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 안희선
겨울의 추위에도 얼지 않을 한 마음을 생각해 보면,
나에겐 속죄(贖罪)해야 할 명백한 옹졸함이 있다
언제나 고집하는 낡은 수법의 신상명세(身上明細)를 바라본다
때로, 그것은 맥 빠진 자동인형(自動人形)을 연상케 한다
남루한 혈관 속에서 영혼을 황폐케 하는,
신경을 부식(腐蝕)케 하는,
그래서 나이 먹은 분별(分別)로도
어쩔 수 없는 이 공소(空疎)한 피를
모조리 흘려 버려야 할 것을
좀 더 진지하고 무서운 생명이 그립다
날지 못하는 새에 있어 날개는 의미가 아니듯,
믿었던 정열도 기실, 서투른 기지(機智)의
얼룩진 모습에 불과한 것
결국, 산다는 것은 묵묵히 견디어 가는 것
그런 인내는 종말을 방관하는,
이 찰나(刹那)의 시대에도 신용카드처럼 유효하다
그러나, 현실에 순응(順應)하는 서러움이란
또 얼마나 헛헛한 영혼의 일인가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안이한 속박이 두렵다
경사(傾斜)진 인간의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시간의 수레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
고요가 그립다
텅 빈 허공이 그립다
덧없이 쌓인 지난 가을의 낙엽이 추억을 만드는 동안,
잠시 그 낙엽이 되고 싶다
그래도 무심(無心)한 바람은 겨울이다
마음이 춥지 않은 자(者)들만 살아 남을 것이다
인간의 세상처럼 어두운 저녁에 눈이 내린다
지독한 북극(北極)을 향하여 사람들이 걷는다
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