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님, 안녕하세요.
그 동안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늘봄님으로부터 신선한 신학적 사상을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보/보수신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런 현상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특정신학에 깊이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늘봄님께 문제제기하는 것은 늘봄님의 신학사상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늘봄님의 단정적인 입장이 항상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때론 그러한 단정이 사실에 근거하기 보다는 늘봄님의 speculation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에드먼튼의 은퇴한 어느 한인교역자가 자유주의교회는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망한다고 해서 공개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극점에서 늘봄님은 보수근본적인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늘봄님께서 쓰신 글에 대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로마제국 이래 지난 2000년동안 기독교가 세계를 통제하던 시대는 이미 끝이났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국가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간단한 예로, 기독교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에 다른 종교인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근본주의 종교의 문자적인 경전해석이 현대인들의 가슴에 감명을 주기는 커녕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들의 고대 경전들은 시대에 따라서 재해석해야 살아있는 말씀/계시/지혜 가 됩니다. 물론 사상가들 철학자들, 과학자들의 책들도 21세기에 상식적으로 읽혀져야 합니다."
위의 글은 늘봄님께서 동어반복적으로 여러번 쓰신 것입니다. 이런 선언적인 글 대신에 왜 그런지 늘봄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이라기 보다는 요청입니다. 위의 선언적 내용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늘봄님의 위의 글에 대한 저의 소감문입니다.
늘봄님의 발씀처럼, 지난 2000년간 기독교가 세계를 통제하던 세대는 끝났습니다. 이미 계몽주의시대 때 기독교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미국의독립 운동가 Thomas Paine는 [The Age of Reason](이성의 시대)이란 책을 통해서 이미 수백년 전에 기독교를 가장 극력히 비판했습니다. 페인은 포이어바하나 맑스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고 무신론자 히친스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캘거리대학교 어느 종교개론시간에 교과서(Irving Hexham)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방금보니 헥삼선생이 톰 페인에 대해서 글을 쓰셨네요. pdf로 다운받아 보실 수있습니다. http://www.understandingworldreligions.com/articles/Thomas%20Paine%20and%20Modern%20Unbelief.pdf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 시대이후 성서비평학이 발달하여 이제 성서비판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완전히 끝난 상태입니다.
현재 보수복음주의는 결코 2000년의 로마제국주의적 유산하에 기독교의 권력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다. 신학자이자 미국 종교사회학의 기초를 세운 리챠드 니버(H. Richard Niebuhr)는 자신의 책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1929)이라는 책을 통해서 미국이 국가종교가 아닌 여러 종파/교파들의 종합시장이라는 것을 오래 전에 밝혔습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독점된, 즉 경쟁이 없는 진보적인 유럽의 기독교가 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기독교 근본주의는 원숭이 재판으로 유명한 "The Scopes Trial" 이후 재판에 승리를 했지만, 완전히 사회에서 고립된 종교현상으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런 편견은 1960년대 말까지 지속됩니다. 이러한 반근본주의적인 문화는 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운동(counterculture movements)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인 기독교인인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도 반문화의 일종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죠. 젊은이들은 기존교회에 나가지 않고 마약이나 히피활동을 합니다. 바로 신종교/반종교의 부흥의 시대죠. (그런데 반문화운동이 정점에 달한 이후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또는 제가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히피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이 전통 기독교로 제법 되돌아왔다고 하는데, 자료를 찾아 봐야겠습니다.) 이 때 또 신의 죽음의 신학이나 세속화신학이 나와서 기존의 유신론적 신의 죽음 또는 종말을 선언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은 기독교대신 동양에서 온 하레 크리슈나 운동이나 명상 등에 열광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포착하고 쓴 것이 바로 신학자 하비 콕스의 [Turning East:Why Americans Look to the Orient for Spirituality-and What That Search can Mean to the West](제가 갖고 있는 책은 1977년 판)입니다. 이것이 콕스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신학자이지만 어떤 면에서 종교학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학자들은 종교사회학 해 가지고는 돈벌이 안된다고 종교연구를 거의 외면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속사회에서 종교는 점점 소멸된다(die out)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 미국은 근본주의 기독교운동의 발흥을 보고 놀라고 맙니다. 이 때 비로소 사회학자들이 종교를 부랴부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사회적 현상의 변화에 민감한 하바드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또 새로운 책을 씁니다. 바로 [세속사회로 돌아온 종교]라는 책입니다.
