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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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딩기어 내려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착륙할 모양이다. 승객들은 대부분 독서등을 끈 채 잠에 떨어져 있다.
“착륙합니다.객실 승무원 착석해 주세요”
선윙에어 696 편 전세기는 '후안 구엘베르또 고메즈' 국제공항 활주로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쿠바 본섬 서북쪽에 안테나처럼 가늘고 길쭉하게 뻗어있는 이까꼬스 반도...... 바로 여기에 리조트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보통 바라데로라고 부른다. ‘혁명수도’ 아바나로부터 동쪽으로 약 140km 떨어져 있다.
마침내 비행기 뒷바퀴가 ‘쿵’ 하고 활주로에 착지했다.
“쿠바다 !”
작년 봄, 느닷없이 고조됐던 北-美간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평양-신의주 기차여행 (1000 유로 + 항공)을 포기하고나서 대안으로 구상한 것이 쿠바 여행이었다. 그 때는 결국 북코리아도 쿠바도 아닌 다른 곳에 갔었다. 그때로부터 10 개월이 지나서야 드디어 쿠바에 도착한 것이다.
어촌마을 부근에 위치한 작은 시골공항은 캐나다 각 도시에서 날아 온 비행기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선윙에어 전세기들이었다. 에어캐나다 정규노선 비행기도 눈에 띄였다. 토론토와 몬트리얼에서 출발하는 정규항공인 쿠바나항공이나 에어캐나다를 타면 대개 아바나 호세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하게 되지만, 캐나다 24개 도시에서 출발하는 직항전세기 선윙에어를 이용하면 리조트 타운 바라데로를 비롯해 쿠바 12 개 도시로 직접 날아갈 수 있다.
아바나 대신 바라데로에 도착하는 여정을 선택한 건 순전히 편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은 언제나 아바나로 달려가곤 했다. 바라데로에서는 먹고 마시고 춤추고 수영하고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거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출발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밤, 웬 긴머리 여인이 꿈에 나타났다. 40 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여인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커다란 두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봤다. 그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바라데로의 저녁노을을 감상하지 못하고 저승으로 돌아간다면 지구에 여행오신 보람이 없어요.”
긴머리 여인은 자신을 가리켜 석양의 여신 (goddess of setting sun)이라고 소개했다. 꿈치고는 너무나 생생해서 머리털이 쭈뼛 곤두설 정도로 놀랐었다.여신은 모두 하얀 원피스를 입은 20 대 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여신은 중년인데다 크림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다는 것도 기이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그때까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바라데로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스스로 질문을 하고 새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리조트타운에 대한 편견만으로 바라데로를 과소평가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 편견이란 정보의 부족이나 불균형,즉 무식에서 나오는 엉터리 믿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바라데로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니고 있는 반도(peninsula)였다. 길이가 20 km 에 달하는데 비해 평균 폭은 고작 5 백 여 미터에 불과한 skinny peninsula(가느다란 반도) 였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이 반도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양쪽으로 바다가 보인다는 의미였다. 반도의 서해안에서 출발하면 보통걸음으로 7 분 30 초 만에 동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까꼬스 반도해안은 투명한 물빛을 지니고 있는 환상의 바다들 중 하나였다. 매혹적인 바다는 쿠바 본섬 북쪽으로 길게 퍼져 있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그가 끝까지 쿠바를 떠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바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쿠바의 북쪽바다는 대서양이고 남쪽바다는 Caribbean Sea 다.
1959년, 미국인들에 대한 본국 정부의 소개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동안 쿠바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쿠바혁명정부가 외국인재산 (대부분이 미국인재산) 몰수조치를 시행하고 나서야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났다. 1960 년 7 월의 일이었다.
그가 쿠바를 떠난 지 10 개월 후인 1961 년 5 월, 쿠바와 미국은 공식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쿠바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1961 년 7 월,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자살로 그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쿠바를 떠난 지 1 년, 그리고 쿠바와 미국이 외교단절을 선언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떠 오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혹시 사자꿈을 꾸고 있는 산티아고 노인'이 아니었을까?
쿠바 북쪽 바다는 기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다는 거칠면서도 투명했다. 멀어질수록 쪽빛으로 진하게 변해가는 바다 저 편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만큼 아름다웠다. 그 쿠바 북쪽 바다 중에서도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곳이 바라데로 해안이었다.
싸르니아는 그 바다에게 the tempter of suicide (자살의 유혹자)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나도 바다 저 편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까 하는 강렬한 유혹이 내 가슴을 뒤흔들었다.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얀 모래가 너무 고와 마치 밀가루 위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어느 고급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 간 곳은 카사데알 이라는 이름을 가진 멋진 석조건물이었다. 1923 년 지어진 이 석조건물은 미국의 형님재벌 알 카포네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기도 했다.
해변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이름이 붙은 알 카포네 랍스터 정식을 주문했다. 웨이터에게 식사를 가져오기 전에 아바나클럽 7 년산으로 만든 모히또 한 잔을 먼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알 카포네 별장에서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모히또를 홀짝거리고 있자니 여러가지 상념들이 떠 올랐다. 두 사람은 각각 작가와 건달로 직업이 전혀 다르긴 했지만 공통점도 많았다는 생각도 했다. 우연인지 두 사람은 1899 년 생 동갑내기였다. 전투와 모험을 좋아하는 승부사 기질이 남달랐다는 것도 비슷했다.
쿠바에서의 첫 날은 무엇에 홀린듯 하루종일 바다만 바라보면서 지냈다. 폭이 좁은 특이한 반도의 동쪽 바다에서 태양이 떠 오를때부터 서쪽 바다로 노을이 퍼질때까지, 내내 그 바다 곁에 붙어서 먹거나 마시거나 무언가를 읽었다.
난 원래 바다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바다에 가면 에너지를 빼앗기는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알 카포네의 바라데로 별장 (지금은 Casa De Al 레스토랑)
꿈에 나타난 트렌치코트 아줌마의 말이 헛소리는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