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캐나다에 살면서 불편한 점이 딱 하나가 있는데, 한글책을 읽고 싶을 때 구해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한글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지만 발송비가 워낙 비싸서 구입하기는 거의 힘들죠.
얼마전 어떤 분으로부터 이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을 빌려서 보고 있습니다. 1970년대 전반기에 쓴 글들인데 일본, 중국, 베트남에 대한 비평적 글들은 4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조금도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전쟁은 남북 당사자의 전쟁이지만, 결국 동북아의 정치적 지형과 국제 관계의 변화를 반영할 수 밖에 없는데, 이영희 선생은 이미 그 때 그런 통찰력과 지식을 갖고 한국 정부가 어떻게 국제관계에 대해서 유연하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마오의 혁명과 장제스 정권의 부패의 연관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 책은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고, 마오의 농민혁명을 스탈린정권이 어떻게 이단시 하고 오히려 장제스를 지지했느냐 하는 내용은 참 새로왔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갈등의 원인을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 얻은 것이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베트남이 저렇게 동족상잔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한국전쟁은 냉전의 시발점이지만 베트남전쟁은 동서냉전이 만개되면서 온 소이연이라는 측면에서 국제관계가 갈등의 당사자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글의 제목을 "미국의 이영희 촘스키"라고 한 것은 이영희 선생이 미국에서 나셨다면 촘스키에 버금가는 사회비평가가 되셨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이 안된 상태에서 책만 내면 금서를 만들어 버리고 감옥에 잡아넣는 독재 정권 아래서는 연구는커녕 양심적인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시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을 들라면 단연 시인 김수영님인데, 이분이 항상 갈망한 것이 권력의 감시를 받지 않고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은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수영 시인도 감옥에 자주 드나들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은 어쩔 수 없이 흐르고, 통일을 보지 못하고 이영희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 선생만 남았나요?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정치 지형을 간파하는 노학자의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정치학자 새무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보면서 아무리 정치학자라고 하지만 전세계의 정치 역학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정치학자가 아닌 언어학자이면서도 사회비평의 대가로 활동하는 촘스키는 참 대단합니다. 본인이 유태계이면서도 팔레스틴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서 객관적 비평을 하는 모습은 참 멋집니다. 만일 촘스키 선생이 한국계이고 남한 정부를 비판했다면 거의 100 % 뽈갱이라는 낙인을 받을 것입니다.
이 촘스키 선생의 생각을 경향신문에서 담았군요. 한 번 보세요.
요즘 경향신문은 참 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놈 손가락" 기획이나 논설 및 칼럼을 보면 붓끝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고 한겨레는 많이 무뎌진듯한 느낌입니다. 몸이 노쇠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노쇠하는 것이 문제고 또 열정이 사라지면 이렇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번 어떤 분이 일본의 망언망동을 보면서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참 위험한 발상입니다. 촘스키 선생의 붓끝은 날카롭게 살아있지만 이분이 지향하는 것은 온 세상이 전쟁없이 평화적 관계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조선을 살살 대하자는 것도 북조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는 물론 한반도에 핵전쟁이나 동족 갈등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스티븐 핑커라는 진화론적 심리학자는 세상이 그동안 폭력과 전쟁에서 평화로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족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폭력과 전쟁은 공멸한다는 인식의 발전으로 볼 수 있구요. 옛날에도 "평화"의 개념이 있었지만, 전 인류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된다고 하는 협상과 합의는 20세기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두꺼워서 많이 읽히지도 않고 저도 완독할 것같지는 않지만 책 소개 하나 하고 잡담을 마치겠습니다.
Steven Pinker, The Better Angle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 (New York: Viking, 2011).
제가 이 책을 완독하기 힘들다는 이유는 800면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현재 1차 관심분야도 아니구요. 이 책의 서론만 보았는데 유사이전이나 이래로 쭉 훓어보니 폭력이 증가보다는 줄어들었다는 것을 많은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폭력보다는 평화를 향한 인류의 노력이 상당히 진척되어 왔다는 것이죠. 저는 잘 모르지만 긴가민가 하는 정도고 100% 동의를 하긴 힘들 것같습니다. 인간말종들과 말종권력이 여전히 많으니까요. 그리고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분이 종교 부분을 다룬 면을 보니 아주 얇다는 겁니다. 책 읽을 때, 각주 체크 하면 저자가 무슨 자료를 읽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이 부분은 약간 실망스럽습니다. 다른 분야의 학자니까 그렇다 치면 상관이 없지만요.
그래도 인류가 파괴로 향하는 묵시론적 시대로 접어 든 것이 아니라 평화의 천년왕국으로 입성했다고 하니까 안심은 됩니다. 제발 일본의 극우나 한국의 극우가 득세하는 세상이 안오면 좋겠다는 꿈은 그냥 꿈인가여?
*저는 핑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책만 두세권 사놨습니다. 자주 언급해서 그냥 TM님 소개로 알게 되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 챕터스에서 가격표가 8불에 붙어있지만 실제로는 5불에 팔고 있습니다. crowfoot chapters에 여러 권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