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전쟁을 선포한 어느 아빠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와 별로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아빠 이야기부터 하고 가자. (지난 번부터 하고 싶었는데 할 기회가 없었다.)
정군 (미성년자이므로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망언사건이 났을 때 그의 아버지 정몽준 후보는 교묘하게 아들의 인격을 깎아내리면서 위기를 돌파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아들이 대학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이며 늦둥이 막내로 철이 없음’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하게 자식의 잘못을 아버지가 대신 사과한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과연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발언 내용 자체에 내심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으되, 그는 아들의 발언 내용 자체에는 내심 별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그라고 해서 정군의 발언을 비호했던 많은 보수논객들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부인 말마따나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소재를 언급’하는 바람에 표를 무더기로 깎아먹은 것에 울화통이 치민 나머지 ‘대학입시에 실패한 재수생’ 운운하며 공개모욕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을것이다.
그가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말 했어야 했다.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지금 제 아들이 한 말에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개인으로서는 참담한 마음을 가누기 어렵지만,,제가 너무 바빠서 제 아들과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대해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한 처지에, 제 아들을 대신해 무슨 사과를한다는 것도 염치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단지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제 아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공개사과를 하는 것은 그 아이의 권리와 인격을 무시하는 또 하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서울시민 여러분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후보를 사퇴하라시면 사퇴하겠습니다”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엄연한 독립인격인 아들의 사적정보를 공개하고 그의 발언을 대신 사과하려면 아들의 동의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는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 집에 들어가 일방적으로 야단을 치곤 부랴부랴 비서들에게 기자회견문의 초안을 건네주었을 게 거의 분명하다. 서울시장 후보자리를 방어하기 위해 아들을 향해 가부장적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정군 발언의 잘잘못 여부와는 별도로, 정몽준 씨의 행동과 그런 행동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부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아주 이해하기가 어렵다.
캔디 고 vs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어떨까?
이 사람 이름을 얼마 전 다시 들은 것은 어느 미치광이같은 목사의 망언 (가난한 아이들이 경주 불국사나 가지,,,운운 발언) 때문이었다. 내가 저 이름을 아는데 누구더라,, 하고 검색했더니,, 오 마이 갓 !! 1999 년 ‘썩은 피 철새’ 로 찍혀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박태준 사위 그 고승덕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의 딸 캔디 고 씨 처럼 나도 뉴스를 보고서야 그가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절초풍 할 뻔 했다.
그가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방금 다 읽었다.
프로 구라꾼답게 회견문은 미사여구로 꾸며져 있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하고도 간단했다.
그의 딸 캔디 고 씨가 외가인 박태준 가문의 사주를 받고 경쟁후보인 문용린 진영과 결탁하여 자기를 매장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을 펴고 있는 ‘의혹이 짙다’ 는 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골자였다.
원래부터 전 장인인 고 박태준씨와 그 가문은 평범한 집안의 수재일 뿐인 자기를 사람취급하지 않았으며, 고승덕 자신은 고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 자녀들을 한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어 했는데, 명문가의 딸인 자기 아내 (전 부인)가 한국을 후진국 취급하며 귀국을 반대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자기 혼자 귀국하여 평범한 (이 단어가 중요하다) 여기자와 재혼했다는 라이프스토리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다. (갑자기 내가 어린 시절 시내버스에서 종종 보곤했던 상이용사 껌장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상대후보 문용린과 결탁하여 자기를 죽이기위한 공작의 중심에 스물 입골 살 짜리 자기 딸이 있고, 그 배후에는 김대중 정부시절 국무총리와 교육부장관으로 서로 친분이 있는 천처 집안 박태준 가문과 문용린 후보가 있다고 세상에 광고를 한 셈이다.
상대후보 문용린 씨는 고승덕 씨의 기자회견이 나오기 전, 고 씨 부녀를 싸잡아 패륜뷰녀로 몰아세웠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고 후보가 문 후보를 향해 딸을 이용해 아버지를 공격하게 하는 패륜후보라고 공격할 차례다. 6.4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의 키워드는 '패륜전쟁' 인 셈이다.
세상 꼬라지 하고는......
싸르니아는 개인적으로 정몽준 후보의 아들발언 자체와 고승덕 후보의 사적인 가정사 자체는 그의 후보자질과 관계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들은 후보자리와 표를 지키려고 아들과 딸을 무참하게 짖밟았다.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문용린 후보는 고승덕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의심하고 있는대로 고 후보의 전처 가문과 접촉이 있었는지 여부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등장하고나서부터는 봄마다 난생 처음 보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happy father's day, any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