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IMF 위기가 왔을 때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서 자가용 통근자 주차비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새해부터 외부버스회사에 의뢰하여 통근차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휴가 들어가기 전에 노선표를 확인해 두었다가 연휴 동안에 집에서 가까운 탑승위치를 정해 놓았다.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아침 7시5분, 미리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버스회사 이름을 확인하고 올라탔다.
통근버스를 처음 타는 거라서 평소에 얼굴이 익은 사람도 없었다. 버스가 서울역 앞을 지나더니 여의도 쪽으로 가지 않고 갑자기 유턴을 해서는 대우빌딩앞에 턱 세웠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 차 여의도 안 갑니까?”
“더 이상 안 갑니다….”
“아니…같은시간 같은장소 같은회사 버스인대…왜 안 가죠”
그 제야 버스 기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여의도 행 버스는 창문 앞에 ‘여의도’ 라고 써 붙여 놨어요……”
그러고 보니 이 차는 아무것도 안 붙어 있었다. 이런 것 까지는 회사도 몰랐다.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여의도’ 붙은 버스를 기다렸다.
정확히 시간 맞추어서 버스가 도착했다. 아무것도 안 붙어 있다.
‘아…대우빌딩 가는 것…’ 혼자 생각하고 안 올라탓다.
약 1분후 똑 같은 버스가 왔다.
그런데…엥??? 이번에도 아무것도 안 붙어 있다.
기사에게 물었다. “여의도 갑니까”
“여의도 행은 먼저 갔어요……”
“Oh Shoot…왜 매뉴얼 대로 안 하냐고….” 아까운 택시비만 이틀 연달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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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면서 매뉴얼 대로 될 것이라고 기대하다가는 나처럼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일일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손해를 안 본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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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에서 정말 안타까운 해양사고가 났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인해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그 춥고 무섭고 고통 서러운 바닷물 속에서 울부짖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지옥이 따로 있을까?
매스컴의 내용을 보면 해양경찰을 포함한 정부기관, 안전감시기관, 선사, 승무원 들까지 제대로 안전수칙에 대해서 숙지하고 매뉴얼 대로 행동하는 조직이나 인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기자의 확인 실수나 시각차이로 인한 오보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오랫동안 겪은 조직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대체로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할까?
이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그 모든 사고원인의 연쇄고리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안전점검을 끝까지 수행하진 않은 기관, 타성에 빠져서 무의식적으로 안전운행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 비상구조 매뉴얼을 숙지하고 집행하지 않은 승무원들…그들이 비난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랬을까? 그들도 이런 사고만 안 났더라면 하나 같이 어떤 집의 귀한 가장이고, 아들이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고 자랑스러운 아빠고 남편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캘거리 에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 몇 명쯤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그런 행동 밖에 할 수 없도록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한국사회의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집 남편이 직장에서 돈을 잘 벌어오면 그게 어떤 성격의 돈인지 따지지 않고 우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이 된다. 정해진 월급만 꼭꼭 받아오는 사람은 요령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좋은 게 좋은 것, 알아서 기는 것, 실력보다는 인간관계, 서로 봐 주기, 남 보다 내가 우선, 투기문화, 접대문화, 성적 위주의 지나친 경쟁교육….이런 모든 것들이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 도덕불감증 및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런 비극적 사건을 일으키고 또 세월이 지나면 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는 행동은 몇 번의 정신교육, 규정 매뉴얼 또는 벽에 붙은 선언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온 도덕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베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 자신도 이런 대한민국의 잘 못된 사회분위기 조성에 일조를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직장에서 주어진 권한을 잘 못 사용한 점, 남 보다 빨리 갈려고 막혀있는 파란 불 에서 사거리 진입한 것, 친구가 아파트 놀이 잘 하는 것 배 아파한 것 등등 극악무도한 주범은 아니지만 새끼공범 혐의는 벗을 수 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때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들 그랬으니까....
캐나다 이민 와서도 매뉴얼 대로 못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민초기 약 2년간 간단한 사업을 하면서 세금을 아끼려고 애쓴 적도 있었다(‘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했더니 사업을 접게 되었고 지금은 시험이 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지금도 스피드 티켓은 2~3년에 한번 정도 받아서 집에 온다. 비행기 타면서 이륙 전에 안전수칙 설명은 아예 쳐다 도 안보고, 통근버스에서 안전벨트는 메었다가 안 메었다가 한다.
그러면서도 캐나다식 사회질서에 점점 맞추어 갈려고 애쓰는 것은 내가 갑자기 끝내주는 교육을 받거나 법률이 대단히 무서워서가 아니고 전체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렇게 행동 하지 않는데 나만 그렇게 행동할 필요도 없고 했다간 나 혼자 바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바뀌려면 우리 하나하나 개인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모두들 안전 매뉴얼을 안 지켰다고 성토하기에 바쁘다. 사고가 나면 사고관련자를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손가락이 굽혀져 나를 향하기 전에는, 그래서 내가 바뀌고 또한 한국사회 전체가 바뀌기 전에는 이번 같은 안전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 이라고 본다.
해야 할 것을 안 하는 것, 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이들 모두가 매뉴얼 대로 안 하는 것이다. 안전보다 더 중요한 인생살이는 아예 매뉴얼이 없다. 왜냐하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문제야 평생 사고가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세월이 가면 앞날이 뻔히 보이는 일에도 매뉴얼대로 안하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번 기회에 나는 과연 얼마나 매뉴얼 잘 지키고 사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