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rer My God To Thee’ 는,,,,,,
1912 년 4 월 15 일 새벽 타이타닉 오키스트라가
이 배의 마지막 구명정이 내려지는 순간까지 연주했던 곡이다.
네 명의 오키스트라 연주자들은
구명정에 타지못한 1, 500 여 명의 승객, 승무원들과 함께
그날 밤 운명을 같이 했다.
카타르 도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알자지라 방송은 한국을 가리켜 “리더쉽이 실종된 나라” 라고 맹렬하게 비난했다. 미국 NBC 는 “저 나라에는 ‘Crisis (or safety) Management Manual’ 이 없는 것 같다” 는 멘트를 내 보냈다. 이 두 외신 앵커의 멘트는 국내언론에도 보도됐다. 캐나다 일간지 Globe & Mail 은 이 사건을 연일 머릿기사로 내 보내며, 사고 초기 약 두 시간이나 되는 탈출 및 구조 기회를 놓친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이 사건이 puzzles, 수수께끼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반응이다.
사람들이 가장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목이 있다. 어른들은 대부분 구조되고 아이들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에 도사리고 있는 추악하고도 위험한 이 나라의 ‘사회상’ 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가 알다시피, 이 배의 운항직 승무원들은 15 명 전원이 사고가 나자마자 가장 먼저 탈출해서 100 퍼센트의 생존율을 보인 반면, 단원고 학생승객의 경우 325 명 중 248 명,즉 76.3 퍼센트가 사망했거나 여전히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
이 대목은 단순히 구조통계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 이상의 비극적인 의미가 있다. 이 배의 운항직 승무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성인승객들이 두 시간 이상 주어진 골든타임동안 해난사고 매뉴얼을 지키지도 않았고, (성인승객들의 경우) 안내방송에 따르지도 않았다.(물론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이 안내방송은 해난사고역사에 미스테리로 기록될만큼 잘못된 것이긴 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판단하여 행동했다. 그들 중 운항승무원들은 절차와 규졍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Work Ethic 도 무시했다. 그 결과 그들은 살아남았다.
반면 아이들은 안내방송에 따라 선실 안에 머물렀다. 즉 학교에서 배운대로 시스템을 신뢰하면서authorized 된 권위를 존중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면서 자기들의 본능적인 판단에 따른 행동을 유보한 것이다.
아이들이 시스템에 대해 존중과 복종을 보인 댓가는 참담한 배신으로 되돌아왔다. 시스템과 공인된 권위에 복종하고 따른 아이들이 되돌려받은 철저한 배신은 당사국인 한국인들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중인 이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만일 이런 일이 신생후진국에서 발생했다면 별로 충격이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나라가 OECD 회원국 이며,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보편적 상식이 작동하는 것 처럼 보였던 나라라는데 많은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세계의 문명국들은 적어도 자기들과 비슷한 보편적 가치와 문명수준을 공유하고 있는 줄 알았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데 대해 배신감 비슷한 느낌과 함께 일종의 공포심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약간 과장해서 비유하면,,, 이것은 마치 르완다같은 나라에서 학살이 일어났을 때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감을 가지고 사태를 관조할 수 있는데 비해, 일본이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훨씬 크게 놀랄 수 있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선장이 선장이 아닌 척하고 구호소에서 담요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며 물에 젖은 5 만 원 짜리 지폐를 말리고 있는 동안에도,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생사조차 모른 채 차가운 바닥에서 떨고 있는 그 현장에 교육부장관이란 자가 나타나 혼자 팔걸이의자에 떡하니 앉아 컵라면을 처먹고 있는 동안에도, 안전행정부 국장급 감사관이라는 자가 사망자 명단이 걸려있는 상황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들켜 봉변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도, 대통령이라는 자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사고수습책임자를 회의실에 붙잡아놓고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왜 구조를 못하고 있는건가요” 라고 쓸데없는 머저리같은 질문이나 하며 시간낭비를 하는 동안에도,,,,,,, 240 여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포함한, 실종자들은 여전히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었다.
외신보도들이 내비치고 있는 분노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한국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잘못 봤다” 는 배신감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사실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이라는 ‘natural 한 나라” 를 삼성전자라든가 현대차같은 아주 예외적인 글로벌기업의 commercial image 와 혼동하는 일이 많았다.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는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일종의 위기의식” 은 한 사회의 신뢰체계를 한순간에 붕괴시킬 수도 있는 ,, 지난 6 일간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인 '저 말도 안되는 코리아 공포극'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 분노와 불안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공분일 것이다.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실종자들이......생존해 계시기를 바란다.
2014.4 20 14:05 (M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