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무엇인가 남아 있다 삐에르 르베르디 찢어진 커튼이 흔들린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은 손 위로 흐른다 창문으로 들어와 나가고 소멸되려고 어디로든 간다 음울한 강풍이 모든 것을 실어 간다 말은 회오리바람 타고 올라갔는데 그들은 말문이 막혔었다 다시 만나지 못하는데 절망한 연인들 그들은 기도를 하며 제각기 자기 쪽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바람 그들을 갈라놓는 바람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빈 집이 운다 벽난로들이 복도에서 울부짖는다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하는 떠난 사람들의 우수 영혼 없는 집의 벽난로가 겨울 저녁을 애도한다 그들은 더 멀리 간다 더디게 저녁이 온다 벽은 기다리기에 지치고 바람 한가운데 텅 빈 집이 잠든다 위에서 때때로 종종 걸음치는 발소리 Pierre Reverdy (1889 ~ 1960) 프랑스 나르본느(Narbonne) 출생, 솔렘(Solesmes)에서 생을 마감했다. 뚤루즈와 나르본느에서 중등 교육을 받은 후 1910년부터 16년 동안 파리에서 생활했고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스위스, 영국 등을 여행했다. 피카소(Picasso), 브라크(Braque), 마티스(Matis) 등은 그때 사귄 친구들이다. 주요작품으로 타원형 天窓(La Lucarne orale), 하늘의 표류물(Les epaves du ciel), 지붕의 슬레이트(Les ardoises du toit), 잠든 기타 등이 있다. 이미지의 지극한 절제를 통해 일구어 내는 단조로움의 미학세계가 돋보이는 시인이다. 그는 현실과 대상의 내면 속에 감추어진 실상을 탐구, 표현함으로써 세계와 우리의 체험이 갖는 본질적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불안한 색조의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시세계를 통해 감추어진 본질의 세계를 제시하는 그만의 독특함이 있다. --------------------------------- <생각 & 감상> 어느 날인가 쓸쓸한 집에 돌아와 불을 켜고, 양말을 벗고, 옷을 갈아입고,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바람이 전하는 너의 숨결, 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텅 빈 집이 잠드는 시각에도 들리는, 목소리.
빈 집이 우는 소리.
다시 만나지 못하는 절망.
‘그들을 갈라놓는 바람이/서로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라는
구절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가 정말 만나기나 했던 것일까?
하지만, 바람과 함께 늘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어떤 이별은 끝내, 이별이 될 수 없음을 생각해 본다.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