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 년 7 월 4 일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채택한 날이다.
2008 년 9월 7 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르겠다.
일부 미국인들은 이 질문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 날이 바로 미국 제 2 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무언의 대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사실 2008 년 9 월 7 일은 미국으로서는 매우 치욕적인 날이기도 하다. 종합금융회사 리만 브라더스 홀딩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파동으로 파산이 확정적이라는 첫 보도가 나간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 첫 보도가 나간 지 8 일만인 그 해 9 월 15 일 이 거대자본은 Chapter 11 bankruptcy protection 절차에 따라 송두리째 파산했다. 리만 브라더스 금융자본그룹이 무너지는 소리는 맨하튼 쌍둥이 무역센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보다 더 요란했다.
미국 패권주의에 사실상의 사형선고가 내려진 바로 이 날,
노스다코다 주 바켄 이라는 시골 황무지에서는 그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작은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석유회사들이 독점적으로 개발한 hydraulic fracking 공법에 의해 셰일에너지자원에 대한 첫 시추가 성공한 것이다.
당시에는 아무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 작은 사건 하나가 7 년 후 세계의 에너지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국제정치구도의 미래 진로까지 통째로 뒤집어 엎을만큼 커다란 변화의 불씨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이 사건이 있은 지 4 년이나 지난 2012 년 이전에 조차 셰일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제대로 보도된 적도 없었기에 그런 추정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몰락과 부활을 가늠할 두 사건이 함께 벌어진 운명의 이 날을 가리켜 제 2 의 독립기념일이리고 우스갯소리를 한다.방대한 셰일에너지자원을 자신들의 영토 지하에서 발견하고, 또 그 시추기술을 독점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향후 적어도 수 백 년 간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수출까지 하는 전무후무한 막강파워의 패권국 지위를 유지해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싫건 좋건 드러난 현실은 현실이다.
어제 우연히 셰일가스에 대한 ‘매우 뚱딴지같은’ 오마이뉴스 기사 하나를 보았다. 2 월 7 일자 ‘셰일에너지, 반짝 호황은 끝났다’ 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우선 제목부터가 이상해서 클릭해서 전문을 읽었다. 비록 조금 오래된 기사이긴 하지만 이후 수정기사가 없다는 점에서 이 기사내용이 미국셰일에너지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최종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 기사에서 쓴대로 국제유가하락으로 신규셰일에너지 탐사및 시추투자가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셰일에너지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이 보도는 셰일에너지가 미국 국제패권의 장기적 재부상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가린 채, 독자들에게 마치 미국의 셰일에너지가 국제유가하락으로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본말이 전도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잘못된 기사라고 생각한다.
셰일에너지는 국제유가하락으로 벼락을 맞고 있는 객체적 희생양이 아니라, 현재의 국제유가하락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힘의 주체다. 3 월 말 현재 무한증산을 통해 미국셰일자본을 꺾어보려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 중동으로부터의 원유수입을 20 퍼센트 가까이나 줄이는 바람에 OPEC 이 먼저 결단이 날 판이다.
Conventional 에너지자본과 미국 셰일에너지자본간에 벌어지고 있는 격돌과정에서 파생하는 미국석유산업의 일시적 실업율 증가와 투자축소 같은 단기 현상을 침소봉대하여 “셰일 반짝 호황 끝났다” 그러므로 셰일은 무의미한 자원이 됐고 미국 도로 망하는 길로 들어설 것이다 ㅎㅎㅎ” 이런 식의,사실과 동떨어진 여론 유도보도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엄청난 자본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부상하는 파워를 “반짝 호황 끝났다” 고 자위하는 건 자기를 속이는 짓이다. 진보언론은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 건 조중동이나 하는 짓이다.
물론 언론이 당파성을 가질 수는 있다. THAAD도입 이나 AIIB 가입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간의 각축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선택해야 하는 진보언론이라면 당연히 재부상하고 있는 미국의 파워를 경계하는 기사를 쓸 필요가 있다. 다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정직한 예측을 해 주길 바란다. 미국의 패권주의 부상을 경고하고 싶다면 차라리 셰일에너지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자원 파괴 현황을 연구하고 심층취재해서 보도하는 게 낫다.
2015 3 21 1616 (M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