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교회명 모두 놓기로
"2세들에 갈등 보여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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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있다고 욕할 수는 없어 PCUSA 교단 탈퇴 결정 미국 최대 장로교단인 미국장로교(PCUSA)가 지난달 17일 동성결혼을 수용했다. 파장은 컸다. 보수 신학 정서가 강한 한인 교계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교단 정책에 반발, 한인 교회들의 탈퇴 움직임도 감지됐다. 하지만, 재산권이 문제였다. PCUSA 산하 교회 건물은 모두 교단 명의다. 만약 교회가 재산권을 소유한 채 교단을 탈퇴하려면 건물 시세에 따른 일정 금액을 지불하거나, 건물을 내놓고 나가야 한다. '돈'은 무서웠다. 재산권이 엮이자 교단과 교회가 갈등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탈퇴를 두고 의견도 갈렸다. 동성결혼에 대한 견해 차이는 첨예한 신앙적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분쟁속에 갈등을 거부한 한인 교회(시애틀명성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교단을 탈퇴하며 재산권을 포기했다. 19년간 애지중지 여기던 교회 명 까지 내려놓았다. 새 출발을 위해서다. 교단도, 당회도, 남겠다는 교인도, 나가겠다는 교인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았다. 이 교회 김범기 담임목사(사진)는 "결별 과정이 은혜로울 수 있었던 건 당회와 교인들이 '우리 것을 아무것도 주장하지 말자'고 결정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다음 세대에게 1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고 했다. 탈퇴를 위한 공동의회(3월29일)를 마친 다음날 김범기 목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갈등이나 반대는 없었나. "우리 성도 중에는 개척 때 부터 지금까지 19년간 이 교회에서 헌신하고 예배를 드려왔던 성도들이 있다. 건물 구입을 위해 본인의 집까지 팔아 헌금했던 분도 있다. 사실 '소유'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일텐데 그분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 것을 주장하지 말자'고 하셨다. 담임목사로서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탈퇴를 위한 공동의회 투표는 전체 교인(130여 명)중 55명이 참여했다. 교단 탈퇴를 찬성하는 교인이 압도적이었다. 반대는 4명에 그쳤다. 다수에겐 소수도 소중했다. 비록 입장은 달라도 신앙 안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다. -반대한 교인들은 어떻게 되나. "반대한 분들은 교단에 남아 당분간 노회에서 임시 파견된 목사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분들도 우리처럼 동성결혼을 반대하셨다. 다만, PCUSA가 19년이나 우리 교회를 도와준 부분이 있고, 남아서 '비성경적 부분에 대해 바른 목소리를 내겠다' 하셨다. 또 교단이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시더라. 양측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마지막 예배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며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탈퇴까지는 2주가 채 안 걸렸다. 이 교회는 PCUSA가 동성결혼 수용을 발표(3월17일)하고 나서 나흘(3월20일) 만에 임시당회를 소집했다. 이어 교인들에게 의사를 묻는 공동의회(3월29일)를 실시했다. -탈퇴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사실 예전부터 탈퇴를 고심했다. 이번 교단 측 결정이 계기가 된 것 뿐이다. 긴급 임시당회를 열어 장로님들과 함께 각자의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 대한 신앙고백을 들으며 이미 뜻이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말 그대로 '은혜롭게' 결별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었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탈퇴 과정을 잘 밟자는 의견을 모았다." -왜 다음 세대를 생각했나. "다음 세대는 우리를 보고 있다. 자녀들은 이런 상황에서 부모와 교회가 어떤 식으로 처신 하는지 지켜본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하나님 뜻'을 내세우고, '한 영혼'이 소중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신앙적인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다음 세대가 우리에게 실망한다면 교회에 희망은 없다. 자녀 세대에게 그렇게 '비전'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이 교회는 3월31일을 끝으로 19년간 정들었던 교회 건물에서 나왔다. 