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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공부 나는 누구인가? |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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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6976 |
작성일 2014-01-17 02:46 |
조회수 4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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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낳은 슬로베니아의 최고의 지성, 슬라보예 지젝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10년은 넘은 것같고, 저도 인지하고 있었고, 친구들도 많이 언급했지만 아직 이분의 책을 한번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이 분의 책은 중고도 구하기 힘들어서 새책을 몇년전에 사놓고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한국에 오셔서 강연한 것을 어제 보았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와 자끄 라깡의 영향을 맣이 받았다고 합니다. 라깡은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많이 유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꿈이 언어속에 구조화된 무의식을 주장하였습니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라깡에 대한 소개가 많이 되어 있을 겁니다. 시대마다 유행한 사람이 있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기있는 사람은 지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래 강연에서 여러분은 유럽의 지성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 강연중에서 지젝이 언급한 The Act of Killing이라는 다큐먼터리는 충격적입니다. 저도 아직 다 못봤는데, 1960년대에 인도네시아에 일어난 대량살육의 주인공이들이 출연하는 다큐인데 아무도 죄의식을 갖기는커녕 마치 사람죽인 것을 영웅담처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외상들이 일제의 식민지를 정당화하거나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하면서 발언하면서 사임하는 모습이나 한국의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조직을 위해서 발언하는 것, 즉 김무성의 의원들의 짜라시 출처등은 바로 지젝이 이 다큐를 지적하면서 분석하는 한국 사회의 자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젝은 스노든같은 내부 고발자들이 많이 나와야 세상이 변한다고 강조합니다. 권과장은 내부고발자도 아니고 진실을 증언한 댓가를 지금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모난돌에 정맞는 것이아니라 모난사회가 착한 개인들을 살해하는 사회는 가히 전체주의 사회라 할 수 있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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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라깡이나 지젝은 소칼이 지적사기꾼으로 등장시켰다는점 또는 지젝은 촘스키가 말도 안되는 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글을 쓴다는 이유로 경멸했다는점 등등으로 알고 있고 책을 읽은적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과학을 자주 말하지만 언제나 과학자들에게 주로 당하는 경향이 있는거 같습니다. 상당히 재밌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나라) 이들이 거의 유명인에 가깝다는 것이죠. 이들은 가끔 심리학자로 광고되기도 하는데 사실 메인심리학에서 이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99.9%없다고 봐야됩니다. 한국에서의 지젝, 라깡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좌파라서 그런가요? 이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전부터 궁금했던거라 여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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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았읍니다.한국인이면 누구나 보아야할 동영상인듯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생각만말고 고뇌하고 작은것부터 실천하는사람이 되었으면합니다,김상근교수님 강좌도좋아요. 라깡의 대중적인기는 그나마 다행인듯합니다 .정의로움의 갈망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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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쏘칼의 책에 지젝이 언급된 것같지는 않고, 그가 제출된 가짜 논문을 받아들이는데 지젝이 관여한 듯합니다. 촘스키 인터뷰 잘 봤구요. 사회과학을 하시는 토마님은 탈근대주의자들의 비과학적 진술에 민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지젝이 쏘갈의 문제제기와 연결되는 줄은 물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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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에서는 지젝은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었지요. 지적감사드립니다. 예, 제가 라캉과 지젝같은 사람들에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맞는거 같구, 사실 이들이 큰 영향력을 가지는것이 의아하기도 하고 저처럼 철학적 배경이 없는 사람은 혹시 이런것이 지적허영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것도 사실인거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무지에서 기인한 완전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는데, 제 생각을 그냥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현상은 더 인상적입니다. 저는 지젝이 만일 토론토에서 대중강연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이는걸 상상하기 어렵고, 토론토 공항에 기자들이 나가서 인터뷰하고 하는걸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암튼 한국에서의 라캉, 지젝 열풍은 저로서는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지젝은 작년 만델라 장례식이 끝나고 저의 심기를 또 건드렸었지요 (ㅋ). 