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처럼 흑막이 오리무중인 사건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환생한다해도 역추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건 디테일과 등장인물들의 상관관계가 복잡하다.
강제낙루를 하면서까지 대통령이 사과담화를 발표해야 했을만큼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과할 줄도 모르고 눈물도 흘릴 줄 모르는 비정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에 열이 뻗쳐 그런 담화를 발표했을까? 과연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였을까?
여기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움직이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싸르니아가 추정하고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결정적인 증거들을 인멸하여 영원히 진상을 은폐하겠다는 남코리아 엘리트집단의 의중을 만방에 알린 반격 신호탄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비록 눈물연기와 관료권력과의 싸움선포 뒤에 가려지긴 했지만, 해경해체라는 표현 안에 증거인멸의도의 단서가 일찌감치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국정조사고 특검이고 나발이고, 아무래도 이 사건의 진상은 한국국민들 스스로 규명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선박사고의 진상을 추적하는 가장 유능한 전문가들은 물론 국제해상보험자본들이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사고조사팀이다. 문제는 이 참사가 해상사고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사건으로 확대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정치적 사건도 아니고 ROK의 엘리트 집단 전체의 악마성이 총체적으로 농축되어 그 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낸 세계사적 비극이라는게 이 사건의 핵심포인트다.
세계는 당사자인 한국국민들이 어떻게 이 사태의 진상을 파헤쳐 지난 69 년 동안 누적되어 온 부패먹이사슬의 뿌리와 줄기를 제거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리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태로 말미암아 백일하에 드러난 엘리트 부패먹이사슬,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는 한국국민들의 투쟁과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1789 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을 바라보았던 세계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건이 단순하지가 않고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다. 세상에 이렇게 이상하고 복잡한 사건이 또 있을까 싶다.
그 날 새벽, 선원들은 무엇을 숨기기 위해 항해도중 세 차례나 수동으로 AIS 를 off 해야 했을까?
선박운항의 가장 중요한 핵심정보를 가지고 있는 일등항해사가 구조직후 며칠 간 사라졌다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며, 그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한 것일까?
최초의 본선-진도 VTS 간의 교신기록을 식제편집하고, 선장을 하룻동안 은닉한 장소의 CCTV 를 삭제하고, 해군참모총장의 수상구조함 출동명령을 취소시키게 할만한 권력을 동시다발로 보유하고 있는 인물 또는 세력은 누구일까?
사고 초기 해군참모총장은 ATS-31통영수상구조함 (보통 통영함이라고 불림) 출동명령을 내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명령은 외부 압력에 의해 취소가 됐다. 취소 이유도 명령자인 해참총장이 직접 "진수만 했지 성능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고 스스로 달게 했다.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취소시킬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두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합참의장이다.
근데 여기에는 더 위중한 의혹이 있다.
4 월 16 일, 운명의 그 날
초기구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부대는 사실 ATS-31 수상구조함이 아니라 제 3 함대 사령부였다. 해군 제 3 함대는 사고해역에서 불과 75 km 떨어진 목포해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실전부대다. 해군작전사령부의 지휘를 받고 있으며 전투, 구조, 구난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함대 사령관은 해사 37 기 출신이며 계급은 소장이다.
이 부대 예하에는 31 구축함 전대, 32 초계함 전대, 33 고속정 전대, 항공전대와 제주방어사령부가 있는데, 이 중 구축함전대와 고속정전대는 세월호의 균형 및 부력유지와 인명구조활동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부대였다. 해군 함대 사령부는 잠수요원들을 해저에 침몰한 선체까지 수송할 수 있는 잠수정들도 보유하고 있다.
해상사고 전문가들이 왜 이 부대가 출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동안 국내제도언론은 제 3 함대의 역할과 그 날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에 대해 단 한 줄도 보도한 적이 없다.
과연 어떤 세력이 사고초기 현장에서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실전부대에 대한 출동명령을 저지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그 세력은 그 날 오전 사고해역에 접근하고 있던 USS 본험 리처드 강습상륙함과 그 상륙함에서 구명보트를 탑재하고 사고현장을 향해 긴급발진했던 두 대의 MH-60 헬기를 되돌려 보낸 장본인들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도 그 세력은 외교부로 하여금 “한국군과 해경의 구조헬기들이 다수 운영되고 있는 환경에서 미군헬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려 보냈다”는 거짓말을 하게 한 사람들이기도 할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대로 그 시간대에 사고해역에서는 어떤 구조활동도 실시된 적이 없다.
구조활동이 실시되기는 커녕 해경 경비정이 구조활동의사를 타진하는 다른 선박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기상천외한 이상행동만을 하고 있었다. 그게 어느 민간구난업체에 독점적 선박인양권을 부여하기 위해 벌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학살극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근데 그 날 현장에 최초로 파견되었던 해경이 이상행동을 한 이유가 그게 전부였을까?
그것만이 아니라는 증거가 또 속속 드러나고 있다.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은 현장에 파견된 경비정에게 침몰중인 세월호에 직접 승선에서 승객탈출을 유도하라는 정확하고 올바른 명령을 하달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밝혀졌다.
놀랍게도 현장에 파견된 경비정은 그 지시에 전혀 따르지 않았다.경사가 심해 승선이 불가능하다는 거짓보고를 날리고는 사전비밀교신을 통해 복장교체를 지시받은 것으로 보이는 선원들을 배에서 탈출시키는데만 전력을 기울였다. 본선의 고급선원으로부터 최초로 사고보고를 받은 기관은 놀랍게도 국가정보원이었다.
그들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 왜 결정적인 증거들은 끊임없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미처 사라지지 않은 단서들은 한참 나중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참사의 중간고리에 위치해 있는 유병언 일가를 철저하게 비호, 은닉하면서 사건자체를 영원히 묻어버리려고 시도하고 있을까? “유병언이 잡히면 나도 죽는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그런 일을 수행할만한 파워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본론’ 이야기들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말을 아꼈던 이유는,,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들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협조하고,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면서 참사의 전말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놈들은 벌써 해저에 누워있는 선체를 조각내서 초기증거부터 인멸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모양인데, 시민단체들은 유가족들과 협조해서 우선 선체에 대한 증거보전신청부터 법원에 제출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진 채 그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데, 세월호 참사마저 미궁에 빠져 버린다면 ROK는 너무 슬픈 나라가 된다.
참사로 희생되신 304분 (더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진실이 완벽하게 밝혀지고 새롭게 변화한 정의로운 나라에서 다시 부활하시기를……
2014. 05.25 15:50 (M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