콕스는 바로 근본주의의 발흥을 본 것이죠. 그동안 죽은 줄로만 알았던 기독교 보수주의는 차근차근히 성장을 했던 것이죠. 제가 아래 글에서 지적했듯이 이른바 자유주의 교회는 신의 죽음의 신학이니 세속화신학이니 새로운 성서비평학이니 등에 휩쓸린 1960년대를 기점으로 급하강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종교의 세속화에서 사람들의 영성적 추구가 갈팡질팡했을 때, 보수복음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죠. 1960년대를 기점으로 진보적인 교회는 급하강을 하고, 보수적인 교회는 급상승을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독교 보수주의는 못배운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숭이 재판 이후 보수기독교는 엄격한 근본주의를 벗어나 사회에 비교적 유연한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로 발전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퓰러 신학교인데, 한국에서는 비교적 진보적인 교회에서나 사용하던 개념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퓰러의 학자들은 기본신학적 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신복음주의를 통해서 나름대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와중에 세대교체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진보적인 교회는 지리멸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미국은 철저한 종교시장 사회입니다. 어느 종교도 독점을 하지 못합니다. 개신교는 여러 교파로 나눠져 있으며, 그래서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최근에는 이슬람이 중요한 종교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 때 Peter Berger는 종교적 다원성은 각 종교의 신념을 상대화시켜 성장에 저해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자신의 세속화 이론을 포기했습니다. 그가 편집한 아래 책 제목을 보십시오. [The Desecularization of the World]. 세계의 세속화가 아니라 탈세속화입니다. 이것은 세속화 이론의 선두주자였던 그가 생각을 바꾼 다음에 나온 책입니다.
로드니 스탁같은 사회학자는 종교의 다원성은 오히려 종교의 경쟁을 촉발시켜 종교의 성장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늘봄님께서 퍼오신 한국종교의 상황을 보십시오. 개신교가 주춤하는 사이 가톨릭과 불교의 약진입니다. 어떤 면에서 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불교와 가톨릭은 일면 개신교화되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불교의 법당이나 주일학교, 여러 청년회, 설교식 법문 등등 상당히 경쟁적인 조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의 장인은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했는데, 그 성당의 지시가 신구약성서를전체를 다 배껴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하셨습니다. 뭐, 이런 식이죠.
제가 문제제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저의 취지는 단순합니다. 종교의 진리와 상관없이 어떤 종교는 살고 어떤 종교는 죽습니다. 조로아스트교처럼 페르시아 제국이 이슬람화되면서 거의 죽었다거나 한 때 조선의 천주교 박해처럼 정치적 박해로 천주교가 거의 죽었었고, 미국에서 잘 나가던 통일교회가 문선명 목사의 tax evasion으로 인한 구속수감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수 있지만, 보수든 진보든,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흥망성쇠는 종교적 가르침의 진실성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그리고 이미 계몽주의 세례를 받은 기독교는 진보든 보수든 제국주의적 국가 종교는 없어졌습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입니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 무슬림이나 힌두로 살아가고 인도에서 무슬림이나 다른 소수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듯이 소수는 종교든, 인종이든, 작은 소매가계든 어렵습니다.
제가 늘봄님의 글들이 지나치게 가치평가적이라고 한 것은 바로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 즉 why나 how를 묻고 답하시기보다는 늘봄님의 신학사상에 경도되어 그러한 신학적 가치를 현상에 부과하여 오히려 신학적 환원주의(theological reductionism)이 너무나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언젠가 모 교역자가 늘봄님의 글을 비판했을 때, 제가 문제제기를 한 것은 그 당시 늘봄님의 사상에 제가 동조해서나 또는 편들기가 아니라 그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위의 늘봄님의 선언적 진술보다는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를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