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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유심히 보니 참배객보다는 벚꽃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꽃 피는 시기에 맞춰 한국방문한 것도 아닌데, 가는 곳 마다 벚꽃이 만개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원은 물론이고 아파트단지에도 벚나무가 즐비했다. 국립서울현충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이곳의 벚나무는 모두 수양벚나무라는 특징이 있었다.
나라마다 National Cemetery 가 있다. 미국에는 워싱턴 DC 근교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국립묘지가 있고, 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 근교에 기억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국립묘지가 있다. 일본에서 전사자들의 위패를 봉안한 신사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야스쿠니 신사다. 북코리아 역시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에 그들의 혁명원로들과 국가유공자들의 시신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세상천지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하고도 해괴망칙한 국립묘지가 하나 있는데, 다름아닌 대한민국 서울 동작동에 소재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국립묘지에는 그들의 조국이 아닌 적국을 위해 멸사봉공한 이적행위자들의 시신이 다수 묻혀있다. 대부분의 국가유공자들이 봉분도 없이 비석 하나만 덩그라니 있는 좁은 면적의 초라한 묘지에 칼잠 자세로 묻혀있는데 반해 이적행위자들은 장군묘역과 국가유공자묘역의 화려하고 넓은 묘역을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1919 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따라서 1919 년 4 월 13 일부터 1945 년 8 월 15 일 사이에 존재했던 일본은 명백한 헌법상의 적국이다. 다만 적국이 영토를 강제점령하고 실효지배하고 있었으므로 그 영토 안에 살면서 일본국 공민권을 받아들이고 수동적으로 적국의 의무를 수행한 행위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는 인정한다.
분명한 것은, 반인륜적 제국주의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 시기에 적국의 군간부를 포함한 고위 공무원으로 복무하면서 침략전쟁을 수행했거나, 지식인 - 명망가의 위치에서 적국을 위한 전쟁봉사를 선동한 작자들을 자기나라 국립묘지에 파묻어놓은 나라는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할 거라는 점이다.
현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는 자들 중에는 간도헌병대 대대장으로서 연합군과 독립군 포로들을 체포 고문하는 행위를 한 후 해방후에는 외무부장관, 국무총리까지 지낸 놈도 있고, 조선인으로서는 최고위 계급인 대좌까지 승진하여 학도병 모집선동으로 수 십 만 명의 조선청년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 몬 악마같은 인간도 있다. 그는 해방 후 체신부 장관, 반공연맹 이사장, 국토통일원 고문을 차례로 지내기도 했다. 제국일본의 육군 대본영과 해방 후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유공훈장을 받아챙긴 것은 물론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독립군토벌 특수실전부대였던 간도특설대의 중대장급 지휘관을 지낸 자도 여기에 묻혀있다. 가네자와 도시미나미 라는 일본명으로 잘 알려진 이 작자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 패전부대였던 1 군단장으로서 흥남철수작전의 한국군측 지휘관이었는데, 한 편으로는 이 철수작전 당시 어떤 일화로 상당히 미화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싸르니아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아직 안 봤지만 혹시 그 영화에 이 자가 나오는지, 나온다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약간 궁금하다.
어쨌든, 적국의 침략전쟁을 직접 수행했거나 선동했던 군간부와 지식인 명망가 출신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 버젓이 누워자빠져 있는 ‘심각한 이적행위자’는 무려 17 명에 달한다. 도쿄 야스투니 신사에 합사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A급 전범 14 명을 그 숫자에서도 능가하고 있다. 여기에 관동군 초급장교 출신 박정희 중위 같은 인물은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물론 박정희 중위같은 잔챙이 부역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다문화 국가 국립현충원에서 아직도 ‘민족’이라는 단어를 방치하고 있는 그 둔감함이란,,,,,, 당장 이 돌 치우고 기왕 치우는 김에 저 향로 옆에 있는 작은 돌도 함께 치우기 바란다. 여기올린 현충일의 노래 역시 가사를 바꾸어야겠다. 민족이나 겨레같은 단어를 삭제하는 대신 그냥 나라나 국가라고 하면 무방할 것이다.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육영수 씨의 거대한 묘비에 새겨진 추모시를 쓴 인간 역시 대표적인 여류 전쟁선동가인데, 그는 태평양 전쟁 중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등에서 활동하면서 연일 전쟁선동 강연 및 저술활동을 했고, 조선총독부 기관지의 논설위원급 필진으로 맹활약했다. 이쯤되면 일제에 단순히 부역한 것이 아니라, 아예 팔 걷어부치고 지식인 전범으로 주도적인 활동을 벌인거라고 봐야한다.
그랬던 그가 아첨으로 가득찬 저 글을 추모시라며 개발새발 써 준 묘비의 주인공 육영수씨는 박정희 씨의 두 번 째 부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생모이기도 한데, 1974 년 8 월 15 일 국립극장에서 벌어진, 그 명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총격전에서 누가 쏘았는지 확인되지 않은 총탄에 맞은 후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자칼의 날’을 소재로 한 유도심문으로 범인의 자백을 받아냈다고 허풍을 떨다가 나중에 쌩거짓말인 것으로 판명돼 개망신을 당한 당시 이 사건수사검사가 바로 '10 만 불' 김기춘 선생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동적인 추모시를 헌시한 인물 역시 친일-친독재 행적 논란으로 말썽이 일었던 사람이다. 도대체 이 나라 국립서울현충원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 교정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