저는 지젝의 이런 횡설수설이 맘에 안드는 사람중 하나인거 같아요.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3/dec/16/fake-mandela-memorial-interpreter-schizophrenia-sig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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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김에, 예전에 제 친구가 한번 가보라고 해서 가본 한국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하는 학술단체 소개합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라깡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현대 정신분석의 이론과 치료요법을 연구함으로써 철학, 정신의학, 심리학, 문학, 문화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한의학, 언론학, 예술, 영화, 법학, 종교학 등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후략)"
이라고 합니다. 저로서는 목적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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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촘스키의 지젝 발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배경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흔히들 언어학을 현대언어학으로 자리를 잡게 한 사람이 스위스에서 불어를 사용했던 소쉬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소쉬르가 유명해진 것은 그가 한 강의를 제자들이 노트를 했는데, 이것을 비교 재구성해서 나온 것이 [일반언어학 강의]입니다. 소쉬르는 논문은 몇 편 남겼지만 책을 쓴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 동안의 연구는 주로 언어의 어원이나 역사적으로 보는 통시적 이해에 그쳤는데, 언어를 구조적 공시적으로 본 이가 소쉬르가 처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의 사후의 이 강의가 언어의 구조적 이해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제가 판단컨대 구조주의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소쉬르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종교학에서도 초창기 종교의 기원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었는데, 소쉬르 이후 많이 달라졌죠. 이 언어학 강의에서 언어학의 한 가지(a branch)라고 볼 수 있는 기호학 (semiotics; semiology라고 불리기도 함)이 탄생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에서 강독회에서 이 소쉬르의 이 책을 완독했습니다. 당시에 기호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러한 기호학의 발전에서 쏘칼이 비판한 쥴리아 크리스테바, 자끄 라캉, 장 보드리아르 같은 인물들이 이러한 기호학 전통에 있구요. 레비 스토로스나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소쉬르가 제안한 랑그와 빠롤의 개념 대신 competence and performance를 제안하면서 소쉬르를 극복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변형생성문법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니까 이것을 설명하는 일은 언어학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제 짐작으로는 미국쪽으로 유학가는 사람들은 주로 촘스키를 많이 따르는 것같고, 유럽쪽으로는 가는 사람들은 소쉬르를 많이 따라는 것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기호학을 쉽게 대중화시킨 사람은 미국의 김경용교수이고, 기호학을 전파한 사람은 프랑스유학파인 고려대의 김성도 교수입니다. 고대영문과 다니는 제 조카는 김성도 교수한테 미쳐서 기호학한다고 난립니다. 그래서 토마님이 소개하신 Steven Pinker의 [The Blank Slate]와 다른 책을 사 주면서 이런데도 관심을 가져보라고 했는데, 이 아이는Stanislas Dehaene의 [Reading in the Brain: The Science and Evolution of a Human Invention]이 더 끌린다고 하는데, 저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고요. 읽어봐도 제 분야가 아니니 당연히 판단도 못하겠죠.
어쨌든 이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기호학이 발전된 것은 분명하고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기호학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기호학 개론서인 Daniel Chandler의 [Semiotics: The Basics] (Routledge)에서는 참고문헌 뿐만 아니라 아예 인덱스에서도 촘스키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 촘스키의 이론은 기호학에 거의 적용되지 않은가 봅니다. 라캉의 영향을 받는 지젝이 당연히 촘스키와 연관이 없는 것은 사실이구요. 그래서 지젝은 장광설로 유명한 사람같은데, 그를 촘스키가 좋아할리는 거의 확실히 없다고 봅니다.
어떤 연구 대상을 어떤 관점이나 접근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라는 영역은 기호와 상징들의 연속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이해하는데 기호학이 각광을 받는 것같구요. 사회현상을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접근하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를 빠르게 읽고 해석하는데는 기호학이 중심역할을 하니까 지젝 등이 인기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토마님의 경우, 사회과학을 하시니까 지젝이 횡성수설한다고 하실 수 있겠지만, 그가 나름대로 많은 통찰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인기가 있지 않을까요? Jerome Kagan의 [The Three Cultures]에서 이야기 했듯이, 인문학은 사회과학과 다릅니다. 대상이 다를 뿐 아니라 접근법도 다르고, 연구의 범위 한정도 다릅니다. 물론 역사학에서도 통계적 내용이나 다른 사회과학적 접근을 할 수 있겠죠. 이런 방법을 시도한 사람들이 프랑스 아날학파라고 생각되구요. 요즘은 학계도 분업사회다 보니,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을 통섭할 수 있는 학자는 거의 없죠. 괜히 다른 분야 언급해서 깝죽거리다가 쏘칼 같은 사람한테 쏘가리 칼 맞기 십상이죠. 사회과학하는 사람들이 역사학에 발을 잘 못내디면, 또 비판받을 수 있고요. 아무리 훌륭한 사회과학자도 역사학자들만큼 일차자료나 언어구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겠죠. 또 컨트롤하기 힘든 역사적 자료를 사회과학적 이론을 적용하다가 환원주의라고 욕먹기 쉽고요. 맑스의 유물사관이 그 고전적 예가 아닐까요?
