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주신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지난 일 년 동안 씨엔드림 신문에 올린 “진화영성과 두려움없는 삶”에 대한 칼럼들에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메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깨달은 진리입니다. 메길대학은 기독교의 믿음체계가 만든 교리들 – 창조론, 구원론, 종말론, 예정론, 축복론 등 – 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성서라는 책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거기에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온 인류에게 좋은 길인가를 탐구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해할 수도 없으며 믿지도 못할 교리들을 무조건 믿고 순종하는 ‘믿음의 종교’를 버리고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삶을 찾는 ‘깨달음의 종교’를 택했습니다. 메길대학은 하느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란 말을 악용하는 종교들과 종교인들이 하느님의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도록 도우려고 신학과 비교종교학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영적’ 이란 말은 단순히 이성적으로 느끼고 지성적으로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질문하신 것에 답변하는 것으로 금년 1월 2일 씨엔드림 종교칼럼란에 올린 저의 글을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하느님과 우주에 관한 생각은 코페루니쿠스(1473-1543)가 천동설을 발견하고, 곧이어 갈릴레오(1564-1642)가 지동설을 발견한 이후에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명과 하느님과 지구에 대해서 이전과 똑같을 수 없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론이었다. 지구의 생명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서 변형해왔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이제는 지구의 생명들을 넘어서 138억년 전 빅뱅이 일어난 이래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 진화론을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이 21세기의 주류 과학계는 다윈의 진화론을 더 이상 이론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이것은 실제로 있는 사실(fact)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칼럼에서 이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진화론’이란 말 대신에 사실로서의 ‘진화’라는 말을 쓴다. 오늘날 현대 과학자들, 철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은 인간, 자연, 우주, 종교, 하느님(신)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진화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우주 진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세상 이외에 다른 세상은 없으며, 즉 세계는 오직 하나이며, 우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미리 설계한대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완성품으로 고정시킨 것이 아니라, 138억년 동안 계속해서 팽창하고 진화해왔듯이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계속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불확실성(Uncertainty)의 우주라고 한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20년의 전문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대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든 과학과 종교가 분리된 모순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필자는 21세기 양자물리학, 천체우주학, 유전자공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전자공학, 생명공학, 생태학의 첨단과학시대에 전통적인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과 잘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풀어가려고 한다. 예를 들자면, 한 가족 안에 여러 다른 종교가 공존하는 다원주의가 있고, 동성애라는 성적본능이 다른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신앙공동체 내부에 진화라는 과학적인 사실에 대해 보수와 진보로 대립하고, 따라서 내세를 믿는 사람들과 현세를 중시하는 사람들로 혼돈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실제적인 현안에 대해서 솔직하고 선명한 설명 또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인 진화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종교의 교리와 형식을 고집하는데에는 두려움과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의 독자들은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자유하고, 편협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두려움없이 만족하고 감사하게 살면서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미있는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모두가 이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칼럼을 읽고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한인사회가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종교인 비종교인, 유신론자 무신론자, 남한 북한, 경상도 전라도, 남자 여자, 동성애자 이성애자 로 분리된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는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종교 칼럼의 독자들의 범위는 종교와 철학과 사상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필자는 한때 근본주의 기독교인 지질학자로써 다윈의 진화론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나의 직역주의적인 신앙이 과학을 넘어서지 못했고 항상 과학과 종교가 이혼한 상태에서 행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메길대학 종교학부에서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면서 첫번째 진화의 깨달음을 경험했고, 20년의 전문목회 기간동안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두번째 진화의 깨달음이 있었고, 이제 2012년에 은퇴한 후 종교적 자연주의 책들과 과학책들과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세번째 진화의 깨달음을 체험하고 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이 칼럼은 독자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인생의 배경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앞으로 이 칼럼을 읽을 독자들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개인적인 삶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세상과의 관계가 훨씬 넓어지고 깊어지고 진실해지고 두려움없이 자유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
진화를 거부해 온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진화를 새롭게 이해할 것이다. 즉, 온 인류는 빅뱅 이후 100억년이 지난 후, 공통적으로 40억년 전 지구에 출현했다는 우주 진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 다른 종교인들과 인종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고, 매일매일 나의 삶에 의미와 자유가 넘치고, 내세에 의존하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진화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과학을 삶의 철학으로 이해하고, 상상력에 불길이 솟구쳐 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우주와 인간들과 다른 생명들과 자연에 대해 감사함과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고취될 것이다. 물론 하느님이란 말의 새로운 의미를 인식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존재(하느님)를 떠나 보내고 동료 인간들과 다른 생명들과 자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가슴으로 이해한 진화에 대해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직장동료들과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가까운 이웃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할 것이다.
성실한 기독교인 독자들은 그들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중도적이든, 카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정교회이든 새롭게 이해하게 된 진화 이야기가 자신들의 신앙을 심층적으로 변화시키고, 과거의 신앙생활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선함과 자유함과 만족함을 경험할 것이다.
회교도, 불교도, 힌두교도 독자들은 이 칼럼이 소개하는 진화의 새로운 의미가 자신의 삶과 신앙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적용될 것이다. 필자가 우주 진화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심층적으로 발전시켰듯이 독자들도 진화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전통이 가르치는 지혜들을 보다 더 심층적인 단계로 이끌어 가고, 자신들의 종교와 세상에 매우 귀중한 헌신을 베풀 것이다.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독자들은 주류 과학계가 인정하는 우주 이야기를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죽은 후의 다른 세상을 믿을 필요도 없으며, 단지 이 칼럼이 소개할 ‘진화 영성’(Spirituality of Evolution)은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아름다운 혜택이 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세상과 인간과 생명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며, 흔들림이 없는 우주적인 도덕적 윤리적 기반 위에 설 것이다. 무엇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더라도 삶의 정열과 심오한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앙때문에 과학을 수용하지 못하는 독자들과 과학적인 세계관때문에 종교를 거부해온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관계들이 새롭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가까운 사람들과 이 칼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 지금까지 서로의 사이에 공존하지 못했던 인류 공통의 우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신뢰와 너그러움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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