가도를 달려 온 장성택의 해바라기 인맥과는 그 결속력의 궤를 달리하는 유격대혈통은 북의 군대와 중앙당 뿐 아니라 전국 각 시도의 말단조직에이르기까지 그 막강한 인맥과 영향력이 골고루 퍼져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각 친북과 반북적 시각에서 이번 사건을 해석하고 있는 첫 번 째와 두 번 째 해석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다.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사후 외국여론의 지원을 받으며 북 내부의 권력을 하나하나 접수하는 절차를 밟아나가다가 상대방, 즉 북코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기존권력이 용납할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시점에 그들에게 기습을 당했다고 보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가 장성택 그룹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미국의 첩자노릇을 하다가 발각됐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단순한 내부 권력투쟁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북코리아를 지배하는 광범위한 유격대혈통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형국을 보이고 있는 백두혈통의 현재 위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여전히 우뚝솟아있는 지도자의 혈통인가 아니면 포위되어 있는 상징적 존재로 추락한 것일까?
그 해답은 장성택 판결문을 정독해 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북코리아 사태는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돈다. 비록 제대로 된 정보가 없더라도 뭔가 커다란 변화가 발생한 것은 직감할 수 있다.
2013. 12.19 (MST) sarnia(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