어쨌든 인문학하는 사람들이 사회과학에 관심갖는 것은 그냥 “읽기”에 그치는 것과 다를게 없죠. 제가 지젝에 훅갔던 것은 캘거리의 어느 강연에서 강연자가 지젝의 master signifiers (주인기표; 시니피앙)를 소개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것은 순수 기호학적 개념이구요. 혹시 이 개념이 제 생각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그의 책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도 사둔 것이죠. 개념들은 이론으로 미치지는 못하지만, 현상을 이해하는 굉장한 도구고, 이런 은유는 인문학에서 중요한 열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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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은 전혀 몰라서 할말은 없지만, 촘스키의 업적은 (따지고 보면 촘스키도 모르는거지만.) 수순한 경험과학영역에 떨어진다고 볼 수 있으니까 (즉 경험적 검증가능) 아마 촘스키가 라캉, 데리다, 지젝이랑 할말이 별로 없는건 이상하지 않다고 봐야할것입니다. 라캉과는 자주 만났다고 하고 그레서 그런지 그렇게 심하게 비판을 하지는 않은거 같지만 라캉의 말중에 검증가능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으니 자기가 왈가왈부한 이야기를 할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는 말을 한적은 있는거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전혀 다른 두 영역의 사람들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학, 종교학, 사회학, 문학등의 인문학은 읽는것도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몇몇 대학에서 이들 분야를 없애거나 축소하려고 하는걸 극도로 반대하는 편입니다 (일차자료에 대한 발굴/재해석등은 상당히 흥분되는 분야인것 같기도 하구요) .
아마 제가 라캉, 데리다, 지젝등의 팬이 아닌 이유는 이사람들의 글쓰기가 너무 현학적이고(제기준에), 남들이 안쓰는 말들을 만들어 쓰는 이상한 문화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도킨스글에서 나온말입니다. 다음 단락중 하나는 프랑스의 지성이라는 구아타리가 쓴글이고 다른 하나는 호주의 전산학자가 이들 지성을 놀리기 위해 만든 randomly generated 된 text입니다. 이 전산학자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이런 단락을 순식간에 무한정으로 만들어주죠. 두단락중 무엇이 진짜 철학자에 의해 쓰였다는걸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1) If one examines capitalist theory, one is faced with a choice: either reject neotextual materialism or conclude that society has objective value. If dialectic desituationism holds, we have to choose between Habermasian discourse and the subtextual paradigm of context. It could be said that the subject is contextualised into a textual nationalism that includes truth as a reality. In a sense, the premise of the subtextual paradigm of context states that reality comes from the collective unconscious.
(2) We can clearly see that there is no bi-univocal correspondence between linear signifying links or archi-writing, depending on the author, and this multireferential, multi-dimensional machinic catalysis. The symmetry of scale, the transversality, the pathic non-discursive character of their expansion: all these dimensions remove us from the logic of the excluded middle and reinforce us in our dismissal of the ontological binarism we criticised previ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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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토마님,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을 떠난 이해로 10여년동안 탈근대주의자들의 책을 단 한권도 안봤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이들의 책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과 이들의 개념을 나름대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떠날 때, 제 친구들이 들뢰즈, 가타리 등을 열정적으로 언급했을 때도 저는 안봤으니까 꿀먹은 벙어리였죠. 저는 철학에는 잘 모르고 개인적으로 은유론과 상징론, 그리고 신화론 등에 관심을 가져서 기호학에 좀 발을 담그려 했었는데 이것도 10여년 동안 관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여즘 외로워서 그런지 이 쪽이 좀 땡기네요.
제가 은유론에 결정적으로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에도 언급했던 George Lafoff의 [The Political Mind]를 읽고 나면서부터였습니다. 레이코프가 촘스키를 비판한 곳은 이 책의 제 18장 Language in the New Enlightenment입니다. 여기에서 레이코프는 촘스키가 컴퓨테이션에만 관심이 있어서 현대의 인지과학적 연구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토마님도 시간나면 한 번보시구요. 촘스키의 이론이 영원할 수는 없겠죠. 어쨌든 기호학의 기본은 해석이죠.
춈스키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언어의 인지적 능력에 대해서는 레이코프의 [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 What Categories Reveal about the Mind]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 좀 읽어보니 재밌기도 하지만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 쪽에도 잘 모르죠.
그리고 토마님께서 인문학을 따뜻하게 관심을 가져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인문학의 꽃인 역사학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지만 모든 자료는 이미 해석된 자료이고 인과성을 연결하는데는 최소한 허구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안그러면 아날학파처럼 정말 재미없는 역사학이 되어 버리죠.
위에 인용된 것 보니까 카프라라는 사람이 말했었는데, 현대물리학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하고 고대 인도철학자들이 쓴 것중에 어느 것이 현대물리학자가 쓴 거냐고 물었는데 대부분 반대로 대답했다는 말이 기억나는군요. 실은 뭐, 제가 아는 게 뭐 있나요? ^^
그리고 티모디 윌슨의 Strangers to Ourselves: Discovering the Adaptive Unconscious의 앞부분을 심심풀이로 좀 읽었는데 재밌네요. 전에 Redirect: The Surprising New Science of Psychological Change를 재밌게 읽어서요. 언제 토마님의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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