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미생"이란 드라마가 인기다.
바둑 입단에 실패한 한 청년(장그래)의 대기업 생존기라고할까?
장그래와 그의 동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직장 내의 모습을 리얼하고 박진감 넘치게그려내고 있다.
그 드라마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다름아닌 "우리"라는 단어, 아니 "우리"라는 모습이다.
최근 회에서 장그래가 사장에게 답변할 때도 이렇게 말한다
"우리 회사니까요"
드라마에서도 그리고 드라마 감상평 중에서도 그 "우리 회사"라는 말에 감동 먹었다는 둥 나도 써 먹어야 겠다는 둥 감상적인 평들이 대부분인데 사실 당연한 말이 주는 의미가 이렇게 가슴에 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장그래는 오랜 기간 동안 바둑을 공부하다 보니"나"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우리"라는 관계가 주는 감정을 잊고 살아왔기에 회사생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우리"라는 단어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끌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은 어떠한가?
그 "우리"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댓글 달며 훌쩍이는 우리들 말이다.
우리도 역시 아직 그 "우리"의 맛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그 "우리"는 직장인에게는 동료가 될 수 있겠고 아니면 친구,부부,가족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들어가면 "우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자신의 아내를 남에게 소개할 때 설마 "우리 마누라"라고 하진 않겠지만 만약 그렇게 불렀다고 해도"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고 대충 넘어가 주는 그 "우리"라는 대명사는 나라부터 시작해서 학교,직장,친구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우리 집 강아지"리고 하며 "우리"를 아무데나 붙이며 남발하고 있지만 그래서일까 ,정작 그 "우리"가 가지는 정서는"우리 집","우리 학교"에 놔두고 다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 "우리"는 친하니까 대충 대충 넘어가자는 데에 가장 효율적으로 써먹는다.
즉 "우리가 남이가"가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남은 "우리"가 아닌 반대 편에 있는 모든 것을 칭해버린다.
우리가 아니면 남이 되어 버리고 그 남은 심지어 적이 되어 버린 세상!
그래야 비로서 우리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우리들"
미생의 기본 주제인 바둑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면,예전에 일본 바둑이 전성기일 때 다께미야의 우주류가 있었고 오다께의 바둑의 미학이 있었다.
바둑의 고수가 되면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 마련인데 오다께는 특히 미(美)의 세계관이 있어서 돌의 생사보다 모양을 더 중시하였다.
근데 그 모양이라는 게 상대방도 같이 모양을 내줘야 미학의 바둑이 완성되는 것인데 상대가 지저분하게 두거나 꼼수를 둬버리면 미학은 물 건너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다께는 그 미학의 완성을 위해 상대방의 수까지 읽으며 양보하면서 한 판의 미학을 위해 판을 짜곤 했다고 한다.
바둑의 상대방이고 적이지만 같이 판을 짜는 순간만큼은 바둑의 미학을 위한 "우리"가 되는 것이다.
돌 하나 하나가 모양에 충실하며 한 판을 만들 때 비로서 "美"가 얻어지고"우리"가 얻어지는 것이다.
거기엔 더 이상 장그래가 다니는 회사의 마부장 이란 "우리 회사 동료"처럼 여자라고 차별대우 하는 사람은 물론 없으며 오과장이 술 취한 채 부르짖은"우리 애"만 있을 뿐이다.
오다께의 미학은 둘이 짝을 이뤄 서로가 최선의 수와 행마를 추구하며 판을 마무리 할 때 비로소 미학은 완성된다.
거기에 남도 아니고 상대방도 아닌 "우리"가 있다
오과장이 울부짖은 그 "우리"가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이다.
비록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승부의 세계일지라도 아름다운 한 판의 명승부는 두고두고 후학들을 매료시키는 기보(碁譜)로 남듯이 부하 직원을 감싸는 아름다운 동료애는"우리 애"로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남이가"로 편을 가르는 기준도 아니며 "우리 마누라"로 까지 확장되며 흥청망청 소비되는 대명사도 아니다.
"우리"가 서로 죽고 살기가 아닌 서로 살기를 통한 명승부의 기보(碁譜)로 하나될 때 그리고 "우리 애"로 감싸 줄 때 비로소"우리"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미생이 언제 어떻게 완생할 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오과장 아니 오차장이 있고"우리 애"가 그 때까지 계속 남아 있다면 장그래와 그 동료들은 훌륭한 기보를 남기는"우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 완생의 멋진 기보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