일단 지난 5일부터 인근 한 기독교 사역 단체 장소를 임시로 사용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곧 교회 이름도 정하고 새로운 예배 장소도 물색할 예정이다. -미련은 없나. "(웃음)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교회에 있는 것들을 정말 손 하나 안대고 그대로 두고 나왔다. 차라리 다행이라 본다. 재산권 때문에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당회와 교인들은 설령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려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에게 PCUSA는 '어머니' 같은 교단이다. 하지만, 잘못이 있거나, 뜻이 안 맞는다고 어머니를 욕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교단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PCUSA는 과거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교단이다. 많은 희생과 헌신을 했다. 그 감사함이 있기에 결별을 하더라도 과정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단 목사님들도 우리가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끝까지 잘 도와주셨다. 너무 감사하다." ☞김범기 목사는 51세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13년간 시애틀형제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 지난 2013년 이 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새로운 교회 이름에 대해서는 “생각한 건 있지만 당회와 상의 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열 기자 [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갈등, 다툼, 논란…그래도 '꽃'이 핀 건 알려야 했다 김범기 목사와 인터뷰를 끝낸 후, 저녁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갑자기 기사 보도를 고사했다. 이번 보도로 인해 본인과 교회가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김 목사는 “교단 탈퇴를 고민하는 다른 교회들에게 자칫 부담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교회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결정이 ‘답’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보도 가치에 대한 필요와 중요성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한인교계는 ‘동성결혼’ 문제에 예민하다. 특히 이번 PCUSA의 동성결혼 수용은 한인 교회의 종교적 도그마를 건드린 이슈였다. 교인들은 실망에 빠졌다. 목회자들도 난감해 했다. 교단에 대한 반감은 ‘탈퇴’를 고민케 했다. 하지만 신앙적 양심과 현실 사이엔 재산권(교회 건물)이 자리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동일한 잣대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었다. 교회마다 사정이 있었고, 목회적 상황도 차이가 있었다. 갈등에 대한 고민도 저마다 달랐다. 취재기자로서 이슈의 심각성도 체감했다. 한 예로 최근 PCUSA 탈퇴를 선언한 롤랜드하이츠 지역 선한목자장로교회 소식을 보도하자 항의가 빗발쳤다. 갈등의 현실을 두고 교단 입장, 탈퇴 측, 잔류 측의 주장을 공정하게 실었지만 이는 벌집을 건드린 셈이었다. 대화는 불가했다. 존재하는 팩트와 언론으로서의 공정성은 종교의 영역 안에서 똬리를 틀 수 없었다. 그만큼 민감한 이슈임을 방증했다. 그동안 PCUSA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취재해왔다. 미국 최대 장로교단인데다, 400개 이상의 한인교회가 소속됐다. 현실적인 ‘답’이나 ‘기준’을 제시하려 했던 건 아니다. 다만, 수많은 논란이 난립하는 가운데 하나의 사례 정도는 알릴 필요가 있었다. 갈등의 토양에서도 꽃은 폈다. 그 사실은 알려져야 했다. 김 목사가 끝내 마음을 돌린 이유다. PCUSA의 정책 변화 일지 30여 년 넘게 이어진 논쟁 ▶지난 1978년 PCUSA 총회에서 동성애 문제 첫 공론화 ▶이후 각 노회 및 총회에서 매번 동성애 문제로 격렬한 논쟁 ▶총회 때마다 동성애자 목사 안수 금지에 대한 개정안 상정됐지만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며 계속 무산 ▶결국 지난 2011년 동성애자 안수 가능하도록 교단법 개정 ▶이에 반대한 교회들 새로운 교단인 ‘ECO(The Evangelical Covenant Order of Presbyterians)’ 설립. 당시 PCUSA 소속 120여 개 교회 탈퇴 후, 곧바로 교단 이전. ▶2014년 디트로이트 총회에서 결혼의 의미 재정의 하는 개정안 통과. ▶이후 170여 개 노회가 이 개정안을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투표를 실시. 과반수 넘겨 지난달 17일 최종 통과. ▶한인교회협의회 "어떤 형태로든지 동성결혼 인정 않겠다"는 성명 발표. ▶PCUSA내 한인교회 연합체인 미국장로교한인교회전국총회(NCKPC·총회장 이영길)는 연합 촉구하는 성명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